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nny Jun 06. 2024

정말 괜찮겠어?

‘아니! 안 괜찮은 것 같아.’

 


 며칠 밤낮을 시간관념 없이 보냈다.


 드디어 D-day. 결전의 날.


 타던 차는 동생에게 주기로, 기타 예적금은 가족에게 전달하기로 결정했다는 유서 아닌 짧은 메모만 남겼다.

아이폰과 카톡엔 내가 지정한 사람이 코드번호 메시지를 받으면 내가 떠나고 난 후, 계정 관리할 권한이 주어진다.


 드디어 모든 준비를 마쳤다.


 사실 죽으려고 결심하기 전에 편하게 죽는 수많은 방법을 검색했더랬다.


 그 당시 내 핸드폰 검색 기록엔 모두 죽음과 관련된 암울한 기록 천지였었다.


 결과적으로 고통스럽지 않고 편하게 죽는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아! 한 가지. 스위스는 안락사가 부분 허용되기 때문에 병원에서 내가 건강 관련 더 이상 삶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명확한 의학적 증명이 있다면 약물 주입으로 편히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비용은 대략 3000만 원 정도. 신체는 몹시 건강했지만 온전치 못한 정신상태를 안락사 명분으로 세우기엔 꽤나 부족하다고 생각되어 포기했다.


 그래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어디선가 들었는데 뛰어내리면 사람이 땅에 부딪혀서 죽기보단 떨어지기 전에 이미 심장이 멎는다는 얘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래! 가보자고! 몇 초쯤이야. 눈만 딱 감으면 난 편해질 거야.‘


 사실 이 방법을 생각하기 전에 또 몇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내가 떨어지면 오피스텔 값이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했고 내가 가면 이제 강아지들 밥은 누가 줘야 하나, 아니 누군가 대신 잘 키워줘야 할 텐데 등등.

 

아마 죽을 생각이 없었던 걸지도.


 하지만 이내 또다시 현실과 마주한 벽이 또다시 너무나 버겁게 느껴져 짧은 망상으로 흘려보냈다.




 오랜만에 깨끗하게 씻고 새벽 3시쯤 14층 오피스텔 옥상 공용정원으로 올라갔다.


 CCTV는 단 한대 사각지대에 있었고, 난간도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높지도 않은, 최적의 장소였다.


 맨발로 난간에 올라섰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두려움일까 서러움일까, 얼굴은 눈물범벅에 몸은 금세 땀으로 흠뻑 젖어들어갔다. 내가 보는 이 광경이 마지막일 거라 생각하니 별별 게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내가 살아온 삶.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


 그러다 갑자기 내가 여기에 올라서게 된 이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쩌다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여기 서서 미친 사람처럼 울고 있는 거야?’


 지금의 나로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치부되지만 바로 우울증. 우울증 때문이었다.


 한 번만 용기 내어 병원에 갔더라면.


 아니? 애초에 우울증이 생기지 않았더라면!




 내 우울증에 시초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나는 굉장히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소위 MBTI에서 T. 그것도 대문자 T.


 아주 아끼던 대학 친구가 있었다. 동네도 같은 데다 나름 특수한 과를 전공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이해 못 하는 학교 생활에 대해 추억을 나눌 수도 있었고, 졸업 후 같은 길을 바라보고 준비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서로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성장과정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었으며, 끔찍하고 상상도 못 할 아픔 또한 나에게 공유해 준 친구였다.


 우울증의 시작은 이랬다.

어느 날 그 친구가 한 남자를 만나서 큰 상처를 입었다.

그 과정에서 그 친구는 우울증이 생겼고 실제로 자살시도도 여러 번 했었다.


 나는 그런 그 친구를 몹시 아꼈기에, 친구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 친구가 힘들어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 친구의 우울함에 함께 물들여지고 말았다. 나는 그땐 몰랐다. 친구를 위로한답시고 ‘나’를 던져두고 나갔던 것이 정말 미련한 행동이었음을, 촉 끝에 독이 묻은 화살이 되어 나를 향해 되돌아올 줄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갑자기 죽는 게 너무 억울해졌다.


 그 친구는 몇 년째 꾸준히 상담도 받고 병원에서 약도 타먹는데, 나는! 나는 왜 안 되는 거야? 나는 왜 병원에 가지 않은 거지? 그 친구는 나름 해결방법을 찾아 삶을 연장시키고 있는데 나는 왜 남에게서 스며든 우울증을 탓하며 여기서 멈추려고 하는 거지? 내가 이렇게 나약한 사람이었어? 아니 그리고 이별? 그까짓 게 뭔데 나랑 헤어진 그놈은 나 없이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살고 있을 텐데! 돈? 코로나 때문에 잠깐 없는 건데 뭐!


 오만가지 생각이 뒤엉키며 머리가 아팠다. 그냥 이대로 죽기엔 너무 말도 안 되는 변명 투성이었다.


’그래. 일단 갈 땐 가더라도 죽는 거야 언제든 할 수 있으니까! 죽기 전에 버킷리스트 다 해보고 가는 건 좀 무리더라도 꼭 하고픈 것으로  딱-한 가지만 해보자.‘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간에서 내려와 다시 자취집으로 들어갔다.


 짧은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지만 내려와서 집에 들어오니 이미 한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옥상 난간에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쓴 탓일까?

깨어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 잠들었다. 아주 오래간만에 악몽도 꾸지 않고 편히, 아주 긴 시간 동안 잠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스스로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난 괜찮아지고 편해질 거란건 안일한 생각이었다. 그저 도망치면 다 괜찮아 질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괜찮음은 진정한 괜찮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자고 일어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죽기 전에 이렇다 할 업적을 한 개 정돈 남기고 가도 되잖아? ’


<나의 버킷리스트>

- 오로라 탐험

-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나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우울증 치료보다는 버킷리스트 중에 무얼 해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미룬 것뿐이지 죽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기 때문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