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시누이의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 그러니까 남편에게는 사돈어른이 돌아가신 것이다. 장례식이 치러지는 병원은 집에서 쉼 없이 운전해 가도 꼬박 5시간이 넘게 걸리는 먼 곳에 있었고, 남편은 장례식장에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깊이 고민했다.
인간의 도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문상을 가야 하는 게 맞았다. 남편뿐 아니라 나도 말이다. 그런데, 남편에게는 그 멀리까지 갈 돈이 없었다. 남편은 돈이 없어 휴대폰도 끊긴 사람이다. 또한 시누이와는 소원해진 지 오래다. 남편의 사업과 관련하여 몇 번 돈 문제가 있었고 그 문제들 사이에서 서로 감정이 상해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남편은 꼬박 하루를 고민하더니 다녀오겠다고 했다. 고등학교 친구에게 여비와 조의금을 빌려서 말이다. 그리고 남편은 거의 여섯 시간을 운전해 가서 한 시간의 문상을 마친 후 친척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려왔다. 남편은 그래도 다녀와서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남편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았다. 남편은 망했어도 웃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후계동 사람들처럼, 망해도 망가지지는 않는구나를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무슨 말을 해도 웃지 않았고 온몸에 히마리가 하나도 없었다. 어깨는 더 굽어 마치 땅속으로 꺼져버릴 것만 같았다.
왜 그러냐고,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남편이 힘겹게 대답했다.
"나 그때 장례식 갈 때 OO이한테 돈을 빌렸었잖아. 원래는 오늘까지 돈을 갚기로 했었거든. 근데 임금이 아직도 안 나오니까, 그 돈을 못줬는데... 근데 걔가 그렇게까지 말할 줄 몰랐어. 사람을 막, 깔아뭉개더라구. 일이 안되고 나서 자존심 다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봐. 내가 너무 자존심이 상해서, 고등학교 친구까지도 나를 그렇게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럴 거 같구. 어떻게든 벗어나보려고 발버둥을 치는데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맥이 탁, 풀리는 게 너무 힘드네."
남편에게 어떤 말을 들었는지 물었지만 남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남편은 내리 사흘을 힘들어했다. 어떤 말에도 크게 대답하지 않고 밥도 잘 먹지 않았다. 걸음걸이에 힘이 없어지고 얼굴은 한참이나 더 늙어 보이는 표정을 했다. 나는 남편을 타박했다.
"오빠 사업 그렇게 되고 내가 오빠 눈치 보는 거 알아? 오빠 표정이 어두우면 뭔가 또 사고가 터졌나, 큰일이 났나 불안하단 말이야."
남편은 '뭐가'라고 또 힘없이, 들릴 듯 말 듯 대답하고 말았다. 나는 하고 싶은 뒷말을, '오빠는 우울할 자격도 없는 거 알아?'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하고 꿀꺽 삼켰다. 그런 말이 남편을 더 우울하게 만들 것 같아서였다. 남편이 말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장례식장에 가지 말았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
인간으로서 도리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든다. 돈이 없는 남편은, 인간의 도리, 그 최소한의 도리를 하는 데에도 이렇게 힘들다. '은중과 상연'에서 가난은 상대적인 것 같다는 은중의 말에 망한 집의 딸 상연이 한 말, '아니, 가난은 절대적이야.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라는 말이 뼈에 사무치도록 공감된다.
남편은 그제부터 다시 평소대로 돌아왔다. 어쩌면 평소대로 돌아온 척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남편은 다시 웃고, 다시 요리를 하고, 다시 장난을 친다.
남편에게 그 고등학교 친구가 한 말은,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날카로운 말들은, 남편에게 아주 큰 상처로 남을 것이다.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흉기가 되어 때때로 남편을 아프게 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살아가야지. 상처 입은 채로, 고통스러운 채로, 다리를 절뚝이는 채로.
그러면 언젠가 그 상처가 흉터가 되어 몸에는 남아있으나 더는 아프지 않은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아파하며, 절뚝이며 걸어가야 하는지 기약이 없어 막막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냥 또 하루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