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13: '쪽'
유튜브를 보는데 "쪽 팔린다"라는 표현을 들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여러 방면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말인 것 같아. 정리해 본다. 라틴어, 그리스어 혹은 한자어와는 달리 순우리말은 그 기원이 명확하게 할 수 있는 문헌을 찾기가 어려워 명확한 의미를 밝히기에 난점이 있지만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생각해 보면서 추론해 나가기로 하겠다. (그러므로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다. 여기 쓰는 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공상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니 생각나는 걸 제한 없이 써보기로 한다).
"쪽 팔리다", "면이 서다" 등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쪽'이나 '면'은 어떤 방향성을 나타내는 말이다. 달리 말하자면 어떤 한 방향에서 바라본 형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의미적으로 보자면 '면'은 그 상형 원리부터 얼굴의 윤곽과 눈을 형상화한 것이므로 얼굴의 생김새이다. '쪽'은 하나의 방향성을 가리키는 말으로도 쓰인다. 예를 들면 이 쪽, 저 쪽이 그것이다. '쪽'은 얼굴의 비속어로 쓰이는데 얼굴을 나타내는 다른 비속어인 '면상(面相(像))'과 비교하면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을 것 같다.
면상에서 '상'은 한자사전을 찾아보니 두 가지 한자를 쓴다. 하나는 '코끼리 상(像)'자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 상(相)'자이다. 코끼리 상(像) 자는 코끼리의 뼈로 코끼리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는 것이고 서로 상(相) 자도 나무를 마주한 눈을 의미하니 감각적인 눈으로 본 하나의 형상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면상이 비속어로서 쓰이는 이유는 '얼굴'에 부여되는 의미들 중에서 생김새만을 따로 떼어 의미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쪽'은 '얼굴의 생김새'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추상적인 의미로도 사용되는 것 같다. '쪽 팔리다'라는 표현의 사용을 생각해 본다면 쪽은 외면적 생김새를 뜻한다기보다는 '한 사람이 어떠어떠한 사람이라고 생각되게 비치는 이미지(그중에서도 부정적)'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연예인들의 '이미지'가 그렇다. 우리가 '이미지 관리'를 한다고 할 때 우리가 관리하는 것은 보여지는 행위를 관리하는 것이지 자기 자신의 실제 성격에 대한 성찰과 관리를 말하지 않는다.
'쪽'이라는 단어를 "온전한 것을 쪽으로 나누어 '이 쪽'과 '저 쪽'이 된다"는 말과 함께 해석해 보면 상징이나 징표를 의미할 수 있을 것 같다.
상징은 서구권 언어에서 symbol(영), symbole(프), symbol(독)으로 거의 같게 쓰인다. 모두 그리스어 symbolon에 기원을 두는데 이 의미는 두 개로 나뉜 물건을 의미한다. 하나로 온전했던 것을 둘로 나누어 나누어 갖고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짝을 맞추어 보아 그 사람인지 아는 '징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징표'라는 의미와 '쪽 팔리다'에서 '쪽'이 어떤 의미에서 사용되는지 함께 생각해 보자.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쪽'은 ' 어떤 사람의 '행위들이 보여지는 이미지'로 해석된다. 이 정의는 이전의 글 '단어 5: 무대'에서 무대를 "보여질 것이 요구되는 행위들의 장소"라고 정의한 것과 이어진다. 여기에서 '쪽'은 하나의 가상(simulacre)이고 배우의 연기는 시뮬라시옹(simulation)이다. "배우의 말은 무대에서 진실할수록 현실에서는 진실이 아닌 것"이 되기 때문이다(단어 6: 연극). 배우들의 말과 행동은 하나의 이미지, 그 사람을 연결시킬 수 있는 나누어진 한쪽의 징표를 생성한다.
설화에서 나오는 '둘로 쪼개진 검' 혹은 '쪼개어 나누어 갖은 청동거울'이 징표로서 기능할 수 있는 이유는 쪼개어진 면의 굴곡이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배우의 연극을 보고 품안에 간직한 관객의 징표도 그러한 불규칙한 면을 가지고 있다. 바로 얼굴의 굴곡이다. 그래서 일일 연속극 등에서 악역으로 나온 사람들이 길거리에 돌아다니면 아주머니들에게 그렇게 욕을 먹는 것이다. 연속극의 시청자로서 아주머니들은 배우의 한쪽의 의 이미지를 자신의 상징(symbolon; 징표)으로 간직하였다가. 실제로 혹은 다른 방송에서 그 사람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 불규칙한 굴곡에 자신의 상징을 맞추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상징 속에 함께 담아두었던 자신의 분노도 표출한다.
그러나 앞서 말하였듯이 (한정된 의미에서) '징표', '이미지', '쪽'은 '보여질것이 요구되는 행위들의 장소'가 전제된다. 그러므로 이 '이미지'는 배우의 연기와 같이 만들어질 수 있다. '이미지'를 '관리'할 수 있으려면 자신의 행위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보여질 것을 요구받는지 아는 기술(technē)이 필요하고 또 이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이 감각은 미묘하지만 아주 정확하게 우리의 문화와 사회의 감각적 혹은 개념적 패러다임 속에서 정의된다. 그러므로 '이미지의 관리자'는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필요성(necessity)과 사용성(utility)을 알고 목적에 맞추어 이미지-상품을 생산하는 장인과 같다.
다시 '쪽 팔린다'라는 말로 돌아와 보자. 앞서 논의한 것에 비추어 볼 때 '쪽'은 좋은 쪽의 이미지가 아니므로 자신이 비춰지기를 원했던 '도덕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러나 '문화-사회적 경제'는 실은 이 패러다임에 반하여 추락하는 이미지를 요구한다. 이는 도스토옙스키가 소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사람들은 의인의 타락과 수치를 보고 싶어"한다고 말했던 것을 상기하게 한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존경 받던 인물인 조시마 장로가 성인으로 추대되기 위하여는 시신이 썩지 않는 기적이 일어나야 하는데 고약한 악취를 풍기며 썩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현장의 소식은 암자 전체와 암자를 찾아온 수도사들 사이에 순식간에 퍼졌고, 이어서 수도원에 전해져 모든 수도사들을 충격에 빠뜨렸으며, 결국 읍내에 까지 알려져 신자든 신자가 아니든 모든 사람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쪽 팔린다'에서 투영되는 '사회 문화적 패러다임을 위반하는 이미지'는 그러므로 하나의 상품으로써 큰 가치가 있다. "사람들은 의인의 타락과 수치를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