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전인가부터 나는 아들에게 남편을 지칭할 때 '니네 아빠'라는 표현을 쓴다. '니네 아빠 지금 온대, 니네 아빠는 좀 별로야'처럼 말이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듣고 있던 아들이 최근 들어 묻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를 왜 니네 아빠라고 불러?"
처음에는 '그냥'이라고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갔는데 요 며칠간은 아들이
"엄마, 아들 앞에서 그러면 못써."
라고 지적질을 해댔다. 나는 그런 아들이 웃기고 또 귀여워
"태어난 지 10년도 안 된 것이 뭘 안다구~"
라면서 꼭 껴안아줬고, 아들은 답답하다며 내 품에서 억지로 빠져나갔다.
내가 남편을 아들에게 니네 아빠라고 부르는 건 일종의, 복수다. 남편을 가리킬 때, 이런 거리감 느껴지는 표현이라도 써야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다. 물론 아들에게 남편을 '니네 아빠'라고 부른다 하여 내가 실효성 있는 복수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건 마치.... 내 휴대폰에 남편의 이름을 마침표로 저장하는 것과 같은, 나에게 미세한 통쾌감을 주지만 남편에게는 타격감이 1도 없는, 그런 방식의 복수이다.
아들이 아기였을 때,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안아서 재워야 했을 때, 남편이 육아에 참여한 비중은 정말 미미했다. 아들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다닐 때에도 남편은 부재가 기본값이었다. 나는 출근해야 하는데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을 때, 나는 남편이 아니라 아들 친구 엄마의 도움을 더 자주 받곤 했다.
남편은 아들에게 신기루 같은 존재였다. 아빠가 있나, 하고 달려가보면 어느 순간 사라지는, 있다고 알고 있기는 한데 눈앞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 그런 존재 말이다.
아들이 다섯 살 때쯤 휴일이었던 것 같다. 아들이 뭔가 버릇없는 행동을 했고 남편이 아들을 혼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때 내가 남편에게 말했었다.
"오빠, 오빠가 애를 혼낼 자격이 있어?"
남편은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았고, 우리는 크게 싸웠다.
나는 아이에게 관심과 에너지, 시간을 쏟은 사람만이 아이를 혼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 남편은 아이에게 어떤 것도 충분히 쏟아붓지 않았다. 그때 남편이 아이에게 쏟은 에너지와 관심, 시간 등은 보통 사람들이 가까이 사는 조카에게 하는 정도, 딱 그 정도이지 않았나 싶다.
물론 남편이 천성적으로 이기적이고 정이 없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남편은 단지 바빴을 뿐이었다. 너무, 다른 모든 걸 다 뒤로 미뤄둬야 할 정도로 미칠 듯이 바빴고, 그 사이에 아이는 커버렸다.
내가 남편에게 자격 얘기를 꺼낸 이후로 남편은 한 번도 아이를 혼낸 적이 없다. 자식 교육에 대해 생각이 없고 워낙 허용적인 사람이라 아이를 혼내고 싶은 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아빠의 자격에 대한 내 말이 걸렸던 순간들도 분명 많았을 것이다. 언젠가 남편이 '니가 나보고 혼낼 자격 없다고 해서 그때부턴 절대 애한테 뭐라고 안 하잖아.'라고 농담처럼 말했었다.
지금은 신기루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남편이 아들과 있는 시간은 매우 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아빠를 아주 좋아한다. 남편은 아들과 있는 짧은 시간 자주 초등학교 남학생으로 빙의해 아들과 함께 놀아주고, 격한 애정표현을 퍼붓는다. 물론 아들이 원하는 유튜브와 게임을 아무런 제약 없이 시켜주는 것도 아들이 아빠를 좋아하는 매우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아들이 항상 노래하는 게 '엄마의 통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시간'인데, 남편은 아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다. 아들의 육아를 도맡아 한 건 난데, 지금도 육아의 범주안에 드는 일들, 예를 들어 준비물을 챙겨준다든지 밥을 차려준다든지 학원을 알아본다든지 하는 일들은 다 내가 하고 있는데 짧은 시간 아들과 함께 있으면서 자유의 아이콘이 된 남편이 조금 얄밉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들이 아빠를 싫어하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한다.
내가 진지하게 이혼을 고민할 때마다, 아들이 아빠를 좋아하는 것이 큰 걸림돌이 되곤 했다. 아들과 둘이 사는 게 정제되고 평화로운 삶이기는 하겠으나, 아이가 크게 웃을 일은 없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아니 나도, 남편의 유치하고 더러운 장난을 웃겨하는, 이상한 개그코드를 지니고 있다.
어젯밤, 9시가 훨씬 넘어 남편이 치킨을 사 온다고 전화를 했다. 방에서 책을 읽다가 거실로 나온 아들에게
"아빠가 치킨 사 온대."
라고 말했다. 아들은
"정말? 맛있겠다."
라면서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아들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발뒤꿈치를 들고 춤추듯 걸었다.
가난하고 박복한 남편은, 나를 미칠 듯이 쓸쓸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남편은,
아들이 발뒤꿈치를 들고 춤추듯 걷게 만든다.
아들이 노래를 흥얼거리게 하고 얼굴에 미소가 흘러넘치게 한다.
아들은 아빠를 좋아하고 아빠와 있는 시간을 즐긴다.
하지만, 아이에게 재미있는 아빠, 이것만으로 모든 걸 퉁치기에는
삶이 너무, 퍽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