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르바이트로 쿠팡 야간작업을 하겠다고 했다.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세 시간 잔 후 또 사무실에 나가 일을 할 계획이라는 말에, 꼭 그렇게 해야겠냐고, 몸이 버텨낼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사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이 절박해 못 이기는 척 그러라고 했다.
다음날 남편은 쿠팡에서 지정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후 화상면접을 봤다. 그날도 밤늦게 귀가한 남편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했다.
"근데 자기야, 나 건강검진 결과 나왔는데 당뇨 의심이래."
"뭐? 당뇨? 오빠 심지어 성인병까지 있는 거야?"
나는 남편의 아무렇지 않은 말투에 어이가 없었고, 당뇨 의심이라는 말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시어머니가 당뇨로 돌아가시고 시이모님이 당뇨병을 앓고 계셨다. 가족력인 것 같은데 남편이라고 당뇨병에서 자유로울 리 없었다.
"근데 이상해. 나 건강검진받을 때마다 당뇨 얘기는 한 번도 못 들어 봤거든."
"성인병은 나이 들면서 생기는 거잖아.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런 성인병에 걸리기 쉽겠지. 아 맨날 술마시구 밤늦게 야식 먹고 그래서 그런 거 같은데"
남편은 '아냐, 뭔가 이상해'라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남편은 신나는 듯이 말했다.
"나 당뇨 아니래. 누나한테 물어봤더니 전날 술 마셔서 그런 거래. "
건강검진 관련될 일을 하는 형님이 남편의 건강검진 결과지를 보더니 당뇨를 나타내는 수치가 높지 않다며, 전날 밤에 마신 술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 거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러게, 왜 전날까지도 부득부득 술을 마셔서 그런 결과가 나오게 해?"
라고 타박을 했지만 당뇨가 아니라는 말에 일단 안심이 되었다.
당뇨 때문인지 면접을 제대로 보지 못한 건지 쿠팡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며칠 뒤 남편은 또
"오늘 쿠팡 알바하러 갔다 올게."
했다. 쿠팡 하루 알바는 희망하면 그냥 다 갈 수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은 쿠팡에 무슨 미련이 있는지 자꾸만 쿠팡에 가서 일을 하고 싶어 했다. 나는 또 말렸지만, 가서 어떤 일인지 경험해보고 싶다고 해서 그럼 갔다 오라고 했다. 이 알바도 새벽 한 시부터 아침 아홉 시 반까지 하는 야간 근무였다.
남편은 알바에 가기 전에 한 시간 정도 인터넷 안전 교육 영상을 봐야 했다. 남편이 일하러 가기 전에 두어 시간이라도 자야 할 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남편을 발도 주물러 주도 귀도 주물러주면서 억지로 조금 재웠다. 내 무릎을 베고 누워 잠들어 있는 남편의 얼굴을 보니 짜증과 애처로움이 함께 밀려왔다. 내가 와이프가 아니라 엄마가 된 느낌이었다.
남편은 자정이 조금 넘어 집에서 나갔다. 나는 아이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 한 시가 조금 못된 시간이었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잘 도착했다는 전화인 것 같았다.
"여보세요"
"응"
"들어갔어?"
"다시 집으로 가는 중이야. 나 혈압이 높아서 못한대."
"뭐?"
"한 번도 혈압이 높게 나온 적이 없는데 이상하네. 세 번이나 쟀는데 다 높게 나왔어."
오, 마이, 갓...!! 이번엔 고혈압이었다. 이건 뭐, 성인병 종합선물세트도 아니고, 어이가 없었다. 이 남자가 지금 나를 웃기려고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중인가도 싶었다.
남편은 그날 알바도 하지 못하고 그냥 집에 들어와 바로 잠이 들었고, 나도 성인병까지 달고 있는 이 일제강점기 병약한 지식인 같은 남자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야 하는 것인가 고민하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남편에게 물었다.
"오빠, 혈압 때문에 쿠팡 알바도 가지 못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나는 정말 쿠팡이랑 안 맞는가 보구나라는 생각?"
'오빠랑 맞는 게 있기나 해?'라고 말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너무 공격적인 말인 것 같아 참았다.
들어보니 쿠팡 야간작업이 그렇게 힘들다던데, 일을 가지 못하게 된 게 오히려 다행인가 생각하다가, 이렇게 잘 안된 것까지 굳이 또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건가 싶어 조금.... 씁쓸했다.
그리고 씁쓸한 순간이 생각보다 자주 오는 것 같아 또,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