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부인에서 곰부인이 되었다.
10월의 끝자락.
퇴근 후 금요일은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다. 한 달 내내 비가 주룩주룩 내리니 멍하니 앉아 창밖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살찌는 계절이 왔을까? 내 몸이 점점 포동포동 불어났지만, 눈앞에 보이는 토스트. 내 마음은 갈팡질팡. 하지만 따뜻한 카페라떼와 토스트를 포기할 수 없었다.
' 당첨! 오늘 하루만 먹고 다시 다이어트하자.'
창가에 앉아 불빛사이로 보이는 빗줄기. 한참을 멍하니 앉아 내 귀 에어팟에서 들리는 음악을 들으며 생각에 빠져버렸다. 이게 자유부인의 낙원인가? 아이들이 보고 싶지만, 일주일에 한 번의 내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달달한 토스트 한입, 모락모락 따뜻한 카페라떼. 오늘따라 비가 오는 창밖이 너무 아름다워 보인다.
"반쪽? 어디야?"
"일하면서 돈 벌고 있지."
"그래, 이따가 집에서 보자."
1분 뒤, 띠리링 띠리링 울리는 반쪽전화.
"왜? 일한다며 전화해?"
"잠시 농땡이 부리며 대화 좀 해야겠어."
우리 부부는 잠시 서로만의 갈등을 풀어나갔다.
"그럼 이제 나는 운동하러 갈 테니, 카페에 앉아 힐링 좀 하고 집에서 보자"
"오케이. 퇴근하고 오는 중이지? 뻥가쟁이야. 이따 집에서 봐"
장난꾸러기 남편과 통화종료 후 다시 멍하니 창밖을 보며 1년을 되돌아보며 생각에 잠겼다.
봄, 여름, 가을. 손가락에 하나, 둘, 셋 꼽히는 추억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한 해. 브런치를 열어 내가 적어둔 글을 읽으니 기억이 새록새록 파노라마가 스르륵 지나가기 시작한다.
2시간쯤 지났을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지만, 사부작사부작 정류장을 향해 걸었다. 빗방울이 톡톡톡 내 발등을 스쳐 바지에 스며드는 것도 오늘따라 기분 탓인 걸까? 비 오는 길을 걷는 게 낭만적이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도로를 비취는 네온사인 불빛들. 그리고 정류장 모서리 끝에서 똑똑똑 떨어지는 빗방울소리. 정류장 처마경계에서 가로등사이로 주르륵주르륵 내리는 장댓비. 혼자만의 시간이 오늘따라 황홀하다.
드디어 버스도착.
버스에 올라타자 기사님이 인사를 해주신다.
"안녕하세요?"
버스 안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창밖을 보는데 세상밖에 비취는 모든 조명들이 무지개빛처럼 오늘따라 유난히 밝게 보인다.
'불타는 금요일에 기분까지 UP, 빨리 우리 진주들 보러 가야지. 조금만 기다려. '
집 앞에서 반갑게 맞아주는 빼꼼쟁이 땡칠이. 비가 더 강하게 내리니 마당에서 뒹굴거리는 땡칠이 응가. 더러워지기 전에 쓱쓱 주워 담고 물로 쏴 아악!
집으로 들어서자, 4호의 함박웃음소리. 아이들 보살 펴 주신 선생님배웅하고 식탁 위에 앉아 흩어져있는 아이들을 불렀다.
"빨리 치우고 우리 쉬자?"
티브이를 틀어 보고 있는데 막내가 내 옆에 앉아 나에게 물었다.
"엄마? 살찔 거야? 뚱뚱해지면 안 돼. "
"음......"
운동이 끝난 신랑을 보며 후다닥 뛰어가는 막내. 손에 든 봉지과자 4개. 언니들에게 하나씩 건네주며 신이 나버렸다.
"금요일인데 치킨파티해야 되는 거 아닌가?"
"좋아 좋아. 치킨 시켜줘 아빠."
아빠를 제일 좋아하는 붕어빵 막둥이가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 것 같다.
30분 뒤, 치킨이 오자 막내와 아이들과 식탁에 앉았다. 막내가 나를 보며 말했다.
"엄마도 먹을 거야?"
"음...... 아니."
"그래 엄마는 먹지 마. 곰처럼 뚱뚱해지면 안 되잖아. 친구들이 엄마 예쁘다고 해야 되는데......"
신랑과 눈이 마주쳤다.
'스팀이 오르락내리락. 붕어빵 같은 얼굴에 말도 아주 붕어빵처럼 닮았네.'
"그래 안 먹을게......"
'그래. 다시 살빼야겠다. 예쁘다는 말만 하던 막내입에서 곰처럼 배가 불렀다는 말을 하는데...... 꼭 뺄게 막둥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