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쯤 전에 있었던 일이다. 저녁 9시 넘어 방에서 아이의 영어 학원 숙제를 도와주고 있었다. 갑자기 욕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 나가 봤더니 남편이 욕실에 대자로 누워있었다. 남편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있었고 입에는 약간의 거품이 나와 있었다.
“오빠, 오빠, 괜찮아? 오빠!!”
“몸이, 안 움직여.”
“오빠, 눈 떠봐. 눈 좀 떠봐!!”
남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바로 119에 전화를 했다. 구급대원은 위치를 물은 후 바로 출동했고, 우리 집에 도착할 때까지 전화를 끊지 않았다. 구급대원은 남편에게 계속 말을 걸어보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했지만 남편은 여전히 눈을 뜨지 못했고 말을 하지도, 움직이지도 않았다.
아들이 머리맡에서 불안한 눈빛으로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괜찮다고, 별일 아니라고 말했다. 남편에게도 ‘괜찮아, 오빠 괜찮아, 괜찮아’라고 했지만 그건 사실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괜찮아.
남편은 강아지 목욕을 시키고 털을 말린 후 드라이기를 정리하기 위해 욕실에 들어가다가 미끄러진 것 같았다. 분해된 드라이기 부품들이 욕실에 나뒹굴고 있었다. 남편은 자기도 바로 샤워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팬티만 입고 있었다. 이대로 응급실에 가면 남편이 너무 창피할 것 같아 티셔츠를 찾아 목과 팔에 꿰어주었다.
신고한 지 5분쯤 뒤에 구급대원 세 명이 도착했다. 구급대원들이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 남편은 다행히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것 같았다. 오른손을 들라면 오른손을 들었고, 오른발을 들라면 오른발을 들었다. 움직임에 힘이 없었지만 말을 알아듣고 있었고 움직이고 있었다. 적어도 죽지는 않겠구나 싶었다.
구급대원들은 남편을 들것에 실은 후 나보고 필요한 것을 챙기라고 했다. 나는 뭐가 필요한지 몰라 뭘 가져가면 되냐고 물었고, 신분증과 카드만 있으면 될 것 같다고 해 딱 그 두 개만 챙겼다
아이를 어떻게 해야 할까 순간적으로 고민이 되었지만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 데리고 병원에 갈 수는 없었다. 일단은 혼자 둬야 할 것 같았다.
“티브이 보고 있어. 엄마가 가서 바로 연락할게. 혼자서 잘 있을 수 있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이가 걱정되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이제는 3학년이니, 이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고 믿기로 했다.
구급대원들과, 들것에 실린 남편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서 내렸다. 담배를 피우러 나온 아저씨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남편을 쳐다봤다. 남편이 팬티만 입고 티셔츠는 팔만 꿰고 있어 온 가슴과 배가, 두 다리가 다 드러나 있었다. 신경이 쓰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창피한 것보다 중요한 건, 남편이 무사한 것이었다.
구급차에 남편과 구급대원 한 명과 함께 올랐다. 남편은 춥고 손이 저리고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했다. 함께 탄 구급대원이 담요를 덮어주고 내가 손을 주물러줬지만 머리가 아픈 건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별일 아니기를, 내가 반복해서 말했던 것처럼 다 ‘괜찮아’ 지기를 기도할 뿐이었다.
병원데 도착했다고 응급실에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응급실 문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가 들어와도 된다고 하면 들어갈 수 있었다. 막상 들어가 보니 응급실은 매우 한산했다. 의료대란 때문인지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응급환자가 한정되어 있는 것 같았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머리와 손 엑스레이를 찍은 후 다시 머리 CT를 찍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은 점점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남편이 이제 괜찮다면서, 집에 가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결과를 듣고 가야지 무슨 말이냐고 말렸다. 남편이 내 손을 잡고 말했다.
“미안해.”
나는 그런 상황에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남편이 어이없고 짠해서, 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내가 오빠 때문에 별 경험을 다해 본다.”
하고 농담으로 받아쳤다. 다행히 엑스레이와 CT 결과 남편은 머리에도 손에도 큰 이상은 없었다. 며칠간 통증은 계속될 텐데 그건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테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제 집에 가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지와 신발이 없었다. 바지는 환자복을 빌려 입고 가기로 하고 신발은 근처 편의점에 가서 파란색 슬리퍼를 하나 사 왔다. 병원을 나오면서 남편이 말했다.
“그래도 구급차 타고 들어왔다가 걸어서 좋은 거 아니야?”
나는 ‘그래, 좋겠다’ 하면서 힘없이 웃었다.
집에 도착했더니 아이는 안방 문을 닫고 혼자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12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나는
“무서웠지 우리 아들”
하면서 아이를 안아줬다. 그리고
“아빠는 괜찮대, 아무 문제없대, 혼자서 고생했어.”
라고 말했다. 아이는
“나는 아빠가 죽는 줄 알았어.”
라며 울먹였다. 나는 다시 한번 아이를 꼭 안아줬다.
어떤 날은 남편이 너무 원망스럽고 미워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또 아주 가끔은 남편이 없는 내 인생을 상상하며 그게 더 좋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되니 남편이 잘못되는 게 겁이 났다. 미칠 듯이 밉고 원망스럽더라도 나는 우리 남편이 계속 나의 남편으로, 계속 아이의 아빠로 남아주는 걸 바라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야 가슴 무너지는 순간들이 많아도 나도 잠시 소리 내어 웃을 수 있을 것 같고, 아이의 해맑고 청량한 웃음소리도 더 자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남편 때문에 별 경험을 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