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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Aug 01. 2024

진퇴양난



 내가 하지 말아야 했던 미친 짓은 바로 이것이다.


 겁도 없이 도로로 걷는 게 힘들어서 비교적 편해 보이는, 겨울엔 입산 금지인 피레네 산맥을 넘는 까미노 산길로 들어가 버린 것. 출입 엄금 절대 엄금! 외워 외워!


 사실 오늘에서야 브런치를 통해 처음으로 고백한다. 지금까지도 이 위험한 결정에 많은 후회를 하고 있고, 질타를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언덕 진 도로 옆에 있는 뜬금없는 집 한 채를 지나며 이미 시작한 지 몇 시간이 흘렀음에도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진전 없는 속도에, 순간 눈앞에 보이는 까미노 표식을 발견했다.


plz come this way......라고 말하는 듯 했다.


 도로에 위치한 바로 옆쪽의 샛길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곳에 발을 들여놓고 말았다.



‘아니! 이렇게! 평화롭고 편한 길을! 왜! 겨울엔 못 가게 하는 거야?’



 비브람 밑창으로 된 나의 등산화는 눈과 비가 내려 젖어버린 도로를 걷기엔 너무 미끄러웠었는데, 젖은 나뭇잎으로 된 자연산(?) 바닥을 걸으니 미끄럽지도 않고 아주 만족스러웠더랬다.


 까미노 길은 처음엔 평지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헉- 하면서 무언가 일이 조금씩 잘못된 가는 것을 느낀 것은 도로를 떠나 눈앞에 끝이 어딘지도 모를 저 먼 끝까지 펼쳐진 장황한 언덕길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다.



 순간 조금 망설였다. 이미 까미노 길로 들어온 지 거의 한 시간 정도가 다 되어가던 시점이었는데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서 도로로 돌아간다면, 난 오늘 안에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냈다. 이유는 발 칼로스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 중간에 Bar도 알베르게도 없는 다이렉트 구간이었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진퇴양난이었다. 나에겐 어떤 선택지도 없었다. 그냥 지도를 보며 앞만 보고 걸어가는 것 외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여전히 인터넷은 먹통이었다. 서둘러 가지 않으면 산속에 고립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들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하… 순간의 잘못된 판단과 실행이 나를 이렇게 괴롭게 만드는구나!


  처음엔 룰루랄라 이 좋기만 한 길~이라고 생각하며 당차게 들어왔건만, 왜 겨울엔 입산 금지 시켜놓았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여실히 알게 되었다.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요 며칠간의 폭설로 인해 나무들이 다 쓰러져 길을 막고 있는 곳들이 정말 많았다. 난 행여 쓰러진 나무 사이를 지나다가 얼굴에 상처가 생길라 모자로 얼굴을 단단히 감싸 쥐고 투우소마냥 고개를 한껏 숙여 걸어 나갔다.


 

이 정도는 양반이다.


좌- 오후 1:05 / 우- 오후 1:48

 

 나름 꽤 열심히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거의 35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지도상 별 차이는 없었다. 그 이유는 남산만 오르던 애가 800m가 넘는 고지대를 처음 겪어서였던걸까, 눈이 점점 높게만 쌓여갔던 길은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것조차 힘들었고 5분 걷고 2분 쉬고 5분 걷고 2분 쉬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기 때문에 속도가 더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처사였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큰일 났다. 물이 없다. 먹을 음식도 없다. Bar도 없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다.


 아침에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안 먹고 몇 시간을 내리 걸었더니 오후 2시가 되어서야 허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주변에 마트처럼 보이는 곳이 없어 오늘 마실 물과 식량을 사지 못하고 그냥 왔는데 진짜로 큰일이 나버렸다.


 순간 산에 고립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두 배, 세배로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발목까지 쌓여 한걸음 내딛기도 힘든 그 길 위에서 극심한 추위와 허기, 공포감에 사로잡혀 그대로 얼어버렸다.


 더 이상 한 발짝도 나아갈 힘도 의지도 없었다.


‘핸드폰!! 119? 스페인 119는 전화번호가 뭐였지?‘


‘아니 진작에 좀! 까미노 관련된 영상들 좀 보면서 길 분위기 좀 익혀둘걸! 이렇게 매일매일 나는 언덕을 넘고 산을 넘어야 하는 거야?’


‘나 오늘 여기서 이렇게 죽는 거야? 아니지! 이렇게 여기서 죽는 건 아니지!!!! 내가 죽고 싶었던 건 맞지만 여기서 아사, 동사로 죽는 건 내가 원했던 방식이 아니야!‘


‘무서워 너무 무서워 전화, 핸드폰만 됐어도!!! 내가 어쩌자고 이 길로 들어온 거지? 다시 되돌아갈까? 아니 나 더 이상 못 걷겠어.‘


‘다 끝난 것 같아. 난 여기서 이렇게 오늘 죽는 건가 봐… 겨울엔 아무도 이 길로 안 올 테니까 나는 아마 내년 봄쯤에나 발견되려나…‘


‘우리 엄마 보고 싶다…’


 짧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인적 없는 꽁꽁 얼어버린 산속에서 패닉에 빠진 것이다.




 하지만 범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했다.

즉시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 먼저 어떻게든 해보려 여러 시도를 했다.


 세상에나…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스페인으로 들어오자 핸드폰이 먹통이 된 이유를 알았다. 프랑스의 오렌지 유심으로 끼워서 사용 중이었는데 핸드폰 네트워크 설정에서 ‘데이터로밍’이 꺼져있던 것! 이 설정을 바로 해지하자마자 기가 막히게 인터넷이 잘되기 시작했다.


 일단 가까운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을 돌렸다.


‘나 지금 산속인데 여기서 죽을지도 몰라.’


 한국과 스페인의 시차 때문에 내 카톡은 무의미하게도 소리 없는 아우성이나 다름없었다.


 스페인 119에 전화를 하려다가 말았다. 혹시나 생존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벌금을 내기엔 주머니 사정이 영 신통치 않았기에.


 정말 신기한 경험을 했다. 사람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면 무서울 정도로 이성적으로 행동한다는 것.


 글로 그때의 두려움을 표현하려니 한계가 있다. 하지만 진짜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마주하게 되니 이상하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려다 뚝-멈추더니 제2의 자아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야. 정신 차려! 너 지금 여기서 울면? 체온 빠져나가고 더 추워질 거야, 에너지 손실도 덤이야! 알아? 정신 똑바로 차려. 일단 인터넷 문제는 해결됐어. 너 배고프잖아? 가방 좀 뒤져서 먹을 것 좀 찾아보자… 울지 마, 울면 다 끝이야. 지금 이건 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발목까지 쌓여 얼어버린 눈 속에 발을 야무지게 박아 넣고 매고 있던 배낭을 풀었다. 배낭이 풀리자마자 등에 찼던 땀이 싸악 식더니 가뜩이나 추웠는데 더 추워져버렸다. 이미 경량패딩, 바람막이 그리고 그 위에 판초까지 껴입어 어느 정도 추위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져버렸다.


 몸과 손을 바들바들 떨어가며 온 가방을 뒤지기 시작하려고 할 때! 어제 먹다 싸 온 또르띠아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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