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에 푹 빠진 곰부인

곰부인도 낙엽잎처럼 깊게 물들다.

by 예쁜여우

주말이 지나, 진주들이 눈 빠지게 기다리는 그날. 월요일 아침부터 발걸음이 빨라졌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큰고모를 제일 기다렸던 첫째.

"다녀오겠습니다. 엄마 오늘 학원 땡땡이?"

"안돼! 다녀와서 보면 되지."

고개 푹, 입이 오리주둥이처럼 쭈욱.

"잘 갔다 와. 이따 보자!"

하나, 둘, 셋 등원 후, 돌봄 선생님 곁에서 꿀잠 주무시는 막둥이에게 인사한 후 출근길로 향했다.

두근두근.

일하면서 워치를 터치터치.

1시간, 2시간, 3시간......

오늘따라 내 워치의 화면이 쉴 틈 없이 깜빡깜빡.


15년 전,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서울생활에 잊을 수 없는 시간을 그녀와 함께 보냈다. 그녀에게 하나밖에 없는 조카는 더욱 특별했다. 짧지만 서울잠실에 살면서 2년의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던 1호. 그녀가 온다고 하면 눈 빠지게 기다린다. 나 역시 큰 파도가 휘몰아치고 난 뒤, 그리워하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려준다. 그녀가 건네는 말 한마디는 덕담과 위로가 담겨 힘이 된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시누와 올케사이는 서먹하고 가까워질 수 없는데 그렇지 않아?'

시댁식구들이 미우면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내게는 시누이 두 명은 행운의 인연이다.

서울에서의 인연, 포항에서의 인연.

그녀들이 없으면 나의 결혼생활도 즐겁지 않았을 것이다. 중간중간 탈도 있었지만, 나는 후폭풍이 메몰아치고 그녀들의 빈자리를 그리워했다.

멋쟁이 고모와 못난이 1호.

드디어 퇴근시간.

"아가씨. 어디예요?"

"1호랑 올케집으로 가고 있어. 언니도 도착해서 집으로 온데."

후다다닥 집도착, 내발 걸음과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것저것 준비하고, 청소하고, 세탁기 돌리고.

"여보, 형님 도착했데. 운동 끝나고 바로와!"

"알겠어. 빨리 올게. 근데 군불도 떼야하는데......"

"일단 얼른 하고 와!"

땡칠이가 낯선 사람이 오니 짖어대기 시작했다.

띠리리링. 1호와 아가씨가 마중을 나가자, 나도 앞치마 두르고 하던 일 정리하고 나갔다.

이산상봉하듯 모두들 첫날의 가슴 두근거림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리와 온 식구들이 모인 집안의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잠시 후, 신랑이 들어오자 서먹서먹한 인사 때문인지 후다다닥 인사 건네며 말했다.

"누나, 나 안방이 추워지면 안 되니 불 좀 때고 올게. 먼저 저녁 먹고 있어."

"그래. 얼른 하고 올 거지?"

"한 30분에서 1시간 걸린 거야. 먼저 먹어 배고프겠다. "

'그분이 또 오셨다. 트리플 A형.

속마음은 아니면서 내숭쟁이. 같이 먹지 좀......'

시간이 흐른 뒤, 신랑이 들어와 앉아 온 가족이 다모인 자리에서도 남매의 서먹함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맥주를 찾는 손님덕에 우리는 서로눈치 보며 한 모금씩 꼴깍꼴깍. 홍당무처럼 시뻘게진 얼굴에서 입을 열었다.

"누나, 어쩌고 저쩌고......(생략)"

'어이구, 남매의 서먹함. 술이 아니었음 속마음의 얘기도 뻥 안 들어내겠다. 근데 적당히 마시자 여보?'

시끌벅적한 시간이 후다다닥 새벽이 올 때쯤, 모두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며 그다음 날을 기약했다.

"땡땡 아 고생했어. 내일 몇 시 마쳐?"

"내일 반나절만 하고 퇴근해요. 같이 밥 먹어요"

시누들과 점심약속을 하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헤어졌다.


하루가 어찌나 빨리 후다닥 지나가버리는지......

시누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한참을 못해온 수다를 떨었다. 아이들이 없으니 이렇게 평온했을까. 서울에서 형님이 내려오면 어딜 가나 항상 붙어있었던 네 진주. 세월이 흐르니 우리들만의 여유도 생겨버렸다.


15년 전 만난 시누들은 멋쟁이들이었다. 그녀들은 연예인 부럽지 않은 미모와 몸매를 가져 처음 본 순간 내 눈에 훅 들어왔다. 쑥스러움이 많아 서먹서먹했던 그 시간들. 잊을 수가 없다.


'그때는 우리들도 다 20대였는데...... 또 40대 50대의 모습도 눈에 아른아른거리겠죠?'


전통찻집을 들어가서 우린 대추차와 쌍화탕 2잔, 그리고 쑥케이크를 시키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 생의 첫 계란 동동 쌍화탕은 오늘따라 사르륵 잘도 목안에서 넘어간다. 형님은 폰으로 셀카를 찍자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아가씨, 형님, 올케.

셋이 찍는 셀카에는 장난기가 넘치는 장면으로 찍혀버렸다.

"쫌 웃자. 땡땡 아"

나의 삐뚤어져버린 얼굴이 형님손가락에 튕기며 함박웃음을 지으며 추억의 사진으로 남아버렸다.

그녀들은 나에게 사이를 서먹하지 않게 하는 센스가 넘쳤다. 올케대신 나의 이름을 부른다. 형님은 신랑의 누나. 아가씨는 내 신랑의 동생이지만 나보다 나이가 3살 위인 언니다. 옛날에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그 호칭이 먼 사이를 느끼지 않게 불러주었다. 시누이와 올케가 아닌, 그녀들의 동생처럼 잘 챙겨준다. 가끔 티격태격 오가는 상황도 있지만, 미워할 수 없는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3일째의 날이 지나고 마지막날.

아쉬움반, 그리움반. 출퇴근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해 카카오톡을 넣었다.

"(앞부분생략) 형님 조심히 올라가세요. 또 오세요."

"아가씨 오늘도 파이팅! 고생했어요. 이따 올 거죠?"

그녀들에게 한 명씩 답이 오고 나는 한참을 멍하게 젊은 옛 생각을 떠올렸다.


'가난하게 힘들게 보내온 시간들. 무슨 일이 생기면 서울, 포항에서 한걸음으로 달려온 그녀들. 하지만 당신 덕분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주름이 하나씩 늘어가며 함께 늙어가네요. 아프지 않고 남은 인생 즐겁게 살아갑시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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