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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Jul 18. 2024

얼렁뚱땅 시작 돼버린 첫 여정 #2

가능? Ok 가능.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산으로 둘러싸인 생장의 쌀쌀한 겨울날씨에 오들오들 떨며 초조하게 시간만 확인했다. 체감상 1시간은 기다린 듯한 기분.


 오후 1:30, 정확한 시간에 맞춰 우체국이 문을 열었다. 파파고로 미리 번역해 둔 내용을 우체국 직원분에게 보여드리자 불어로 뭐라고 하시면서 박스랑 종이 한 장을 주신다.


종이는 운송장이었다. 열심히 번역기를 돌려 모르는 단어를 검색해 가며 포장까지 완벽하게 마쳤다!


 

 돈을 꽤 많이 냈던 것으로 기억난다. 음 한 40-65유로 사이였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일단 프랑스까지 넘어와서 불필요한 짐을 다시 색출해 보니 총무게는 약 5kg 정도. 세상에나 집에서도 출발 전 몇 번이고 반드시 필요한 것들로만 짐을 꾸려서 확인에 확인을 했것만!


 정작 여기 와서 며칠간 배낭을 메고 다녀보니 15kg가 단순하게 생각했을 땐 별것 아닌 줄 알았지만 결코 만만한 무게가 아니었다.


 내가 뺀 것: 신고 온 운동화, 손전등, 여벌의 옷들, 핫팩, 책 등…




 우체국을 빠져나와 제법 가벼워진 12kg 배낭을 메고 신나게 순례자 사무소(?)로 향했다.


 그곳은 사실상 여정에 있어서 맨 처음이 되는 시작 지점이며, 순례자가 순례자를 위한 전용 숙소에 묵기 위해서는 순례자 여권(이하 크레덴샬)을 발급해 주는 곳이기도 했다.


 이동 도중 중간에 길을 좀 헤매긴 했지만 여차저차 물어물어 잘 찾아갈 수 있었다.


 길고 높다란 언덕길을 올라 마주한 사무소의 모습은 뭐랄까, 마구간 문 같이 생긴 특이한 문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채로 문을 만지작만지작 대며 문 열기에 성공했고!



‘봉… 봉.. 쥬르..…’


 인사를 하자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외국인 여성분이었는데 국적은 잘 모르겠다. (나중에 들어보니 순례자 관련 사무업무를 보시는 분들은 돈을 받지 않고 순례자들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자원한 자원봉사자들이며 국적도 다양하다고 한다.)


 다행히도 봉사자분은 날 반갑게 맞아주셨다. 나에게 한국인이냐고 물으시곤 전체 루트가 나와있는 종이와 한국어로 번역된 종이를 건네어주시며 간단한 루트 설명과 순례자를 위한 숙소(이하 알베르게)의 종류와 겨울 까미노의 주의사항을 들었다.



• 겨울철엔 피레네 산맥을 넘기 전까지 산속 까미노길 출입 금지. 안전을 위한 조치이며, 위반 적발 시 벌금 부과 예정. 우회해서 도로를 따라갈 것 반드시 명심.

• 겨울엔 비수기, 게다가 코로나가 겹쳐 많은 순례자의 숙소가 문을 닫았으니 반드시 이동 전 숙소(알베르게) 운영 확인 반드시 할 것.

• 알베르게는 공립과 사립으로 나뉘며 원하는 곳으로 선택 가능. 가격 차이가 있으며 빨래, 취사 등 편의 시설이 대부분 구비되어있음. 겨울철 운영 중인 알베르게는 알려준 안내 종이에 나온 사이트에 접속해 직접 확인.


 대략 이 정도만 그때 당시 머리에 입력 됐다. 유의하시라, 나폴레옹이 걸었다는 피레네 산맥의 까미노 루트 절대 겨울철 절대 출입 금지. (나란 사람… 미련했다. 관련 이야기는 다음 화에)



‘오늘 바로 출발하시나요?’


‘네? 오늘이요? 곧 두시가 다되어가는데요…’


‘오우! 충분해요. 갈 수 있어요!‘


‘네? 보통 새벽 6-7시에 시작한다는데 지금은 너무 늦지 않았나요?’


‘아니에요! 두시! 충분합니다. 일단 Valcalos의 숙소가 운영 중이니 거기까지 가시면 될 것 같아요. 여기서 10km만 가면 된답니다! 한 두세 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거예요!! 호호호‘


‘오!!!! 10km요? 그것밖에 안돼요? 하하하하 그 정돈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하하하 그럼 오늘 지금 바로 출발해야겠어요!‘


‘네!!! 좋아요!!!! 끝까지 다치지 말고 무사히 완주하세요. Buen camino!'


