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어 컨덕터에 도전하다

by 이경주



나는 80세 현역 프리랜서 국외 여행 인솔 자 다 (Tour Conductor). 지금도 일하고 있다. 60대 중반에 시작해서 15년 이상 2000 명 이상 고객을 직접 인솔하면서 수십 개 나라를 다니고 있다. 이 나이에 건강하게 왕성히 전 세계를 다니며 일 석 이 조의 삶을 산다.


늘 심장 뛰는 신나는 일상을 만끽하는 할머니다.




급변하는 세상 흔히 백 세 시대라고 한다. 그렇다 해도 환갑, 진갑 다 지난 사람이 이제 무슨 비즈니스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 더군다나 해외여행 인솔 자라니.


“말도 안 돼, 보통 사람 같으면 패키지여행도 힘들겠다.”


사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내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삶에 익숙하다. 조엘 오스틴은 “긍정의 사고방식만 있어도 반은 성공”이라고 했다. 나 야 말로 긍정의 힘이 나를 이끌어가니 바라고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내 삶에, 나는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


나는 20대 중반 기독교 모 교단 청년 연합 회에서 남편을 만났다. 아주 자연스럽게 2, 3년 교제하다가 믿음을 전제로 결혼했다. 우린 푯대를 향하여 힘차게 질주했다. 30대 초반까지 2 남 1 여 의 자녀 출산 아이들 교육에 여념이 없는, 그 시대 한국의 전형적인 평범한 전업 주부였다. 집, 교회만 왕래하던 철저한 우물 안 개구리였다. 남편은 잘 나가는 일간지 회사원으로 특히 여행을 좋아한다. 가장의 지독한 여행 사랑으로 우리 다섯 식구는 시간만 나면 여행을 갔다. 틈만 나면 떠났다고 하는 것이 더 좋겠다.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에 가니 가족 여행은 차츰 줄었다. 남편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국내외 어디든 여행을 많이 해라 여행은 공부다. 인맥도 쌓고 생활의 활력소라고 한다. 아마도 1960년대 한국 여행의 선구자, 동양의 마르코 폴로라고 불리 었던 김찬삼 여행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어느덧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남편의 정년 퇴임이다. 미리 준비하지 못했기에 퇴직 직후에는 반갑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니 그렇지 만도 않다. 그 후 남편은 자영업을 시작했고 사업은 승승장구하여 오히려 생활이 더욱 윤택해졌다. 다들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IMF도 끄떡없었다. 삼 남매 공부도 끝나고 결혼도 했다.ㅅ나는 80세 현역 프리랜서 국외 여행 인솔 자 다 (Tour Conductor). 지금도 일하고 있다. 60대 중반에 시작해서 15년 이상 2000 명 이상 고객을 직접 인솔하면서 수십 개 나라를 다니고 있다. 이 나이에 건강하게 왕성히 전 세계를 다니며 일 석 이 조의 삶을 산다.

늘 심장 뛰는 신나는 일상을 만끽하는 할머니다.


급변하는 세상 흔히 백 세 시대라고 한다. 그렇다 해도 환갑, 진갑 다 지난 사람이 이제 무슨 비즈니스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왜 없겠는가! 더군다나 해외여행 인솔 자라니.

“말도 안 돼, 보통 사람 같으면 패키지여행도 힘들겠다.”

사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내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삶에 익숙하다. 조엘 오스틴은 “긍정의 사고방식만 있어도 반은 성공”이라고 했다. 나 야 말로 긍정의 힘이 나를 이끌어가니 바라고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내 삶에, 나는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낸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

나는 20대 중반 기독교 모 교단 청년 연합 회에서 남편을 만났다. 아주 자연스럽게 2, 3년 교제하다가 믿음을 전제로 결혼했다. 우린 푯대를 향하여 힘차게 질주했다. 30대 초반까지 2 남 1 여 의 자녀 출산 아이들 교육에 여념이 없는, 그 시대 한국의 전형적인 평범한 전업 주부였다. 집, 교회만 왕래하던 철저한 우물 안 개구리였다. 남편은 잘 나가는 일간지 회사원으로 특히 여행을 좋아한다. 가장의 지독한 여행 사랑으로 우리 다섯 식구는 시간만 나면 여행을 갔다. 틈만 나면 떠났다고 하는 것이 더 좋겠다.

