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줄줄이 감기에 걸리다.
지. 독. 한. 감기
11월에는 아이들과 울긋불긋 가을 구경 좀 해야겠다 싶었는데, 첫째가 일요일 저녁 콜록콜록.
"엄마, 아침에 일어나니 목이 너무 아파서 학교못갈것 같아."
"뭐? 초등학생이 아니라 이제 빠지면 안 돼! 마스크 쓰고 얼른 집에 있는 비상약 먹고 학교 가야지. 깨병 부리지 말고 따뜻한 물 좀 마시고 얼른~가. "
궁시렁 궁시렁. 입이 투우 욱.
"다른 애들도 독감 걸려서 얘기하고 빠지는데......"
"넌 아직 열도 없고 아침이라서 목이 잠긴 거야. 따뜻하게 입고 물 많이 마시고 학교 가자?"
나는 요즘 아침마다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는 워킹맘으로 불린다. 기분도 엄마 UP.DOWN, 1호도 UP.DOWN. 엄마를 잘 챙기는 딸인데, 요즘 왜 이러지? 한 번씩 중1병이 제대로 온 1호가 달라진다. 무슨 말을 하면 귀에서 나의 말소리가 튕겨져 내게로 핑핑 되돌아온다. 퇴근 후 신랑이 힘들어하는 나에게 동영상 하나를 보내주었다.
"나도 이거 보면서 하나씩 바꿔볼 테니, 엄마인 너도 한번 들어보고 생각해 봐. 나는 반복 들으니 1호 말투가 이제 이해가 가는 것 같아."
"그래. 머리 식히며 한번 보고 생각 좀 해볼게."
"오히려 역효과 https://youtube.com/watch?v=qKkhqgtDAL8&si=2yaKkptx81GwguOg
매년 우리 집은 넷 중 감기, 장염, 질병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비상이다. 바이러스가 돌고 돌고 결국 막내까지 걸린다. 코로나 걸렸을 땐, 4호가 어려서 더욱 조심스러웠었다. 철벽방어를 하지 않으면 워킹맘은 모든 것이 힘들어진다. 그래도 우열곡절 아이들이 지금까지 잘 버텨줘서 감사하다.
이런저런 사유로 학교를 빠져버렸더니 그게 오점이었다. 이젠 나의 생각이 바뀌었다. 아이들이 아프면 나는 입에서 '하루 쉴까?'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조금만 아프거나 단순감기라도 꾀병반으로 내 눈을 바라보며 말한다.
내가 어렸을 땐, 우리 엄마가 입원하지 않는 이상, 학교에 법정질병이 있을 때 제외하고는 통하지 않았던 결석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개근상은 꼭 타야 한다는 우리 엄마. 그 덕분에 나는 조퇴, 결석 없이 초중고시절 개근상을 타며 졸업했다.
내 인생에 벼락이 쳐도 그 자리를 버틸 수 있었던 건 엄마 덕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 엄마는 나를 키울 때 얼마나 힘들고 마음이 아팠을까.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멍하니 앉아 한참을 내 과거를 되돌아보며 우리 엄마를 생각했다.
'쉬운 것만 알려주면 아이들이 쉬운 길만 갈 것 같아. 마음이 아파도 강하게 키워야 돼.'
결국 1호는 미열이 났고, 요즘 유행하는 독감은 아니지만 감기 때문에 다음날 결석을 해버렸다.
"오늘만 푹 쉬고 내일은 가자. 독감 노노. 약 잘 챙겨 먹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안절부절못한 내 마음은 여전히 집안에 있다.
신랑이 퇴근 후 날씨가 추워지자 군불을 때기 시작했다. 참나무향이 집 앞까지 술술 풍기며 하얀 연기가 지붕 위로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집으로 들어가니 빼빼로를 하나씩 들고 먹고 있는데, 막내는 꿈나라로 빠져있다. 운동을 마친 신랑이 들어오자 검은 봉지 안에 준비한 간식.
"짜잔. 얘들아, 오늘 빼빼로 데이네. 1호, 2호, 3호 받아. 4호? 그리고 이건 엄마 거!"
"오~4호는 자는데? 내 것도 있네? 어제오늘 잊어줄게. 얘들아 아프지 말자"
'그래. 푹 쉬고 심하게 아프지는 말자 우리.'
다음날 줄줄이 3호, 4호에게 옮겨버렸다. 아침출근 전 코로나 때 샀던 바이러스 소독건으로 온 집을 구석구석 소독한 뒤 출근준비를 하는데 막내돌봄선생님이 말했다.
