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멀리 살고 있어 얼굴을 못 본 지 삼 년은 된 것 같지만 자주 통화하고, 내 내면의 불안함과 어수선함을 가장 많이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친구이다.
그 친구는 말을 언제나 예쁘고 하고, 남을 배려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누군가의 안 좋은 점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다른 사람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거나 서운했다고 말할 때에도 그것이 자신의 주관적인 감정임을, 그래서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사실임을 전제하고 말한다.
12년 전 남편과의 결혼을 결심하고 그 친구에게 말했을 때였다. 나와 남편의 만남과 우리의 연애사를 속속들이 다 알고 있던 친구는 나의 결혼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했었다.
"축하해. 그런데 OO아,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했어."
그때는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나를 얼마나 기다리게 했는지, 또 얼마나 진실하지 못하게 행동했는지 알고 있어서 한 말이었다. 나도 알고 있었고, 이 결혼의 결말이 파국일 수도 있겠다고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나는 남편을 사랑했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그렇게 말했다.
"알아. 그런데 그냥 해보고 싶어. 오빠랑 있으면 좋아. 오빠랑 결혼하는 건 마치.... 섶을 들고 불길에 뛰어드는 것일지 모르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어."
결혼을 해서 울산으로 내려간다고 했을 때도 그 친구는 말했었다.
"나는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니가 그 먼 지방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게 좀 별로야."
나는 친구가 서울 토박이라서,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강남에서 주욱 살아온 아이라서 그런 말을 하는 줄 알고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상관없어. 처음에는 충청도 시골에 살다가 대학 때문에 서울 살다가 직장 때문에 경기도도 살아봤으니까. 충청도든 서울이든 경기도든 울산이든 아무 상관없을 거 같애. 어디 가서 살아도 나는 뭐, 적응하고 살 거 같아. 왜 꼭 서울이어야 할까?"
"으음... 그런데 OO아, 그런 게 아닐까? 가방은 다 똑같은 가방이지만 사람들이 명품을 사고 싶어 하잖아. 뭐 그런 심리랑 비슷한 거 같은데..."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지만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결혼을 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인 울산으로 내려가 산다는 건 서른둘의 나에게는 약간, 낭만적이게도 느껴졌던 것 같다. 우리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우리 둘만의 가정을 이루어 다시 살아간다는 것이 말이다. 그때는 참, 멍청하리만치 순진했었다.
결혼하고 나서 그 친구의 저 말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 왜 울산까지 내려가서 살아야 하냐는 말. 어떤 나쁜 말도 직접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던 친구는, 나의 이 결혼을 말리기 위해 저런 완곡한 말들을 골라했을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은 결혼 전과 마찬가지로 나를 끊임없이 기다리게 했고 나에게 많은 거짓말을 했다. 남편의 거짓말은, 자기가 거짓말로 알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했던 말들도 있었고 진짜 그렇게 믿었는데 결국은 거짓말이 되어버린 말들도 있었다. 남편은 고쳐지지 않았고 그리하여 내가 느끼는 실망감과 허망함도 중단되지 않았다.
나는 이제 다시 서울로 올라가 살고 싶다. 서울의 화려함과 위용이 그립다. 하지만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오는 건 쉬웠지만 지방에서 서울로 다시 올라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시간을 되돌려 결혼하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만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