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웃는 모습이 그립다.
활짝 웃는 모습이 예쁘단 말을 들었을 땐, 기분이 달콤하면서 하루동안 모든 일이 즐거울 것만 같다.
우리 할머니가 나는 웃는 모습이 제일 예쁘다 했다.
유전적인 영향이 있는 걸까? 우리 엄마의 입이 삐뚤어져, 어딜 가나 사람들은 입이 돌아가서 약 좀 지어먹어야겠어. 어릴 땐, 우리 엄마가 원래 그런 모습인 줄 알았다. 그리고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우리 엄마와 더 많이 닮아가고 있다.
13년 가을.
난 둘째를 잉태하고 있었다. 그때는 첫째와 우리 부부는 남쪽에서 살다, 서울로 이사 가서 살던 때였다.
물가도 비쌌지만, 장점과 단점이 있었다. 아이와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가려 노력했지만, 쉽게 되지 않을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뭔가 모르게 느낌이 이상했다. 양치를 해도 물이 질질질 입에서 흘렀다. 오른쪽 얼굴은 감각이 없었다. 놀란 나머지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러나, 눈도 제대로 깜빡일 수가 없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배를 움켜잡으며 울었다.
놀란 나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뱃속에 있는 아기가 걱정이 되었다. 나로 인해 잃으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나는 아무런 조치를 치하지 않았다.
" 돌아올 거야. 잠시잠깐 온 얼굴마비라 나아질 거야. "
나는 놀란 내 마음을 달래며, 약으로 쓰지 않겠다는 어리석음에 발걸음은 한의원으로 향했다. 한의원에서 한의사는 내 얼굴을 보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러나 나는 내 뱃속의 아이가 우선이었다. 그 당시 " 한의원 아닌 병원으로 달려갔으면 고쳐졌을까?"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고통이 너무 컸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귀뒤쪽이 아팠다. 그래도 나는 참고 또 참았다. 둘째를 무사히 출산하고, 나는 회복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굴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으로 행복했다.
14년 3월.
우린 서울을 잠시 잊고 포항으로 이사를 했다.
내가 웃고 싶을 때 항상 마음껏 웃었던 그 시간. 나는 너무 그립다. 웃고 싶어도 웃을 때 마귀 같은 내 얼굴을 볼 때면, 웃고 싶지 않다. 그걸 숨기고 싶은 나는 표정이 무표정으로 항상 변해 사람들에게 보였다. 지금은 그것이 편하다.
내 마음을 아는 사람은 내 남편뿐.
한 번씩 나의 일그러진 얼굴을 따라 하는 아이도 있었다.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한의원 치료를 시작했다. 한의사는 나에게 80%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희망이 있을 거란 생각에 치료를 시작했다. 근데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정도 마음에 안정이 되었을까. 사람들이 내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또 유심히 내 얼굴을 보는 사람도 있다. 나는 내 얼굴 때문에 저러는구나라고 뒷걸음친다. 세월이 흘러 내 얼굴은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피곤한 상태가 되면 얼굴에 표시가 많이 난다.
그래서 나는 인간관계가 더 어렵다 생각한다. 과연 그 사람의 말 못 할 사정이 있는지, 알고 얘기하는 것일까.
오히려 그렇게 묻는 것에 나는 마음 편히 얘기해 준다.
" 구안와사 왔습니까?"
" 네 맞습니다. 구안와사 왔습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 지금은 피하지않고 대답해준다.
" 아 내 몸 컨디션이 안 좋구나. 쉬어야겠구나." 생각한다.
사람들 중에 몸이 불편하거나 아픈 사람은 그 부분에 대한 상처가 있다. 묻는말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묻는 자에게 다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표현한다.
내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은 불편하지 않고 평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