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인생 탈락의 역사(호외)

by 휴지기

'나에게도 위로가 필요한 날이 있다'에서 썼던 면접 에피소드, 그 선발 시험에서는 결국 탈락했다.


면접에 가서 침만 흘리지 않으면 무조건 붙을 거라던 친한 동료는 나의 탈락 소식을 듣고 나보다 더 당황스러워했다. 나는 면접에서 침을 흘리지 않았고 당연히 면접 대비 준비도 나름 열심히 했는데.... 그런데도 떨어졌다.


소문은 생각보다 넓게 퍼졌고 늦게 업데이트되었다.


내가 그 선발 시험에 응시한다는 소문은 생각지도 못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는데 며칠 전에 나온 결과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오늘도 두 명에게 나의 탈락 소식을 직접 전해야 하는 민망한 순간들이 있었다. 둘 다 내가 시험에 합격한 줄 알고 있어서 민망함이 더 컸다. 그중 한 사람은 나의 탈락 소식을 듣고


"그거 웬만하면 다 붙는 거 아니었어요?"


라고 말했고, 나는 잠시 이 사람이 나를 멕이는 건가 싶었지만, 그분의 천성이 선하다는 걸 알고 그냥 몰라서 하는 말씀이구나 하고 웃으며 넘어갔다. 그렇다고 그 앞에서 '아니에요. 이거 원래 되기 힘든 거예요.'라고 말하기도 구차하고 해서 말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참 많은 경쟁에서 탈락한 것 같다.


대학교 입시에서도 많이 탈락했고 직장을 갖기 위한 경쟁시험에서도 여러 번 탈락했었다. 한자능력시험 3급도 응시했다가 떨어졌고 대학교 1학년 때에는 MBC 베스트극장 극본 공모전에 드라마 대본을 써서 냈다가 떨어졌다.


최근에는, 그러니까 평생교육원에서 문예창작 강의를 듣고 교수님의 권유로 쓴 소설이 신인상을 받은 이후에는 내가 진짜 작가가 된 양 소설을 써서 두세 군데의 문예대회 같은 곳에 지원했지만 역시나 똑, 떨어지고 말았다.


하나 다행인 건 이런 탈락에 관한 역사는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른다는 것이다. 혼자 써서 혼자 응모했다가 혼자 떨어졌으니 말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에게는 왜 이렇게 많은 탈락의 경험이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첫 번째 이유는 실력이 부족해서,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준비 없이 달려들어서인 것 같다. 철저한 전략과 준비 없이, 그냥 막 해보다 보니 이렇게 수많은 탈락의 순간들을 맞이하게 된 것이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뭔가를 도모할 때 치밀한 전략을 짜고 빈틈없이 준비를 해야 하는 걸까? 물론 그러면 좋겠지만 나에겐 그건 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여전히 성격대로 그냥 막, 하고 싶을 때 시도해 보고, 안되면 탈락하고, 다른 사람들이 나의 도전과 탈락 스토리를 다 알게 되면 잠시 부끄러워하고, 나의 탈락의 역사를 우스갯소리로 변신시켜 주변 사람들을 잠시 웃기며 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 복권을 사러 가다가 약국 출입문에 붙은 '입춘대길'이라는 한자를 봤다. 달력을 찾아보니 2월 3일이 입춘이었다. 입춘대길, 입춘에 크게 길하다는 뜻이다. 길하기는 무슨, 내 탈락 결과가 나온 날인데... 망할!!


올해는 부디, 나의 탈락의 역사가 잠시 주춤하길 바란다.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탈락했으니 이젠 뭐라도 좀 합격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2025년에는 '붙을 줄 알았는데 떨어졌다' 이런 거 말고, '안될 줄 알았는데 운 좋게 되었다' 이런 말들로 사람들을 웃기고 안심시킬 수 있길 바라본다.


액땜도 거창하게 했으니 말이다.



keyword
이전 14화아들의 니네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