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할 때마다 나는 절망하는 표정이 된다. 회사에서 일을 더하고 싶은데 억지로 퇴근해야 해서? 오우, 절대 아니다.
출산 이후로 내 꿈은 쭉, 전업주부가 되는 거였다. 하루라도 덜 출근하고 한 시간이라도 일찍 회사에서 나오고 싶다. 하지만 우리는 생계형 맞벌이라 출근을 안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출근을 안 해도 되는 삶, 아이를 학교 보내놓고 여유롭게 커피를 즐기거나 친구들을 만나는 삶이 손에 닿지 않는 먼 곳에 있는 꿈처럼 느껴진다.
내가 퇴근할 때마다 절망하는 표정이 되는 이유는, 퇴근과 함께 나의 비루한 현실이 훅, 다가오기 때문이다.
출근을 해서 회사에 있으면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이 가득 차 있어 나의 일상을 떠올릴 틈이 없다. 이 일을 끝내면 저 일이 남아있고 또 저 일을 끝내면 생각지도 못한 다른 창의적인 문제들이 생긴다. 그런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하다 보면 근무시간이 가고 어느새 퇴근 시간이 된다.
나는 직장과 집이 가까워 자주 걸어 다니는데, 퇴근할 때 회사 정문을 나오는 순간부터 깊은 한숨이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다. 직장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대부분 나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집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우리 집의 문제를 일으킨 사람은 남편이고, 그래서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도 남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기다리고 체념하고 포기하는 일뿐이다.
퇴근 후에 내가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복권집이다. 회사에서 복권집까지는 걸어서 15분 정도, 나는 일부러 교회를 지나쳐 가는 길을 선택해 복권집으로 향한다. 힘들 때마다 종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아는 분 소개로 교회도 몇 번 나가봤지만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다. 믿고 싶은데 믿어지지가 않는다.
그래도, 퇴근길에 일부러 교회를 지나가는 이유는, 그곳을 지나가면서 십자가를 보고 마음속으로 짧은 기도라도 하면, 그러면 혹시나 상황이 조금이나마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헛되고 미약한 믿음, 구질구질하지만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복권집에서는 주로 동전으로 긁어 바로 당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스피또 복권을 산다. 3년 동안 스피또 복권을 이삼일에 한 번꼴로 샀으니 거의 삼사백번은 복권집에 간 것 같다. 아니, 확률상으로라도 이렇게 성실하고 규칙적으로 복권을 샀으면 한 번은 큰돈이 당첨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지금까지 가장 큰돈이 당첨된 건 만원, 딱 한 번이었다.
복권집에서 천 원짜리 스피또복권 두 장을 사서 주머니에 넣고 오면서 시장에 들러 아이에게 줄 저녁거리를 산다. 집에 와서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전날 한 빨래를 갠 후, 9시가 넘은 시간에 나를 절망하는 얼굴로 퇴근하게 만든 장본인인 남편에게 전화를 한다. 남편은 대부분 전화를 받지 않거나 회의 중이라면서 전화를 급히 끊는다.
밤 11시나 12시쯤, 또는 새벽 1시나 2시쯤 집에 들어오는 남편은 어느 날은 내일 당장 로또에 당첨될 것처럼 희망에 가득 차 있고 어느 날은 내일 당장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풀이 죽어있다. 나는 10년을 넘게 당했으면서도 또 남편의 표정이 좋으면 내일을 기대하고 남편의 표정이 어두우면 내일을 불안해한다.
그러다가 남편이 남자아이랑 놀아주는 것처럼 나랑 놀아주면, 또 좋다고 헤헤거린다. 우리에게 닥쳐있는 구질구질하고 비루한 현실이 마치 어디로 잠시 사라져 버린 것처럼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 중에 지팔지꼰이라는 표현이 있다. 지 팔자 지가 꼰다는 뜻인데, 이건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진 유행어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