 처음 들어보는 Buen camino, 순례길에 대해 이것저것 검색했을 때 난생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직역하면 ‘좋은 길 되세요’인데 뭐 잘 걸어라 파이팅이다! 이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


 아무튼 각설하고 봉사자분의 응원에 기분이 또 한 번 몽글몽글해졌다. 죽기 전에 꼭 한번 해보고픈 버킷리스트를 수행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니 나 자신, 대단해!


 스스로를 대견해하며 순례자의 상징인 하얀색 가리비 껍데기를 사서 배낭에 대롱대롱 매달고 사무실을 나섰다.


 저 대화의 시점으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난 무조건 생장에서 하룻밤 자고 출발했을 것이다…

 

 생전 트레킹이라곤 해본 적이 없는 내가 10km라는 말에 현혹되었다기보다는 숫자만 보고 10km를 너무 쉽게 생각했달까.




 사실 생장에서 하룻밤 자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얼렁뚱땅 당일 출발로 일정을 변경시켜버린 MBTI 'P' 나란 사람. 계획은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으니까!!!


 사실 생장에서 묵을 숙소를 찾는 것도 귀찮았고 2시부터 뭘 하면서 하루를 보낼지도 막막했다. 그래서 당일 바로 출발에 마음이 기울었던 것.


 일단 시계를 확인해보니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오후 2시가 넘었다. 서둘러 출발해야 했다.


 물과 간단한 비상식량을 사서 출발하면 좋을 것 같아 주변 마트를 검색했다.


 음… 까르푸가 나왔는데 까르푸 말고는 'Mart'라고 검색한 결과 아무것도 없었다. 거리가 걸어서 한 10-15분 정도 소요된다고 나온 것으로 기억하는데 좀 먼 게 아닌가 싶었지만 이왕 여기 걸으러 온 거 좀 걸어가지 뭐! 하면서 대차게 까르푸로 향했다.




 서양 사람들 특히 유럽 사람들도 참 크리스마스에 진심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까르푸 내부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화려했다.


 잠시 또 이성을 잃고 마트에서 긴 시간을 보낼 뻔했지만 이미 짐의 일부를 시작 전에 택배로 보낸 마당에 무언갈 사서 이고 지고 갈 엄두가 안 났다.


 시계를 확인 하자 시간은 이미 2시 30분 정도 되어있었고 얼른 정신을 차려 딱 필요한 것만 챙겨서 길을 나섰다. 초코바 두 개와 500ml 생수 두병. 아까 오후에 기를 쓰고 짐을 덜어냈는데 기어코 짐이 또 늘어버렸다.

 




 순례자들의 필수 어플! 바로 Camino ninja. 오후 2시 45분에 이 어플을 켰다. 나에겐 본격적인 까미노를 시작했던 순간으로.

 

 어플의 구성은 루트 표기, GPS를 이용한 루트상 나의 현재 위치 확인 가능, 고도 표시, 거리 표시, 각 구간 별 이용가능한 숙소와 약국 마트들의 정보 등…




이 어플 개발자(?) 업데이트하시는 분은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었는데(내 친구 중 한 명이 직접 길 위에서 만나 봤다고) 2021년? 2022년에 까미노에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한동안 어플 업데이트가 중단되었으나 최근 확인한 바로는 다시 정상 업데이트 중, 누군가 이어서 운영하는 중인 것 같다.


 시작점으로 표시된 곳을 어플을 보고 따라 움직였다. 길을 지나며 사진 속에서만 보던 까미노 표식을 마주하자 정말로 정말로 내가 그토록 원하던 이 길 위에 있다는 것이 실감 났다.


까미노 표식.




 뭔가 이상하다. 분명 본격적인 출발 전, 생장의 시작점에서 Valcalos를 구글맵으로 찍었을 땐 걸어서 2-3시간이면 도착하는 건데!!!!!!! 봉사자 분도 3시간도 안 걸린다고 했는데!!!!!!!!!!!!!!! 나는!!!!! 왜!!!! 아직도 한참 남은 것인가!!!!!!!!!! 이미 걷기 시작한 지 2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 4.7km나 더 가야 한다고 나온 것인가?


 혹시 길을 잘못 들었나? 아닌데? 구글맵, 까미노 닌자를 동시에 켜두고 번갈아 가며 확인했는데 나는 분명 길을 따라 맞게 가는 건데!!!!


 내가 그토록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를 이제는 알고 있다. 바로 10kg의 배낭이 무거워 거북이처럼 천천히 걸었던 것과 마치 영동고속도로가 뚫리기 전 강원도에 가기 위해서 산 고개고개를 넘는 것과 같았던 굽이지고 고도가 있는 길.


 오늘 처음 트레킹을 시작한 초보자에겐 10km란 엄청난 도전이었던 것이다.

 

전혀 줄어들지 않는 시간과 거리.


 설상가상 배터리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보조 배터리는 이미 진작에 다 써버려서 마음만 초조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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