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다. 그래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꼭 노동요가 필요하다. 몇 년간은 노동요로 팟캐스트를 주로 들었는데, 즐겨 듣던 팟캐스트 방송이 종료된 후로는 뭔가를 적극적으로 찾아 들으려는 노력이 시들해졌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유목민처럼 유명하다는 팟캐스트나 유튜브를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부터 찬양을 듣기 시작했다. 교회에 무지한 내가 대강 알기로 찬양은 찬송가의 대중화 버전쯤인 것 같다. 찬송가와 대중가요의 중간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교회에 다니지 않는 내가 듣기에도 찬양은 크게 걸리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갑자기 내가 찬양을 찾아 듣는 이유는 당연히, 남편 때문이다. 나의 오래된 숙적. 나를 가장 아프고 슬프게, 그리고 불안하게 만드는 인간. 나의 쓸쓸함의 원천. 나의.... 아들의 아빠.
믿을 만한 게 필요했다. 내가 내 인생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건 애저녁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내 인생이 폭풍우에 휩쓸리고 있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뻔한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말처럼 나는, '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을 믿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온 힘을 기울여 다 해내고 나머지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런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하늘의 뜻이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결과는 아닐지라도 그래도 나의 노력의 대가는, 어느 정도의 보상은 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을 만나고부터의 삶은 아니었다. 진인사를 해도, 대천명이 오지 않았다.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마치 하늘이 없는 것 같았다.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푸른 하늘은 나오지 않았다. 어둡고 어두웠다. 어둠에 익숙해져 희미한 빛으로 사물을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될 때 더 짙은 어둠이 찾아와 또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어둠의 점층으로 인해 나는, 점점 어둠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결혼하기 전 나는, 경솔하게 결정하고 성급하게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내신 시험 중에 무단결석을 하고 대학교를 두 달 다니다가 마음대로 그만두었으며 누구를 만나든 쉽게 헤어지자고 말했었다. 나는 하고 싶으면 하고 싶은 순간에 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로 인해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 내가 감당할 만한 것이었다.
그런데 왜, 왜 지금은 이혼하지 않는 걸까? 그렇게 순간적인 감정으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던 내가, 왜 이혼에서만큼은 왜 이렇게 우유부단한 것일까? 애정이 남아있어서? 아이 때문에? 아직,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믿고 있어서? 모르겠다.
무더운 여름 주말 아침이다. 한 달 전부터 워터파크에 가고 싶다는 아이에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이번 주에는 안 되고 다음 주에 가자고 하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아이와 단 둘이는 워터파크에 가본 적이 없다. 경기도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은, 일은 하고 있지만 세 달째 월급을 받지는 못하고 있는 남편은, 회의가 있을 때에만 집에 내려와 시간을 맞춰 함께 워터파크에 가는 게 쉽지 않다.
남편이 있었지만 남편이 없는 것처럼 지낸 시간들이 길다. 아이도 아빠가 있었지만 아빠와 함께하지 못한 경험들이 수두룩하다. 이번에는 워터파크에 가는 것마저도 단 둘이 해야 하는 것일까, 둘이라도 갔다 와야 하는 것일까 고민이다.
그래도, 아이가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