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날밤.
이번화는 총 2화로 나뉘어 연재될 예정입니다.
1일 차 저녁 6:25경
드디어 생장의 순례자 사무실에서부터 일정을 바꿔 급하게 시작한 첫날. 2021년 12월 03일
시작 시간 오후 2:14, 총 거리 13.9km를 4시간 28분에 걸쳐서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감격 그 자체… 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어두컴컴한 공립 알베르게라고 나와있는 건물 옆에서 10분을 외치시던 봉사자님을 기다렸다.
주변은 캄캄하고 거리에 사람 한 명 없고, 날씨는 비가 온 후라 축축하게 습하고 그래서 좀 무서웠다. 그렇지만 난 30살 넘은 어른이니까 꾹 참고 얼른 오시길 기다렸다.
‘Hola~~~!'
안경을 쓴 할아버지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시며 다가오신다. 바로 알베르게의 봉사자 선생님이었다.
스페인어로 막 뭐라고 뭐라고 하셨는데, 유추해 보면 ‘네가 아까 전화한 사람 맞지? 맞지?’라고 하시는 것 같던 기분. 그래도 전화 통화한 지 얼마 안 되어 금방 오신 것 보면 아마 Val carlos에 거주하시는 분이신 것 같았다.
좀처럼 입구를 찾을 수 없던 알베르게는 어두컴컴한 처마밑을 지나 이어진 계단을 따라 내려가야지만 찾을 수 있었다.
캄캄하게 불이 꺼진 숙소의 불을 모두 키고 나서야 진짜 알베르게에 도착했다는 것이 실감 났다.
우리는 대화를 파파고를 이용해서 했다.
Only Espanõl 만 할 줄 아셨기 때문에!
‘어쩌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왔어?’
‘아 저, 원래 내일 시작하려고 했는데 마음을 바꿨어요. 두 시간이면 온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좀 오래 걸렸네요. 하하하하하. 그래도 무사히 도착해서 기뻐요.’
‘그래, 걸어보니 어땠어? 겨울엔 걷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말이야. 어쩌다 겨울에 온 거야.’
‘시간이 딱 지금밖에 없었어요. 지금 오지 않으면 평생 못 올 것 같아서 주변에서 겨울에 떠나는걸 많이들 말렸지만 한 번 사는 인생 후회는 없어야죠!’
‘용감하네! 여기 Val carlos는 순례자들이 많이 자는 곳은 아니야. 근데 네가 온다고 해서 깜짝 놀랐지 뭐야? 보통은 생장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한 번에 가거든!’
‘저는 트레킹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론세스바예스까진 힘들 것 같았어요.’
‘그래 좋은 결정이야. 이곳에선 당신 마음, 발길 닿는 곳으로 가면 돼. 단지 겨울이라 알베르게들이 많이 문을 닫고 쉬는 기간이라 쉽진 않겠지만! 자 이제 크레덴셜을 줘, 쎄요(Sello:경로의 각 구간에서 머무르는 알베르게에서 찍어주는 도장)를 찍어줄게!‘
‘첫 쎄요라니. 기분이 너무 이상하네요. 여기요! 예쁘게 잘 찍어주세요!‘
쾅-하고 찍힌 쎄요.
나를 데리고 안쪽으로 봉사자 선생님을 따라 들어갔다.
정말 유럽에 가면 늘 감탄하지만 이번에도 겉보기엔 그리 커 보이지 않는 건물 안에 공간 구성을 이렇게 맛깔나게 했는지. (유럽 건축/건물 양식 무척 좋아하는 나.)
‘자- 여기가 오늘 네가 잘 곳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여기에 머무르는 순례자는 평소에도 잘 없어! 오늘은 여기를 네가 다 혼자 쓰면 돼! 편해 보이는 침대를 골라.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여기 일회용 침대 커버도 매트리스에 깔도록 해. 샤워실과 화장실은 이쪽이고, 내일 오전 8시 30분 전까진 숙소에서 무조건 나가야 해. 여기 열쇠를 줄 테니 혹시나 외출하거든 이 열쇠를 가지고 나가! 나는 이제 가볼 테니 행운을 빌어! Buen camino!'
간단하게 내부 시설과 알베르게 규칙 등 설명을 들었다.
2층 침대 6개가 놓인 12인실 방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이 넓은 곳에서 혼자 잘 생각을 하니 좀 무서워지려고 했지만 그보다 더 빨리 찾아온 건 배고픔이었다.
아까 받은 일회용 매트리스 커버를 씌우고 그 위에 침낭을 펼쳤다. 하루종일 걸어 퉁퉁 부은 발을 주물럭 대며 구글맵으로 근처에 먹을만한 식당이 있는지 주변 검색을 했다.
구글맵에서 찾은 레스토랑은 알베르게 근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다만 문제는 가는 길이 좀 캄캄하고 무서웠다는 것. 핸드폰으로 플래시를 켜서 지도를 따라 걸었다.
그렇게 도착한 레스토랑의 풍경은 마치 이태원에 미국의 오래된 바(?) 같은 느낌이었다. 에… 진짜 내부는 목조인테리어로 어두컴컴했고 속절없이 켜져 있는 스포츠 TV방송, 그리고 스탠딩바가 있으면서 또 그 옆엔 식탁들이 주룩 있고. 내가 생각했던 식당의 형태와는 많이 달랐다.
‘아… 안녕하세요. 저 혹시 저녁 식사 지금 되나요?
‘저녁식사? 우리 지금 주방 쉬는 시간이라서 이따 8시 이후에나 가능해!’
