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적 남편 시점

by 휴지기

토요일.


자고 일어났는데도 몸이 찌뿌둥하다. 소파에서 자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새벽에 깬 뒤 다시 잠을 못 들어서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일어나자마자 아내가 커피를 사 오라고 시킨다. 소파에서 조금 더 뭉그적거리며 쉬고 싶은데... 아내 눈치가 보여 그럴 수 없다.


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고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 대 피운다. 모닝흡연. 이걸 해야지 정신이 좀 드는 것 같다.


두 달치의 임금이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카드회사에서, 채권자에게서, 자동차 회사에서, 같이 일한 사람들에게서 하루에도 수차례 독촉 전화가 온다.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닌데 자꾸만 그들에게 사과를 한다. 죄송하다고,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다음 주에는 꼭 해결될 거라고.


담배 연기 속으로 나의 불안과 두려움을 날려버린다. 그러면 잠시는 숨 쉴 수 있다.


커피를 사 왔다. 아내가 토스트를 만들어 놓았다. 토스트를 먹으면서 아내가 묻는다.


"오빠 오늘 뭐 할 거야?"

"일해야지."

"무슨 일?"


무슨 일, 이냐고 묻는 아내의 목소리에 빈정거림이 들어있는 걸 느낀다. 나는 모른 척 토스트를 상처 입은 마음과 함께 꿀꺽 삼키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한다.


"할 일이 있어."

"놀러 가자."

"어디를?"

"어디든. 주말이잖아."

"나 돈이 없어."

"언제는 오빠가 돈이 있었어?"


아내는 대놓고 나를 무시한다. 아내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상처받는다.


나는 내가 잘못한 걸 알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업을 한답시고 아내에게 독박육아와 살림을 시킨 것도 사실이고 그 사업이 망해 아내를 경제적으로 힘들게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한 번도 나의 잘못을 부정한 적이 없다. 아내가 나를 비난할 때마다 나는 그 비난을 묵묵히 들었고, 사과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사과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 걸 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노력하고 있다. 근데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답답하다. 답답해 미칠 것 같다. 그 와중에 아내의 비난을 듣고 그걸 또 못 들은 척 넘기기에는 힘에 부친다.


어디를 갈지 고민 끝에 다리가 예쁜 주변 해수욕장에 가기로 했다. 밖에 나가기 싫다는 아들을 억지로 차에 태워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아내와 아들은 차에 탈 때마다 말한다.


"전에 타던 차가 그리워. 이건 하이패스도 안되고 블랙박스도 안되고 너무 좁아."


돈이 없어 전에 타던 차를 팔고 10년 된 중고차를 샀다. 그게 벌써 4개월 전이다. 그 이후 더 좋은 차를 사주겠다고 약속했으나 역시나 그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세상은 한 번도 내 계획대로 가준 적이 없다. 그래서 아내에게 나는 언제나 거짓말쟁이가 된다.



해수욕장은 생각보다 좋았다. 아늑하고 깨끗했다. 해수욕장과 연결된 작은 섬에서 아들과 함께 가장 먼 바위까지 올라가 보았다. 아들은 꺄르르 잘도 웃는다. 왜 이런 행복을 전에는 그렇게 미뤄두기만 했을까 뼈저리게 후회가 된다.


파도가 쳐서 운동화가 젖었다. 아내는 운동화가 젖었다고 투덜거린다. 하지만 나는 이쯤은 아무렇지도 않다. 운동화는 좀 젖을 수도 있지. 신나게 놀았으니 이쯤은 아무렇지 않다고, 아니 오히려 더 즐거운 기억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수욕장 근처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를 마셨다. 횟집에 가고 싶었는데 돈이 없었다. 아내는 '회 먹으면서 오빠 술 안 마실 거면 가자. 내가 사줄게'라고 했지만 나는 회를 먹으면서 술을 마시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리고 아내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돈 생각을 안 했을 리 없다.



아들이 계속 연어를 먹고 싶다고 해 우리는 마트에 가서 연어를 샀다. 전복을 싸게 팔아 전복도 샀다. 물론 아내 카드로 샀다. 돈이 없으면 자존심이 함께 없어져야 한다는 걸, 수중에 돈이 한 푼도 없고 나서야 알았다.


집에 돌아오니 이상하게 몸이 너무 피곤했다. 아무거나 먹고 대충 저녁을 때우고 싶은데 아들이 자꾸 연어 요리가 먹고 싶다고 해 어쩔 수 없이 부엌에 들어갔다.


연어 스테이크와 연어 초밥과 연어회를 만들었다. 아내는 옆에서 전복을 손질해서 전복 버터구이를 만들었다. 아이와 아내는 내가 만든 요리를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 뭔가 느끼하다고 해 김치전을 또 만들었고, 그것도 좀 아쉬워서 마지막으로 라면도 끓였다.


요리를 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 먹는 데는 금방이었다. 만들고 설거지하고 만들고 설거지하고를 계속하다 보니 부엌에 세 시간쯤 서있었던 것 같다. 라면 먹은 설거지까지는 못할 거 같아 그릇을 싱크대에 담아두고 대강 정리를 했다.


티브이를 보고 있는 아내한테 말했다.


"이리 와, 업어줄게."


아내는 내 등에 잘도 업힌다. 나는 생색을 내듯 말한다.


"그래도 이렇게 맨날 업어주는 남편이 어딨냐?"


아내는 웃으며 말한다.


"맞아. 돈 문제만 없으면 우리는 참 좋아."



한때는, 돈 때문에 죽으려고 했었다. 새벽에 아무도 없는 방둑길을 걸으며 바다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했었다. 새벽 두 시나 세시쯤, 아내에게 오는 전화도 일부러 받지 않았었다. 그렇게 일 년 남짓을 보냈다.


죽으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현실이 죽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누구에게든 머리를 조아렸으나 언제나 그 실낱은 끊어졌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희망들은 매번, 뭉그러졌었다.


그런데 나 편하자고 아내와 아이에게 지옥 같은 삶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래서 버티고, 버티고, 또 버텼다. 그래서 아직까지, 살아있다.


나는 결국은 성공할 것이다. 그래서 내 죄책감을 이용해 나를 무지막지하게 시켜 먹고 나를 구박하던 아내를 그때는 내가 구박해 줄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아내는 '제발 좀,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비웃지만 결국은 그렇게 될 것이다.


다음 주에는 밀린 임금이 들어오길, 그래서 아이와 아내에게 맛있는 저녁 한 끼를 사줄 수 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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