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약속이 있었다. 남편의 사업이 망한 후로는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무 약속도 만들지 않기란 쉽지 않다. 만나자는 약속을 에둘러 거절하고 거절하다가 어쩔 수 없는 경우 약속 장소에 나간다. 무거운 마음을 갖고 나가고 더 무거운 마음을 갖고 집으로 돌아온다.
내가 약속을 만들지 않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너무, 미친 듯이 부러워서이다. 결혼을 했든 결혼을 하지 않았든 혹은 이혼을 했든, 그들의 삶은 안정적이다. 그들은 명품 목걸이를 하고 와 스페인에 다녀온 이야기를 한다. 그들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주식이 많이 올랐다는 이야기를 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에게 아이패드를 사주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들의 일상이 사무치도록 부럽다. 나의 꿈은 매달 내야 할 대출금과 카드값을 감당할 여유가 생기는 것, 내가 서있는 곳이 절벽이 아니라 평지가 되는 것, 낭떠러지로 떨어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딱 그것뿐이다.
오늘은 약속 내내 거짓 웃음을 짓느라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고민 이야기, 내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사소한 이야기들에 공감하려고 노력하느라 애썼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내 구질구질한 현실이 더 도드라져 보여 속이 상한다. 아니, 속이 썩어 들어간다.
나는 나의 썩고 있는 속을 남편에게 여과 없이 보여줬다. 남편은 현장에서 일한 월급이 두 달째 들어오고 있지 않아 빚을 제대로 갚고 있지 못하는 듯했다. 여러 군데에서 독촉 연락을 받아서 그런지 유독 힘이 들어 보였다. 나는 남편에게 너 때문에 내 속이 썩고 있다고, 오늘 내가 모임에서 얼마나 비참했는지 아느냐고 말했다. 남편은 오늘만 좀 내버려 두라고 말하면서 저녁을 먹다가 말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인지 생각해 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길래 기본적인 삶도 해결되지 않는 이런 끔찍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는지 뒤돌아본다. 나의 최선은 최선이 아니었나 보다. 내가 최선이라고 생각한 건 그냥, 스스로 납득시킨 합리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나 보다.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을 갖고 싶다. 그들의 안부를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소소함을 나누며 뒤끝 없이 웃고 싶다. 그들의 안정을 부러워하며 거짓으로 웃음을 만들고 집으로 돌아와서 상실감과 억울함으로 끙끙 앓는, 이런 모습은 더는 지속하고 싶지 않다.
불안하고 두려우며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