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목요일 아침이었다. 남편이 물었다.
"오늘 법원 가는 날 아이야?"
맞았다. 그날은 협의이혼 2차 확정일이었다.
판사 앞에서 협의이혼 의사가 변함없음을 밝히고 협의이혼이 확정되었다는 판결을 받는 날. 협의이혼서류를 제출한 후 미성년자녀 양육 연수를 듣고 마찬가지로 미성년자녀 양육 관련된 상담을 1회 이상 받으면 서류 제출 이후 3개월쯤 뒤에 1, 2차 협의이혼 확정일을 받을 수 있다.
1차나 2차, 둘 중 하루 법원에 가서 판사로부터 협의이혼 확정 판결을 받으면 되는데 1차 때 법원에 가지 않았다. 미약한 희망 같은 것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잘될 것 같았다. 남편과 결혼할 때부터 느꼈던 희망이, 10년 넘게 현실이 되지 못한 희망이 지금쯤은 이루어질 수도 있을 거라 기대했다.
경기도에서 일을 끝내고 12월 말에 집에 내려온 남편은 여전히 두 달치의 임금을 받지 못했고, 그래서 거의 두 달째 거지다. 휴대폰은 끊긴 지 오래고 담배값이 없어 틱톡에서 북을 치며 푼돈을 모아 담배를 산다.
오른쪽 손목에 철심을 박고 있어 오른손으로는 무거운 물건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남편이 그거 천 원 이천 원 모으겠다고 휴대폰 화면을 엄지손가락으로 내도록 두드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말 그대로 참 웃기고 구질구질하며 슬프다. 웃프다는 표현이 너무나도 딱, 적확하게 들어맞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일을 한다. 끊어진 휴대폰을 부여잡고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가며 일을 도모한다. 하루 종일 컴퓨터에 앉아 자료를 분석하고 새로운 자료를 만들어낸다.
남편은 끈질기게 성실하다. 지혜롭지는 않지만 성실하다. 그래서 아직은 와이프인 내가 보기에 말할 수 없이 답답하지만 또 안쓰럽다.
오랜 고민 끝에 지난 목요일 법원에 가지 않았다. 이혼은 홧김에 하는 거라는데, 화는 나지 않았기 때문에 법원까지 갈 동력을 잃은 것 같다. 분노하지는 않는다. 다만 절망하고, 체념할 뿐이다.
또한, 그 많은 실망과 실패의 경험을 뛰어난 망각 능력으로 잊어버린 나는, 또 기대한다. 잘되겠지, 지금까지는 노동하고 대가가 없는 삶을 살았으니 이제는 슬렁슬렁 노동해도 대가가 돌아오는 삶을 살 수 있겠지. 그게 공평함이고 내가 믿는 세상의 이치이니까, 라고 여러 번 배신당한 믿음을 다시, 가져본다.
다양한 속죄요리를 선보이던 남편은 요리에 자신감이 생겼는지 이제는 베이킹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틀 전에는 새벽 2시까지 에그타르트를 만들어놓고 잤고, 나와 아이는 하루에 세 개씩 에그타르트를 먹으며 남편의 요리 솜씨를 칭찬한다.
남편은 하루에 한 번씩 나를 업어준다. 남편이 만든 음식을 먹고 살이 포동 하게 오른 나는
"오빠 무릎도 안 좋은데 나 업다가 도가니 나가."
라고 거절한다. 그러면 남편이 대답한다.
"나중에는 업어주고 싶어도 못 업어줘. 지금 해줄 수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업어줄게."
나는 남편의 도가니를 걱정하면서도 남편의 등에 순순히 업히고 남편은 결국은 등에 있는 나에게 장난을 친다. 우리의 장난을 눈치챈 아들은 방에서 나와 그 장난에 합류하고 이루는 한바탕 크게 웃는다.
결혼 이후 최고로 가난한 우리가, 최고로 많이 웃는다. 사는 게 참, 이상하다.
결국은 이혼을 하지 않은 나의 선택이 옳은지 모르겠다. 나는 이 순간, 우리가 함께 웃는 순간을 차마 버릴 수 없어 여전히 함께 사는 쪽을 선택했는데 이게,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내가 놓쳐버린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남편을 다시 한번 선택했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건 또 한 번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잘될 것이다. 결국은 승리할 것이다.
입춘도 지났으니 이제 우리에게는, 꽃피는 따사로운 봄날들이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