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지팔지꼰의 전형이지만

by 휴지기

두 달에 한 번쯤, 우리의 가족 결합에 문제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는다. 나와 남편, 아이는 통신사 가족 결합으로 묶여 있는데 남편이 휴대폰비를 내지 못해 휴대폰이 끊기면, 가족 결합 내 이용정지 회선으로 인해 여러 혜택이 축소될 수 있다는 문자가 온다. 지금도 남편 휴대폰이 끊겨있는 상황이라 통신사에서 문자를 보내온 것이다.


휴대폰 가족 결합은 쉽게 문제가 발생했다가 해결되었다가 하는데, 실제 가족 결합 문제를 해결하는 건 쉽지 않다. 우리의 가족 결합 지속 여부는 딱 한 달 뒤쯤 결정될 예정이다.


아주 오래 버텼고 너무 많이 힘들었다. 이 결혼은 여기서 끝. 하고 빨리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싶다. 하지만 또... 그러고 싶지 않기도 하다. 여전히 이대로, 느슨하게라도 이 결합을 유지하고 싶기도 하다.


24년 전, 잘 다니던 대학교를 자퇴하고 다시 공부를 했었다.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때 만났었던 첫사랑 엄마의 질문, '너 여기 나와서 뭐 할래?'라는 말에 자극을 받아 결정한 것이었다.


남자친구의 엄마는 내가 아닌 당신의 아들, 그러니까 당시 나의 남자친구에게 한 질문이었지만 마치 나에게 하는 질문 같았고, 점수 맞춰서 대학교에 갔던 나는 갑자기, 재수에 대한 열망이 미친 듯이 솟구쳤다.


재수할 때, 나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가장 먼저 학원에 도착해 공부를 시작하고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전 시간 배운 내용을 복습했다. 모의고사 점수도 쭉쭉 올라 현역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대학교의 생각지도 못했던 학과를 꿈꾸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수능을 망쳤다. 나는 지원했던 모든 대학에서 '불합격'이라는 통지를 받았다. 스무 살의 나에게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고, 나는 한 달 이상을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았다. 특히 부모님은 더. 실망에 가득한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고 며칠 뒤, 생각지도 못한 학교에서 추가 합격 연락이 왔다. 기뻤다. 그때부터, 나에게는 어떤 믿음 같은 것이 생겼다.


인생은, 적어도 나의 인생은 계단형으로 우상향 하고 있다는 믿음.


아무리 노력해도 발전하지 않는 것 같은 시기가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일어나 공부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치열하게 시간을 보냈는데도 나만 제자리인 것 같은 시기가 있다. 그리고 그 시기는 생각보다 길다. 이만하면 나아질 만도 한데, 싶은 순간을 여러 번 지나친 후에야, '아, 나는 안되나 보다, 나에게는 더 이상의 가능성이 없는 것 같다'라고 느끼고 포기할까 말까 고민하는 순간에야, 한 계단 올라갈 기회가 생기게 되는 것 같았다.


나의 인생 그래프에 대한 믿음은 꽤 오래 지속되었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결혼과 함께 인생 그래프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 버린 이유는, 내 인생을 나 혼자만의 힘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건 내 인생을 온전히 나의 의지와 생각만으로 움직일 수 있을 때 가능한 그래프였다.


그리고 지금 다시, 그 믿음을 꺼내본다.


이혼숙려기간이 한 달 남은 지금, 결국 내 인생 계단을 한 계단 올라서기 위해서는 남편과 헤어져야 하는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붙잡고 끝까지 가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찌 되었는 한 계단 올라갈 때가 되기는 했을 것이다.



며칠 전 똥 꿈을 꾸었다. 길몽이라고 생각하여 챗지피티에 꿈 해몽을 해달라고 했더니, 챗지피티가 아래와 같이 답해줬다.


“나는 지금, 원치 않게 떠안은 책임이나 상황 때문에 심리적으로 압박을 느끼고 있고, 그게 드러나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


으음... 나의 심리를 너무나도 적확하게 표현해 주어서 깜짝 놀랐다. 맞다. 나는 두려워하고 있다. 그래도, 이 두려움은 한 계단 올라가기 위해 내가 꼭 겪어야 하는 감정이라고, 어쩔 수 없이 견뎌내야 하는 고통이라고 믿으련다.


내 인생은 결국은 우상향이다. 지금은, 꼭, 한 계단 올라갈 순간이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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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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