"어머니, 그게 뭐예요?"
"선생님 소독건이에요. 좀 별나죠? 코로나 때 쓰던 건데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아플 때 소독해요."
3호와 4호는 다행히 열없이 감기약으로 가볍게 지나가버렸다.
아이들이 아프면 나는 손에 일이 잡히지 않는다. 자식이 아프면 엄마의 마음도 아프다. 또 워킹맘의 엄마들은 더 애가 탄다. 과거에 2주 동안 독감 a형, b형을 반복하며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또 코로나로 온 가족이 걸려 가족수가 많아 격리일자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조금이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코로나 때 병원에서 뿌렸던 소독건을 보고 우리 집에도 쓸모가 있을 듯 보여 소독액과 소독건을 구비해 두었다. 효과는...... 모르겠지만, 뿌린 뒤 내 마음이 조금 더 안정이 된다.
토요일아침.
내 몸이 무겁고 목이 따가우면서 콧물이 나기 시작했다. 한 살 한 살 먹으니 내 몸이 예전과 다르다는 걸 느낀다. 아이들이 아파도 끝까지 살아남았는데 요즘 그 끝이 나에게 온다. 출근준비를 하며 다시 한번 소독건으로 소독하며 지 이 이이이 잉~쏴아.
퇴근 후 나는 소아과에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
주말이라 소아과는 이 계절이 바빠온다. 마지막 남은 나의 숙제. 미루었던 독감예방접종.
작년 독감주사를 맞고 신나게 놀자던 아이들이 반전을 보여주었다. 그 뒤로 나는 접종할 때마다 걱정이 앞선다. 1호, 2호는 씩씩하게 뚝. 딱.
이제 남은 건 두 명. 벌써부터 내 몸이 후들후들. 제발 수월하게 지나가자. 갑자기 3호가 울어버리자 소아과 한복판에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씩씩하게 맡게 다던 4호마저 울어버리며 내 머릿속이 하얀 백지가 되어버렸었다. 오 마이갓......
그걸 보고 있던 간호사선생님이 그 순간을 후딱 정리해 주셨다.
"선생님. 죄송해요 그리고 감사합니다. 얘들아 얼른 집으로 가자."
그래서 올해는 나누어서 맞춰야겠다는 생각으로 1호 4호는 엄마. 2호 3호는 아빠와 함께 맞기로 했다.
늦어지게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추워지기 전에 독감주사를 맞혀야겠다는 생각으로 후다다닥.
2호, 3호는 아빠와 가겠다 해서 1호, 4호만 데리고 소아과를 도착했다. 독감유행으로 붐비기 시작했다.
"4호? 큰언니 안 울고 잘 맞으면 안 울 거지?"
"언니도 아파서 울걸?"
"4호 하나도 안 아픈데? 끝!"
다음 주자인 4호는 거짓말인지 아닌지 1호를 이리저리 훑어보며 긴장이 온몸에 가득해졌다.
"와아~하나도 안 아프지? 진짜 잘 맞는다."
나의 임무는 완료.
"3호! 4호 울지 않고 맞았어. 하나도 안 아프데."
"거짓말. 4호 아프지?"
4호가 씨이익 웃으며 마침표를 찍었다.
일요일오후.
예정된 2호와 3호는 아빠의 호령에 나갈 채비를 했다. 전화를 끊고 순간 멈칫.
"잠깐만, 예약이 안된데..... 독감환자증가로 접수마감 됐데....."
그 말을 들은 3호 귀가 쫑긋. 눈이 반짝반짝.
"오~~ 예! 그럼 안 맞아도 되는 거지?"
"아니. 다음 주에 예약해 놨어. 아빠랑 무. 조. 건 가야 돼!."
"엄마. 나일단 놀러 나갔다 와도 되지?"
"어...... 마스크 마스크 벗지 마!"
'나는 가을단풍놀이 가고 싶은데...... 아파서 못 나가고, 모든 게 내 마음대로 안되는구나.'
1호는 고모가게로 슈우 우웅.
2호, 3호는 친구들 만나러 슈우 우웅.
반쪽도 바람 쐬며 동네 한 바퀴 슈우 우웅.
나와 4호는 집콕하며 꿀 낮잠에 빠져 잠시 휴식 중.
'빨리 나아서 우리 단풍구경 가자.
가을 내연산 보러 가야지? 아프지 말자.'
늦가을의 낙엽을 출근길에서 밟으며......
'다들 안아파서 다행이다. 나는?'
파아란 하늘아래. 새소리를 들으며 버스정류장에서 나의 아쉬움을 달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