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남동생, 수능 잘 쳐
2007년 20살.
나의 취업일에 태어난 우리 집의 귀한 장남.
수술을 하고 나온 우리 엄마가 이모들과 사촌언니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아들을 낳고 싶어 고생을 많이 했던 날들. 우리 할머니와 아빠에게 큰 일을 해주었다. 신생아실 앞에서 할머니, 고모, 아빠, 나, 여동생은 유리문에 커튼이 쳐지길 눈 빠지게 기다렸다. 커튼이 쳐지자 우리 할머니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버렸다.
"아이고, 우리 복덩이. 하나뿐인 우리 장손 잘생겼네. 이아이가 큰 누나입니다. 우리 집 귀한 장손 우유 배고프지 않게 많이 많이 주세요. 아무 탈 없이 잘 봐주세요"
병실에는 아빠의 그토록 바라던 꽃다발의 문구.
'득남을 축하드립니다.'
아들을 바라던 우리 부모님에게 큰 복을 안고 태어난 복덩이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
"형제가 어떻게 되나요?"
"1남 2녀입니다. 장녀입니다."
"동생들이 있군요. 학생이죠?."
"아...... 네.."
뽀글뽀글 머리를 하고 오동통한 뽀샤시한 얼굴을 가진 장난꾸러기. 그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 출근하려고 준비하면 꼬맹이동생이 빼꼼 쳐다보며
"큰누나 어디가? 까까사 올 거야?"
"당연히 사줘야지. 많이 사 올게."
"오예~누나 오늘 데리러 올 수 있어? 작은누나 말고 큰누나가 데리러 와 꼭!"
"알겠어. 이따 보자."
귀염둥이 4살 꼬맹이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짧지만 5년의 시간이 나에게 우리 아이들만큼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조금만 더 늦게 출가를 했다면 남매사이가 더 돈독해지고 부모님의 짐을 덜어줄 수 있었을까? 타임머신이 있다면 4살 꼬맹이를 다시 만나보고 싶다.
5살이 되었을 때, 나는 현재 신랑을 집에 인사시켰다. 신랑을 빼꼼빼꼼 쳐다보며 낯가릴 듯 말듯한 아이. 스캔을 한 뒤, 신랑과 함께 마트로 갔다. 10분 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 이거 뭐야? 누가 사줬어?"
"매형이 사줬어. 멋있지?"
그때의 매형과 꼬맹이처남의 손을 꼭 잡고 걸어오는 모습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조카들이 하나, 둘, 셋, 넷 태어날 때마다 잘 놀아주고 행복했던 시간. 휴가도 함께 보내며 추억을 보냈던 시간들. 초등학생이 되어 늦은 나의 결혼식 때 손 편지를 써주었던 아이. 부모님이 계시지만, 혼자서 척척 모든 일을 해오며 집안의 장남처럼 해온 막내. 장녀인 빈자리를 빈틈없이 메꿔주는 것 같아 듬직하다. 그 작은 아이가 벌써 고3이 되어 수능을 친다는 생각에 내 마음이 더 설레고 신경이 쓰인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면 서운할 때도 있었다. 사춘기가 장난꾸러기에 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누나라면 끔뻑 넘어가며 좋아했던 아인데, 사춘기가 되더니 말수가 줄고 무뚝뚝한 소년이 되어버렸다. 사춘기는 장난꾸러기 아이에게도 마법을 부려버렸다. 한 번씩 안부를 전하며 톡을 할 때면 누나와 동생사이는 여전히 돈독했다. 눈앞에서는 어느 남매처럼 서먹함이 생겨버렸다. 하지만 남동생의 성향이 겉과 속마음은 다르다는 걸 알고 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 하루 전 올라갈지 아님 주말에 올라갈지 고민이 되었다. 주말에 가면 아이들이 많아 불편할까, 하루전가면 컨디션회복에 불편하지 않을까 모든 게 망설여졌다.
'그래. 수능 끝나고 맛있는 거 사들고 가야지.'
고민 끝에 뭐가 좋을지 생각하다 제일 필요할 것 같은 텀블러와 초콜릿. 망설임 없이 결제하고 톡을 했다. 그리고 답이 왔다. 잠시 나는 의자에 앉아 꼬맹이와 찍은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네가 지금까지 잘해왔듯이 잘할 거라 믿어. 밤새 도서관 다니며 공부한다고 고생했어. 수능 끝나고 우리 남매끼리 밥 한 번하자. 큰누나가 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