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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지기 Oct 21. 2024

쓸쓸하고 쓸쓸한 주말, 그리고 프랙탈 이론

이번 주말도 아이와 둘이 보냈다. 토요일에는 비가 하루 종일 내렸다. 아이는 책 읽다가 티브이 보다가를 반복했고, 늦은 오후에는 어딘가에 나가고 싶다고 하여 동네 카페에 잠시 나갔었다. 카페에서 에그타르트와 곰돌이 쿠키, 초콜릿 라테를 먹은 아이는 맛있다고 만족스러워했고, 시장에서 칼국수와 김밥을 사 와 저녁을 먹은 후 잠이 들었다.      


일요일에는 남편과 마트에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사야 할 생필품과 식재료들이 많이 있었다. 남편은 처음에는 일요일에 회사에 안 나간다고 했다가 하루 뒤에는 아침에 나갔다가 점심때 들어온다고 했었다. 내가 다시 물어봤을 때는 출근했다가 오후 3시쯤 들어온다고 했고, 어제 아침에는 저녁때쯤 되어야 들어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남편은 어젯밤 10시가 거의 다 되어 들어왔고, 나는 낮에 혼자 동네 마트에 가서 꼭 필요한 것만 몇 개 사 왔다. 남편이 계속 약속을 미루는 중에 나와 아이는 할 일이 없어 도서관에 갔다가 도서관 옆에 있는 카페에 들렀다가 왔다. 아이는 딸기 레모네이드와 소금빵을 시켰는데 둘 다 맛이 없다고 하여 샌드위치를 하나 더 시켜줬다.      


아이가 어젯밤에 말했다.    

  

"이번 주말도 우리 둘이 보냈네."     


프랙탈 이론이라는 게 있다고 들었다.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된다는 이론. 예전에 팟캐스트를 듣는데 어떤 평론가가 자신은 인간의 삶에도 프랙탈 이론이 적용되는 것 같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한 인간의 전체적인 삶은 그 사람의 하루와 닮아있다고 말이다. 가끔 평론가가 했던 이 말이 떠오른다. 내 삶의 프랙탈 구조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어렸을 적에는 집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런데 나는 그때도 정서적 교류 같은 걸 잘하지 못하고 낯을 많이 가려 항상 혼자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오래전부터 할 일이 없었다. 훌륭하거나 유명한 사람들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무 할 일이 없어 책을 읽었다는데, 나는 집에 책이라는 것이 없었고, 또한 어딘가에 쉽게 몰입하지 못했다. 몰입을 해야, 그러니까 뭔가에 집중해 시간의 흐름을 잊을 수 있어야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데 나는 무엇에도 몰입을 하지 못해 언제나 시간을 확인하곤 했다. 시간이 너무 천천히 흘러갔다. 시간을 견디기가 지루했고, 외로웠다.     

나는 스무 살 성인이 되어 서울에 가면, 취업을 해서 돈을 벌면, 결혼을 해서 남편이 생기면 온갖 역동적이고 화려한 일들이 일어나 시간을 견디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나는 계속 무료하고 외로웠다.      


프랙탈 이론, 한 인간의 전체적인 모습은 그 사람의 하루와 닮아있다는 말, 결국 나의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간을 견뎌야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인가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만약 그 이론이 맞다면 우리 아이도 마찬가지일 것인가.    

 

금요일에 아이 친구가 ‘토요일에 시간 되면 같이 놀자’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이는 그 말을 믿고 토요일에 같이 놀 수 있냐는 문자를 보냈는데 일요일이 끝나갈 때까지도 답장을 받지 못했고, 아이는 그래서 이틀 내내 친구의 답장을 기다렸다. 아이의 친구는 형이 있어서 비 오는 주말, 어딘가에 나가지 않아도 집에서 잘 놀 수 있다.      


내가 아이를 낳고 대부분의 주말을 혼자 아이를 돌봤으니 아이 입장에서는 주말을 대부분 엄마와만 함께 있었던 것이다. 가끔은 아이 친구들를 만나 놀기도 했지만 그것도 그 집 남편들이 가끔 출장을 가거나 사정이 있었을 때뿐이었다. 내가 주말을 쓸쓸하고 힘들게 보냈던 것처럼 아이도 주말을 쓸쓸하고 힘들게 보낸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프랙탈 이론이 인생에도 적용된다면, ‘우리 아이도 앞으로 계속 누군가를 찾고 기다리는, 쓸쓸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하고 말이다.      




아이는 최근 캐릭온 TV 유튜브에 빠졌다. 아이는 그 유튜브를 보며 종종 자지러지게 웃는다. 다른 방에 있는 내가 들릴 정도로, 크고 길게 말이다.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다가도, 아이를 저렇게 신나게 웃게 하는 것이 부모나 친구가 아니라 유튜브라는 것이 씁쓸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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