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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것은 사기결혼

by 휴지기

이건 어쩌면 사기결혼이었는지 모른다. 만난 지 얼마 안돼 남편은 대방동에 집이 있다고 했다. 30대 초반의 나는 너무나 결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멀쩡해 보이는 남자가 서울에 집까지 있다길래 얼씨구나 했었다. 남편은 결혼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튕기지도 않고 그러겠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하면서 남편에게 물었다.


"오빠, 대방동에 집 있다고 하지 않았어?"

"응, 아버지가 있다고 해서 있는 줄 알았는데 잘 모르겠어."

"뭐??"


이건 뭐지? 집이 없는데 있다고 할 수 있는 건가? 알고 봤더니 '대방동에 집을 소유할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셨던 시아버지께서 남편에게 약간의 허풍을 더해 '대방동에 집이 있다'라고 말씀하셨고, 남편은 또 그 말을 덜컥 믿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시아버지의 그 말을 덜컥 믿었다면 서른 살 넘어서도 아버지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니 심히 멍청한 것이고, 집이 있다는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았는데 믿는 척하고 나에게 말한 것이었다면 그건 의도된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결국 남편은 멍청하거나 나빴던 것이었다. 그걸 진즉에 파악했어야 했는데, 나도 상황파악이 느리고 눈치가 없어 그냥 그대로 결혼을 했다.


남편은 자신이 파혼한 적이 있다는 사실도 결혼하고 5년쯤 뒤에 나에게 말했다. 나를 만나기 2년 전의 일이었고, 예식장까지 정해놨는데 시아버지 때문에 파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시아버지는 남편이 결혼하고 나서 꼭 아들 내외와 함께 살고 싶어 하셨고, 결혼을 약속했던 여자가 처음에는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것에 동의했다가 막상 시아버지를 겪고 나서는 함께 살지 못하겠다고 했다고. 그래서 결혼이 파투 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태연하고 능청스럽게


"그때 예식장 알아보러 갔을 때 내가 좀 익숙해 보이지 않았어? 우리 알아보러 갔던 데 중 한 곳이 내가 예전에 갔던 데였거든."


이라고 말했다. 나는, 남편의 끊이지 않았던 연애사도 흥미롭게 들었고 파혼 이야기도 그 연애사 중에 하나로 취급하여


"아니, 몰랐는데. 오빠는 참 별일이 다 있었네. 또라이라서 그런가 봐."


라고 농담으로 대답하고 말았다. 나는 과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결혼할 사람에게 적어도 파혼 이야기는 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혹시나 파혼 이야기도 말해야 한다는 걸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면 멍청한 것이고 일부러 말하지 않은 것이면 나빴던 것일 텐데, 둘 중 어떤 거라도 별로다. 아니, 싫다.


어쩌면 이것은 사기결혼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결혼을 파투 내지 않은 것도 나였고 파혼 사실을 알고서도 그냥 웃어넘긴 것도 나였다. 남편이 멍청하거나 나빴다면, 그에 못지않게 나도 멍청하거나 호구겠지.


그러나 나는 또 망각 능력이 뛰어나 이런 큰 일들을 잘도 잊으며 산다. 헤헤 웃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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