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오랜만에 다 같이 호수 공원 산책을 나갔다 왔다. 사춘기 초입에 들어서 집 밖에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된 아이를 꼬셔 간신히 나간 나들이였다.
날이 참 좋았다. 남쪽 지방인 이곳엔 벌써 꽃이 피었다. 활짝 피어난 꽃처럼 우리들의 사정도 제발 좀 피어나길 바라며, 새로운 해에는 좀 덜 가난해지길 소망하며, 우리는 기분 좋게 걸었다.
집에서 15분쯤 걸어야 호수공원에 도착했다. 아이는 집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호수 공원까지 가는 길이 너무 멀다며 투덜댔고, 호수 공원에 도착해서는 공원이 너무 넓다며 또 투덜댔다. 아이의 투덜거림이 무겁지 않았다. 우리는 웃으며 아이의 저질 체력을 타박했다. 태권도도 끊었는데 이 정도 산책도 못하면 일상생활조차도 하기 힘들 거라고 겁도 주면서 웃었다.
나는 원래 잘 걷는다. 내가 유일하게 하는 운동이 걷기이고, 복권을 사러 자주 걸어 다녀서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또 오래 걸을 수 있다. 호수 공원을 산책할 때에는 슬렁슬렁 걷는 남편과 아이가 답답해 내가 먼저 훌쩍 앞서갔다가 기다리기를 반복했다. 왜 이렇게 걸음이 느리냐고 잔소리도 몇 차례 했던 것 같다.
호수 공원 한 바퀴 다 돌고 난 후였다. 원래는 도로로 나가 15분쯤을 걸어 집까지 돌아가야 했다. 그런데 왠지 호수 공원 안쪽으로 가면 집으로 가는 길이 나올 것 같았다. 도로를 걷는 것보다 산책로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게 더 좋을 것 같았다.
우리는 원래 알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걸었다. 산책로 끄트머리 계단으로 올라가 산길을 깊숙이 들어갔다. 알고 보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은 우리 집 방향으로 나 있었지만 등산길이었다. 그 길로 쭉 가면 산 정상까지 올라가야 집 쪽으로 내려갈 수 있는 거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서 있는 길이 등산코스라는 걸 알게 된 시점이 출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후였다는 거다. 다시 호수 공원 출구로 가 도로를 통해 집으로 가기도 애매했고, 의도치 않은 산 정상까지 오르기도 애매했다. 게다가 나는 이미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이 걸어 지쳐있었다.
우리는 잠깐의 고민 끝에 산 정상을 거쳐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등산을 선택한 것이다. 아이는 호수 공원 산책만 한다더니 등산이 웬 말이냐고 무겁게 투덜댔고, 나는 '엄마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라고, 그래서 '엄마도 힘들다'라고 대답했다. 가장 쌩쌩한 건 남편이었다. 남편은 하나도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남편은 땀도 안 나는 것 같았다.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되고부터는 걷는 모습이 반대가 되었다. 남편이 별 어려움도 없이 산을 오르고 그 뒤를 아이가 힘들어하면서도 바짝 따라갔다. 산책하면서 빨리 걷느라 진을 다 뺀 나는 숨을 헉헉대면서 맨 꼴찌로 산을 올랐다.
거친 숨을 내쉬며 가파른 오르막을 오르면서 생각했다. 이 등산이, 내 인생의 거대한 비유인지도 모르겠다고, 아니 비유였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남편은 여전히 가난하다. 여전히 임금이 나오지 않았고 빌려주었던 돈을 받지 못했으며 그리하여 오늘 아침에도 또 휴대폰이 끊겼다. 지금은 호수 공원을 산책할 때처럼 내가 한참을 앞서 걸으며 남편을 답답해하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어느 순간이 되면 남편이 힘든 기색도 없이 앞으로 나아가 저벅저벅 걸어가 주었으면 좋겠다. 그때는 내가 남편의 등을 보며, 남편이 뒤처진 나를 응원하며 그렇게 함께 정상에 올라가 쉬고 싶다. 우리의 산책과 등산이, 중간에 역전된 그 관계가 나와 남편의 삶에도 반영되어 주길, 그게 우리 삶의 거대한 메타포가 되어주길 기대하면서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올랐다.
남편은 산에서 내려와 도토리묵을 무치고 미나리전을 만들었다. 우리는 도토리묵과 미나리전을 먹고 낮잠을 잠시 잤고, 잠에서 깨어난 남편은 아이의 요구를 받아들여 닭가슴살 카레와 베트남 쌀국수를 만들었다. 남편은 마지막에는 유튜브에서 맥주 안주를 검색해 김치즈 부각과 스팸 튀김을 내왔다. 나와 아이는 남편이 만들어준 요리를 맛있게 먹었고, 그 배부름과 나른함으로 쉽게 잠이 들었다.
남편의 시간이 오길 소망한다.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식재료를 사고 공과금을 내며 우리의 일상을 영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돈 때문에 눈물짓는 날이 더는, 더는 찾아오질 않기를 기도한다.
남편이 만든 음식들이다. 원래 사진 찍는 걸 즐기지도 않고, 만드는 족족 먹기에 바빠 찍은 사진도 별로 없다. 어쨌든 남편이 만든 이 음식들을 먹으며 우리는 포동포동 살이 오르며 살아가고 있다. 남편의 음식들로 우리는 먹을 때는 행복한, 식구들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