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를 맞아 그저께, 월요일에 친정집에 올라갔다. 내가 사는 곳은 남쪽의 바닷가 공업도시, 충청도에 있는 친정까지는 360km 정도 떨어져 있어 4시간 30분쯤 운전해야 도착할 수 있다. 설 연휴에 충청도 지방에 눈이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반 정도 갔을까?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눈이 우리 차를 향해 가로로 쏟아져내리는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눈이라 반갑기는 했는데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날도 어두워져 시야가 아주 좁아지게 되었다. 남편은 바로 앞의 희미한 차선만 보고 천천히 운전을 했다.
친정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이었다. 눈이 거의 그치고 가로등이 많아 거리도 잘 보였다. 긴장이 풀렸다. 남편은 다음날 장모님, 그러니까 우리 엄마와 장어구이를 먹으러 가는 게 좋을지 코다리찜을 먹으러 가는 게 좋을지 고민하고 있었고, 나는 아무거나 상관없다고 뭐든 엄마가 좋아하는 걸 먹으러 가자고 대답했다.
순간, 갑자기 달리던 차가 미끄러졌다. 2차선에 있던 우리 차는 1차선 가드레일 쪽으로 미끄러지다가 남편이 핸들을 꺾어 가장 바깥차선인 4 차선 쪽으로 가서 한 바퀴를 돌아 오른쪽 가드레일을 박고서야 멈춰 섰다. 2초, 그 정도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남편은 이게 왜 이러냐고 소리치고 나는 '오빠! 어떡해!'라고 외쳤던 것 같다.
갑자기 내린 눈에 도로가 빙판길이 된 것 같았다. 차를 가드레일에 박은 후, 남편이 바로 차 밖으로 나가 차 상태를 확인했다. 그릴과 범퍼, 라이트가 깨진 것 같다고 했다.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망가진 차를 끌고 그대로 친청집으로 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고가 난 뒤 우리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다행이다'였다. 다행이다.
뒤에 다른 차가 오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다, 사람이 아무도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차가 뒤집히지 않아서 다행이다, 뭐 대충 이런 말들 말이다.
사실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 수많은 선택들이 있었다.
설 연휴에 계획대로 대만 여행을 갔었더라면, 예정대로 월요일이 아니라 화요일에 친정집에 내려갔더라면, 한 시간만 일찍 집에서 출발했더라면, 마트를 들르지 않고 친정집으로 바로 향했더라면, 우리가 갔던 마트 말고 다른 작은 마트를 갔더라면 이런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선택과 선택과 선택이 결합되어 교통사고라는 불행한 사건을 만들었다.
설연휴 우리의 최대 미션은 망가진 차를 타고 무사히 집으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친정집 근처 정비소에서 임시로 차를 정비하고 떨어진 번호판을 가까스로 찾아 달고 무사히 차를 타고 집으로 내려왔다. 서해안 바닷가에 가서 레일바이크를 타고 해물칼국수를 먹으며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을 담글 싱싱한 게를 사 오고 싶다는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갔지만, 어쨌든 올 연휴 미션은 완료하게 된 셈이다.
2025년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액땜을 이렇게 세게 하나, 하면서 친정엄마와 나는, 그리고 남편은 허탈하게 웃었다. 빙판길 교통사고가 난 것은 불행이지만, 우리가 아무도 다치지 않은 것은 너무나 큰 다행이다. 연초에 일어났으니 이건 액땜으로 치고 넘어가면 될 일이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맞다. 불행 중 다행이었고 액땜이라 여길 수 있는 일이지만... 명백한 불행 중에서도 기어이 다행을 찾아내는 우리가 조금, 짠했다.
남편은 종종 말한다.
"나랑 사는 거 재밌지 않나? 롤러코스터 타는 것 같지?"
남편과 결혼하고 스펙터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나도 남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하기는 하지만.... 롤러코스터는 원래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거 아닌가? 내려가기만 하는 것도 롤러코스터인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롤러코스터 말고 회전목마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훅훅 가파르고 빠르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해서 스릴감과 짜릿함을 느끼는 게 아니라, 천천히 소소하게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하여 평안하고 안정감 있게 기분 좋은 느낌이기를.
헛된 꿈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