아이들이 중 고등학교에 가니 가족 여행은 차츰 줄었다. 남편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국내외 어디든 여행을 많이 해라 여행은 공부다. 인맥도 쌓고 생활의 활력소라고 한다. 아마도 1960년대 한국 여행의 선구자, 동양의 마르코 폴로라고 불리 었던 김찬삼 여행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하다.


어느덧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남편의 정년 퇴임이다. 미리 준비하지 못했기에 퇴직 직후에는 반갑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니 그렇지 만도 않다. 그 후 남편은 자영업을 시작했고 사업은 승승장구하여 오히려 생활이 더욱 윤택해졌다. 다들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IMF도 끄떡없었다. 삼 남매 공부도 끝나고 결혼도 했다.

ㅅ자다. 이 일을 하면서 더 활기차게 젊게 멋지게 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본인 스스로도 이 생활에 만족하다 고했다.

“나는 역 마 살이 끼어서 이 생활이 적성에 맞아"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한다. 실패를 완전히 성공으로 둔갑시켰다. 나는 차츰 남편이 하는 일에 매력을 느꼈다. 순간 야릇한 감정!


"나도 저 일을 하면 어떨까? 하고 싶다 할 수 있을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 -히브리서 1:1-


일하며 여행도 하고 참 멋지다. 이런 삶이 어딨어, 이거야 말로 신이 주신 선물 아닌가. 나는 급기야 남편에게 내 생각을 전했다.


“당신이!? 늙은 여자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어? 버럭 화부터 냈다.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

그러나 나는 포기하지 않고 며칠을 조르고 또 졸라 마침내 허락을 받았다.


나는 오래전부터 기독교 모 교단 전국 연합 회에서 중 책을 맡았다. 그러던 중 2006년 마침 실질적인 직책이 끝났다.

나는 그 후 투어 컨덕터에 집중적으로 몰입했다.

마침내 자격증 취득하기 위하여 대략 2. 50 대까지 주축인 수강 생 5, 60명의 틈에 끼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눠준 교제를 달달 외우다시피 공부했다. 할머니가 공부하고 있으니 신기했는지 관심 갖는 사람이 많다. 난 그들을 외면 한 체 내게 만 집중했다. 어느 50대 후반 정도 보이는 남자 수강 생은 나는 학교 선생이다. 정년 퇴직하면 여행도 좋고 지인들도 많아 제2의 직업 하려고 자격증 이수하려고 왔다고 한다. 그렇게 저마다 꿈과 계획으로, 여행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모인 이들과 이틀 동안 같은 장소에서 15시간을 공부했다. 길지는 않았지만 치열한 시간이었다. 그 자리에서 시험도 보고 차후 발표에 자격증 이수했다.


"국외 여행 인솔 자 소양 교육

대상 : 여행 업체에서 6 개월 이상 근무하고 국외 여행 경험이 있는 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하는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자 (출처 : 문화체육관광부)"


내게 는 어느 누구에게도 오픈하기 싫은 비행기에 대한 슬픈 사연이 있다. 가족과 친척 외에 모르는 "비밀 아닌 비밀".

1968년, 28세에 있었던 일이다. 오빠는 통역 장교로 제대한 후 누구나 알만 한 회사에 근무했다. 월남 전 끝날 무렵 베트남 다낭으로 2년 출장을 갔다. 임무를 마치고 귀국 날짜를 정해 놓고 사물까지 한국으로 다 보내 놓은 상황이었다. 고국으로 돌아오기 전 비행기 추락사로 33세 총각으로 비명에 갔다. 그때부터 비행기는 내게 슬픔과 두려움의 대상이고 적대감의 존재였다. 이런 내가 국외여행인솔자라니 믿기지 않다.


"내가 어떻게 비행기를 타겠어, 절대 안 타지. 내 생에 비행기 타는 일은 결코 없다,

이 말을 자주 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보다 더 많이 탄다. 이 어찌 된 셈인가? 아마도 신의 섭리겠지. 지금은 비즈니스도 하고 여행도 하는 팔순의 외소 한 단신 할머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맡은 일이라면 또 다른 힘, 능력,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한다. 지금도 세계를 무대 삼아 인생 후반에 비행기 타는 것이 일상이 됐다. 참으로 기막힌 아이러니요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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