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고아인 남편은 명절이나 시부모님의 기일이 다가올 때마다 제사상을 차릴 것인지 말 것인지를 언제나 고민했다. 남편은 자신이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일한 아들이기 때문에 제사상을 차리는 것이 도리인 줄은 알고 있으나 부모님에게 받은 것 하나 없이 의무만 이행해야 하는 것이 억울하다고 했다. 누나들은 두 분 다 멀리 사셔서 제사상을 차리는 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나는 남편의 의무감과 억울함을 백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결정은 남편에게 맡겼다. 남편이 하고 싶다고 하면 함께 제사상을 차렸고,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쿨하게 넘어갔다. 대신 설이나 추석에 차례상을 차리게 되면 돌아가신 친정아버지 것까지 세 개의 밥그릇을 놓아두고 절을 했다. 예법에는 맞지 않는 것 같지만 그게 공정한 일인 것 같았다. 우리의 방식이기도 하고 말이다.
작년 5월 시어머니 기일이었다. 언제는 그렇지 않았겠느냐마는, 시어머니 기일에도 남편은 미친 듯이 바빴다. 나는 그 전날부터 남편에게 시어머니 기일에 제사를 지낼 건지 말 건지를 몇 번이나 물었다. 남편은 처음에는 그냥 넘어가자고 하더니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제사를 지내고 싶다고 했다. 밤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그럼 간단하게 지내자고, 퇴근할 때 북어랑 술, 과일 같은 걸 사 오라고 했다.
남편은 10시가 되어도 들어오지 않았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제사를 지내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10시가 훨씬 넘어 들어온 남편은 내가 말한 북어랑 술, 과일은 물론이고 국거리용 소고기와 생선, 불고기거리까지 사들고 들어왔다.
"오빠, 지금 국 끓이고 생선 굽고 이걸 다 하자고? 이 시간에? 그럼 일찍 들어왔어야지.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이걸 지금 언제 준비해서 제사를 지내? 그냥 간단히 하면 안 돼?"
나는 10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들어와서는 소고기뭇국을 끓이고 생선을 굽고 불고기를 볶는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은 알겠으나, 이럴 거면 적어도 9시에는 들어왔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소고기뭇국을 준비하던 남편이 '쉬고 있어. 내가 할게.'라고 말했다. 말투가 서늘했다. 남편이 서운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나도 참을 수 없었다. 남편이 너무 대책이 없었다. 그 대책 없는 성격 때문에 일어났던 많은 사건들이 떠올라 점점 화가 차올랐다.
내가 계속 툴툴거리니까 남편은
"됐어. 사무실에서 나 혼자 지낼게."
라며 성질을 냈다.
그러고는 사 왔던 제수용품을 대강 싸가지고 다시 집을 뛰쳐나갔다.
준비하다가 만 소고기뭇국과 이미 냉장고에 넣어둔 생선, 불고기거리는 가지고 가지도 못했다.
남편은 그날, 전화를 받지도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다음날 저녁 집에 들어온 남편에게 물어보니 실제로 사무실에서 혼자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북어와 사과, 배를 사무실 책상에 올려놓고 혼자 소주를 따라 제사를 지내는 남편의 모습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손을 얹으며 절을 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상상하면 짠하기는 하다.
하지만 남편이 성질을 내고 집을 나간 밤, 남편을 원망하면서 깊게 잠들지 못하는, 옅은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받지 않는 전화를 걸었던 나도 짠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제사 에피소드를 친한 지인에게 말했을 때는 코미디였는데 이상하게 글로 쓰니까 웃기지가 않는다. 그 지인은 남편과 나의 인생이 블랙코미디 같다고 했다. 만약 그렇다면 코미디를 부각하고 싶은데, 이상한데 글로 쓰니 자꾸 블랙만 부각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말할 때와는 달리 글로 쓰면, 자꾸만 불쌍해져서 그런 것 같다. 박복한 남편이, 그런 남편에게 매번 실망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믿고 싶어 하는 내 자신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