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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공황장애

by 휴지기

5년쯤 전, 강원도에 사시는 시이모댁에 가는 길이었다. 시어머니가 안 계신 터라 결혼식 혼주석에 시이모님이 앉아주셨었는데 한 번도 찾아뵙고 인사드린 적이 없었다. 남편은 오랜만에 2박 3일 시간을 냈고, 우리는 강원도 여행 겸 시이모댁에 방문하기로 했다.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넘어가는 길쯤이었나, 운전을 하던 남편이 갑자기 어지럽고 온몸에 힘이 빠지며 식은땀이 난다고 했다. 우리는 급하게 차를 갓길에 세운 후 운전자를 바꿨다. 나는 운전을 하며 계속 뒷자리에 앉은 남편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남편은 처음에는 힘이 빠진 채 축 늘어져 있더니 한 시간쯤 지났을 때 정신이 들고 괜찮아졌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도 남편은 한두 번 더 운전하다가 어지럽고 식은땀이 나며 힘이 빠지는 순간들이 있었다고 했다. 자신의 몸과 관련해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괜찮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넘기곤 하던 남편도 운전 중 정신이 혼미해지는 건 심각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남편은 병원에 갔고, 병원에서 공황장애라는 진단명을 받아왔다.


공황장애. 나는 공황장애는 연예인들만 걸리는 병인줄 알았다. 머리, 어깨, 무릎, 발, 발목, 손목, 팔꿈치 등등 신체 모든 부위에 질병을 달고 사는 사람이 공황장애까지 걸리다니, 나는 남편의 병약함과 박복함에 어이가 없었다.


남편의 공황장애는 1년에서 2년쯤 이어졌다. 가장 증상이 심각하게 나타나는 경우는, 처음 증상이 발현된 것처럼 운전할 때였다. 특히 터널에 들어갈 때. 1년, 2년 동안은 터널에 들어가면 무조건 정신이 혼미해지고 온몸에 힘이 빠지며 식은땀이 나서 운전은 무조건 내가 했다.


문제는 내가 없을 때였다. 남편은 차로 움직여야 하는 일이 많았다. 나도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은 공황장애 증상이 있어도 가끔은 운전을 해야 했고 터널을 들어가야 했다. 그때는 남편이 운전을 해야 한다고 하면 하루 끝에 꼭 전화를 해서 생사를 확인하곤 했었다. 남편과 사는 동안에는 이상하게 생사, 삶과 죽음, 이런 표현들이 멀지 않은 것처럼 느껴졌다.


공황장애의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했다. 남편은 일 때문에 그때도 지금도 스트레스를 아주 많이 받고 있다.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진 것 같기도 하다. 병원에서 준 약도 제대로 안 챙겨 먹고 약 먹으면서도 음주를 계속했는데 어떻게 공황장애가 나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남편은 많은 스트레스를 겪어내느라, 스트레스에 내성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공황장애의 원인이 스트레스라면, 그럼 그 공황장애는 내가 걸렸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남편은 남편 때문에 힘들었지만 나도 남편 때문에 힘들었다. 결혼 이후 나의 최대 고민은 나도 아이도 아닌 남편이었다. 나는 어떻게 혼자 잘 살았고 아이도 제 몫은 잘해가며 건강하고 잘 크고 있다. 언제나 내 속을 뒤집어놓고 나를 분통 터지게 하고 원망과 억울함 속으로 나를 밀어 넣는 건, 남편이었다.


내가 남편과 이혼하지 않고 여태 살고 있는 건 남편이 주는 찰나의 웃음, 그거 하나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 찰나가 아닌 나머지 그 지리한 시간들에는

남편이 남편이라는 게, 너무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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