‘아 그런가요? (아휴 어쩌지 배가 고파 죽겠다 진짜 8시까지 어떻게 기다려… 그리고 주방이 쉬는 시간? 닫는 시간은 도대체 무슨 말이야. 스페인에 시에스타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그건 점심과 저녁시간 사이즈음에나 그런고 아니었나?)’
‘근데 만약에 네가 배고프다면 말이야! 또르띠아는 가능해!’
‘또르띠아요? 네네!!! 그거 주세요!!!! (또르띠아? 내가 아는 그 난에 쌓인 그 맛있는 또르띠아? 여기에도 있다고? 헉…)‘
‘안에 햄 들어간 걸로 줘? 아님 그냥 감자 들어간 걸로 줘?’
‘네??? 아… 감자! 감자로 할게요! (스페인 또르띠아는 뭔가 들어가는 내용물이 다른 건가? 뭐 어때. 또르띠아는 다 맛있을 테니까!)’
‘알겠어! 조금만 기다리라고 친구! 금방 만들어줄게!‘
에? 이게 뭐지? 이게 또르띠아라고? 약간 우리 둘 사이에 대화 흐름의 분위기 나쁘지 않았는데 미스 커뮤니케이션이 있었나? 이게 맞나? 엥? 잉? 응?
‘저기… 요… 혹시 이게 뭐예요?’
‘이거? 또르띠아! 감자 들어간 또르띠아야.’
‘아… 하 제가 생각했던 거랑은 많이 다르네요. 저는 뭔가 랩으로 쌓인 걸 생각했어요!’
‘이건 스페인식 또르띠아야! 처음 먹어봐? 일단 먹어봐 맛있을 거라고!‘
‘네 감사합니다!’
아이고… 세상에나 공부 좀 하고 올걸… 좀 찾아볼걸…
눈앞에 놓인 생전 처음 보는 정체불명(?)의 샌드위치를 보며 스페인 식사 문화에 대해 처음 검색해 보았다.
보통 식당이라는 표현보다는 Bar라는 표현이 조금 더 대중적으로 쓰이며, 아 물론 큰 도시엔 레스토랑이 있긴 하지만 까미노 위에선 식당대신 Bar로 통용되는 듯했다.
술을 즐기지 않는 나는 Bar라는 표현과 공간에 거리감을 느꼈지만 순례길 위의 Bar들은 순례자에게 만능 그 자체의 공간! 아침 이른 시간엔 커피와 간단한 요깃거리를 팔고 점심엔 점심메뉴와 주류들 그리고 저녁시간엔 저녁메뉴와 주류를! 그냥 거의 올데이 식당이나 다름없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시에스타라고 불리는 낮잠 시간(?)에도 까미노 위의 Bar들은 영업을 하는 것. 그리고 저녁은 보통 오후 7시에서 8시 사이에 주방이 오픈되어 일정 시간 이후로 저녁메뉴 제공이 가능하다는 정보를… 눈앞에 또르띠아를 보며 알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스페인의 또르띠아가 맞다는 사실도.
보기와는 다르게 식용유에 잘 구워낸 듯한 달걀 냄새가 향긋하고도 따끈따끈하게 올라와 코를 자극했다.
‘냠-’
뜨겁긴 했지만 하루종일 걸으며 허기진 배를 위로하기엔 충분히 맛있는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아차차… 빵이 좀 딱딱한 게 흠이긴 했지만! 몇 입 더 베어 먹었지만 딱딱한 빵에 입이 금세 텁텁해져 반을 다 먹기도 전에 먹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잠시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나를 위로했던 것은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스페인에 들어왔다고 이 또르띠아 하나에 5유로도 안 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빵이 딱딱해서 식사를 중단한 것은 표면적인 이유였다. 진짜의 이유는 난생처음으로 이렇게 걸어보니 힘이 들어 배고프긴 했지만 하도 체력적으로 힘들다 보니 입맛이 떨어져 뭔가를 배부르게 먹고 싶다는 의욕과 의지가 사라진 상태였던 것이다.
접시 위에 덩그러니 놓아진 남은 또르띠아를 보며, 이걸 가져가면 내일 혹시 언젠간 필요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이걸 싸가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결정은 다음화에서 나를 살리는 생명의 양식으로 둔갑할 예정이다.
숙소로 돌아와 하루종일 땀에 절어 다녔던 찝찝함을 해소하기 위해 간단하게 샤워를 했다. 뜨거운 물이 안 나오게 생긴 샤워실이었지만 의외로 빵빵하게 아주 잘 나와 나를 놀라게 했다.
일단 오늘 입고 걸었던 상의와 하의를 간단하게 손빨래해서 널어놓고 자기로 했다. 알베르게 역시도 따뜻하지 않은 것처럼 생겼지만 돌아가는 라디에이터에 따끈따끈한 공기가 느껴졌다.
흠… 사실은 오기 전 많은 걱정을 했다.
승무원을 하며 호텔 라이프를 남들보다 많이 겪고 익숙해진 상태라 호캉스를 즐기진 않지만 해외여행을 가면 무조건 좋은 호텔을 고집했던 나인데, 단 한 번도 공용 숙소에서 자보는 것은 생각도 못했는데. 게다가 공주님 엉덩이 소유자라 화장실을 집, 백화점, 호텔 아니면 잘 못 가는 나인데… 정말 괜찮을까???????
라는 생각이 무색하게도, 침낭 안에 들어가자마자 기절하고 말았다. 아마 알람을 맞춰놓지 않았으면 다음날 오후 12시가 넘어서 일어나는 대참사가 벌어졌을지도.
이번화는 총 2화로 나뉘어 연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