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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져 죽으려고 몇 번 왔었거든

by 휴지기

일요일, 남편과 아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바닷가 근처에 있는 국밥집에 갔었다. 공깃밥까지 추가로 시켜 폭식에 가까운 식사를 한 우리는, 소화도 시킬 겸 바닷가를 따라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국밥집에서 집까지는 약 6km였고, 조금 먼 거리인가 싶었지만 이제 초등학교 4학년 올라가는 아들이 너무 움직이는 걸 싫어해 억지로라도 걷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들은 걸어서 집까지 가야 한다는 것에 매우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중간에 오락을 시켜준다고 꼬셔 억지로 걷도록 했다.


바닷가 중간중간에 있는 밥집이나 카페에 가본 적은 많았지만 그렇게 긴 거리를 바다를 옆에 두고 걸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생각보다 곳곳에 예쁘고 아담한 장소들이 많았다. 남편은 나와 다르게 바닷가 길이 익숙한 듯 보였다. 나는 생각지 못한 아름다운 풍경들에 감탄하며 남편에게 물었다.


"여기 이런 게 있는 줄 어떻게 알았어?"


남편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응, 빠져 죽으려고 몇 번 왔었거든."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너무 일상적으로, 마치 '오늘 점심은 라면을 먹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의 끝에 대해 이야기했다. 농담처럼 말이다. 나도 웃는 남편을 바라보며, 또 남편처럼 크게 웃으며


"오빤 역시 돌아이야."


라고 맞받아쳤다. 옆에서 내 말을 듣고 있던 아들이


"엄마, 아들 앞에서 두 살이나 많은 남편에게 돌아이라고 하면 어떡해?"


라고 귀여운 지적질을 했고 남편은 '그래, 우리 아들 똑똑하네'라면서 아들 볼을 꼬집었다.


아들이 남편의 말을, 빠져 죽으려고 이곳에 몇 번 왔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지는 않다. 다행히 아들은 남편이 그 말을 할 때 다른 걸 보고 있었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았던 여러 날의 밤들이 있었다. 새벽 한 시가 되고 두시가 되어도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런 날 밤에는 내 마음에 원망과 불안감,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가득 차올랐었다. 어디서 사고가 난 건 아닌가, 아니면 어디서 사고를 치고 있는 건 아닌가 온갖 무서운 상상들에 잠을 이룰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남편에게 열 번쯤 전화를 했을 때쯤, 새벽 두세 시 무렵 남편은 전화를 받곤 했다. 그런 날은 '여보세요'라고 말하는 전화기 너머 남편의 목소리에 언제나 힘이 빠져 있었다. 나는 다그치며 물었다.


"뭐야? 왜 전화 안 받아? 지금 몇 신줄이나 알아?"

"생각할 게 좀 있어서..."

"그래서 지금 어딘데?"

"그냥 바닷가 좀 걷고 있었어"


나는 이런 대답을 들을 때마다 또 가슴이 철렁했다.


그때, 남편이 늦은 밤 혹은 이른 새벽 혼자 걷고 있던 거리가 우리가 일요일에 산책했던 바닷가 길이었다. 남편이 생각할 게 좀 있다는 건 그런 거였을 거다.


'여기서 내가 죽어야 하는 건가? 내가 죽으면 남은 우리 가족은 어떻게 하나?'


일요일, 남편이 죽음을 고민하던 바다를 바라보며 우리는 멋진 경치라며 감탄했다. 우리의 인생이.... 참, 뭐랄까.... 슬프고 또.... 웃겼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의 유명한 말이다.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들만 나열하면 남편과 나의 삶은 충분히, 어쩌면 너무나 명백히 비극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삶 가까이에서 그 비극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게 감당할 수 없이 슬프다. 그래서 자꾸 나와 남편은, 우리의 삶을 멀리서 바라보려고 하는 것 같다.


우리 인생의 비극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기 위해, 우리의 인생을 조금이나마 희극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하여 조금이나마, 웃기 위해서 말이다.


그날 결국 우리는 다리 아프다는 아들을 억지로 끌고 집까지 걸어왔다.


우리의 삶이 가까이서 보더라도 가끔은 희극일 수 있기를 소망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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