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은, 심지어 해결되지 않는 긴박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 사람들은 서로 대화하지 못한다. 해결되지 않는 긴박함은 절박함으로 업그레이드되고, 그 긴박함과 절박함에 몸서리치며 그들은 다만 말로 상대를 상처 입힐 뿐이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남편이 일으킨, 하지만 남편이 해결하지는 못하는 긴박하고 절박한 문제들에 휩싸여 남편을 말로 공격했다. 내 입에서는 원망의 크기만큼이나 날카롭게 벼려진 칼들이 내뱉어져 나왔고, 그것들이 남편의 연약한 부위를 쉴 새 없이 공격했다.
남편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자기도 성질을 내다가를 두어 번 반복하더니, 결국은 침묵했다. 내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바위처럼 차고 굳게 식어진 남편을 두고 나는 출근을 했다. 나는 몇 년째 우리 집의 가장이다.
내가 남편과 결국은 이혼하지 않은 이유는 딱 하나, 웃음 때문이었다. 남편과 있으면 그래도 웃는 순간이 많았다. 찰나의 웃음, 순식간에 사라질 감정이지만 가난해도 행복하다고 느끼는 장면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럴 땐 웃음이 뭐라고, 그깟 웃음이 뭐라고 왜 아직도 이 남자를 버리지 못하고 있나 깊은 후회가 밀려올 때가 있다. 웃음은 없지만 아이와의 단출하고 고요하며 평화로운 삶. 그게 더 나은 건지 모르겠다. 남편과의 롤러코스터 같은 결혼생활은 불행하게도 가장 두려운 추락 지점에 멈춰서 있는 듯하다.
내가 롤러코스터를 탈 때 무서워서 눈을 감는 것처럼, 지금 나도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기 무서워 눈을 감고 있는지 모르겠다. 잠시라도 웃을 수 있으니까 됐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면서 말이다.
이틀 뒤면 내 생일이다. 생일 따위, 크게 의미를 두고 있지 않지만 이번 생일만은 대접을 좀 받고 싶었다. 남편과 긴 터널을 힘겹게 빠져나온 대가를 받고 싶었지만..... 애석하게 아직도 터널 안이다.
햇빛이 있다고는 하는데, 조금만 가면 눈부실 만큼의 햇빛이 쏟아질 거라고는 하는데 아직은 손톱만 한 빛도 보이지 않는다.
귀로 듣는 햇빛, 이거야말로 진정한 희망고문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