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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Jun 03. 2024

결심, D-day.

우울증. 이 무서운 녀석.

 

 나는 집순이다.

승무원이라면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라고들 많이 생각하시겠지만. 나 같은 경우엔 일 할 때를 제외하고 특별한 일이 없을 땐 휴무날엔 거의 집에만 있는다. 제일 편하고 아늑한 홈 스위트 홈.


 코로나로 회사 운영이 거의 올 스탑 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하필 몸담고 일하는 회사가 항공사였으니.

회사는 직원들이 함께 회사의 짐을 나눠지자며 직원들에게 휴직 동의서 사인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 순환 휴직 기간엔 너무나도 행복했었다.

그동안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휴식’이라니.




 휴직 기간이 길어지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차차. 나는 코로나와 거의 동시에 자취를 시작해 버렸는데 월세와 관리비, 함께 지내는 강아지 등등.. 돈나 갈 곳은 많았지만 돈 들어올 구석은 없었다. 우리 회사는 겸업이 금지였기 때문.


 시간이 조금 흐르고 외부 활동이 가능해지는 시간이 왔다. 회사에서는 초단시간? 초단기간 겸업을 부분적으로 허용했다.

나는 급한 대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레고 조립, 쿠팡 이츠 등등..

 생애 첫 아르바이트였다.




 연일 코로나 사망자가 뉴스에 나오자 겁이 났다. 원래도 겁이 좀 있는 성격이라 외부 활동을 아예 단절시켜 버렸다. 모아놓은 돈들은 이내 점점 바닥을 드러냈다.

 

 원래 독립심 있고 자존심 강한 성격 탓에 누구에게 도와달라 절대 말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게 손 내미느니 죽어버리는 게 나을 정도였거니와 당시 사업을 하던 우리 부모님도 경제적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충분히 잘 알고 있었기에.


 그리고 모두가 나와 같이 힘든 시간을 겪고 있을 거란 생각에 도와달라 말하는 것은 마치 큰 죄를 짓는 거란 생각이 강했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자 원래 경미했던 우울증이 거의 중증 수준으로 치닫았다.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았고,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가 많이 의지하고 오랜 시간 모든 걸 나눴으며 함께하는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었던 사람과 이별까지 하게 됐으니.


 빛 한줄기조차 들어오지 못하게 커튼을 쳐두고 밤낮으로 캄캄했던 자취집처럼. 내 인생도 말라비틀어져 죽어가는 생물처럼 고요하게 검은 물속으로 점점 가라앉아만 갔다.


 혼자라는 두려움과 아무도 날 도와주지 못한다는 절망감에 14층 오피스텔에서 뛰어내리는 상상을 줄곧 해오다. 마침내.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나 하나쯤 이 세상에서 사라져도 모두의 시간은 아무 일 없이 흐를 테고, 내가 죽어야만 나는 편해질 것 같아.’


 그렇게 나는 D-day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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