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날

by 휴지기

어제 낮에 출근한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남편이 낮에 전화하면 나는 조금 긴장이 된다. 낮에 받은 남편의 전화가 좋은 내용이었던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작년 가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점심시간 직전 남편의 전화가 왔다. 그때도 불안한 마음을 안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응"

"왜?"

"난 이제 정말 안될 거같애.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 혹시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말고."

"뭔데? 왜 그래? 죽으려고?"

"방법이 없다."


남편은 그러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가슴이 뛰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점심을 먹지 못했고 그날 하루를 어떻게 퇴근시간까지 버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남편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죽지 않았다. 그리고 몇 달째 다시,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살고 있다.


어제 전화를 받았을 때 남편이 말했다.


"쿠팡 있잖아, 거기서 야간 근무자 구한다고 해서 지원했어. 밤 12시부터 아침 9시까지 일하면 된대."

"밤을 새워 일을 한다구?"

"응. 갔다 와서 두세 시간 자다가 출근하면 될 것 같아서. 이렇게 마냥 기다리고만 있는 게 너무 힘들다."


남편이 말한 쿠팡은 집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곳이다. 밤 11시에 출발해서 밤을 새워 일을 하고 집에 오면 오전 10시, 4시간을 자고 출근하면 오후 2시, 회사에서 일하고 저녁을 먹은 후 다시 쿠팡으로 출발. 가능한 일정일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정기적으로 벌어다 주는 돈이 절실하기도 했다. 나는 권할 수도 말릴 수도 없었다. 남편이 말했다.


"잠 못 자는 건 괜찮아. 조금만 자면 돼. 그리고 붙을지 떨어질지도 몰라. 만약에 떨어지면 알바라도 해야 할 거 같애."


남편은 언제나 열심히 살았다. 내 주변에 있는 누구보다도 더, 가장 열심히 산 사람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남편은 잘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큐가 두자리라고 했는데, 머리가 나빠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그냥 남편의 팔자가 박복하여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스타일인가 싶기도 하고....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건 어쩌면, 침몰하는 배에 함께 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배안에 들어오는 물을 온 힘을 다해 퍼내지만 결국은 점점 아래로 가라앉고 있는. 나는 지금이라도 이 배에서 빠져나와 망망대해를 헤엄쳐 육지로 향해야 하는 것인지 남편과 함께 끊임없이 물을 퍼내며 배에 뚫린 구멍을 찾아 어떻게라도 메꿔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늘 아침 남편은 건강검진을 받으러 간다면서 나에게 이만 원만 달라고 했다.


"아니, 없으면 안 줘도 되고."


라고 말하는 남편의 얼굴이 너무 초라하고 남편의 어깨가 훅 굽어보였다. 나는 지갑에서 만 원짜리 두장을 꺼내 주며 말했다.


"오빠, 나 이렇게 안 살고 싶어."


남편은 '그래'라고 힘없이 대답하며, 내가 준 이만 원을 주머니에 넣고 뒤돌아 나갔다.


나는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침몰하는 배의 선장이 되어, 죽을 둥 살 둥 아등바등 매 순간 목숨을 걸며 생존과 싸우고 싶지 않다.



keyword
이전 22화어쩌면 이것은 사기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