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사랑이라는 걸
2003.04.12. 하원이가 달리기 반대표로 뽑혔습니다.
키는 앞에서 2번째인 하원이... 5명이 뛰어서 1등하고,
다시 1등한 사람과 경쟁하여 다시 1등하고,
결국 반에서 제일 키가 큰 친구와의 결승에서 영예의 1등을 차지했습니다.
(이때 아빠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 지난날 본인의 초등학교 시절을 회상한다.
열광하는 친구들의 모습, 부러운 시선, 나의 실력에 대한 친구들의 기대감 등등...)
하원이에게 전화로 선물 사줄 것을 약속하고,
제 얼굴은 못내 흐믓한 미소를 짓습니다.
1등했다니까 정말 좋으네요...
달리기도 1등, 인격도 1등, 공부도 1등, 믿음도 1등인 우리 하원이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원아! 정말 잘했다......아빠로부터“
나는 어릴 때부터 달리기를 잘했었어.
초, 중, 고 한번도 빼먹지 않고
이어달리기 마지막 주자를 맡았고,
트랙 위에서 사람들이 보내는
응원과 환호는 늘 기분을 들뜨게 했지.
솔직히 매번 1등이었으니
마음 한켠에는 오만함 같은 것도 있었을 거야.
이건 잘 얘기하지 않는 건데,
중학생 때 육상대회를 나간 적 있었잖아.
우리 학교는 막 생긴 학교라 육상부가 없었고,
그해 대회를 위해 급하게 꾸려진 팀이었어.
3일인가 훈련받고 나갔는데,
안 하던 훈련을 갑자기 하니까 다리가 너무 아팠고,
대회장에 가보니 다른 학교 애들은
전부 스파이크화를 신고 있더라고.
그걸 보는 순간 이미 주눅이 조금 들어 있었던 것 같아.
시합이 시작됐고, 총성이 울리자마자 알았어.
내가 졌다는걸.
달리기는 시작 몇 초만에
그걸 알아채게 만드는 운동이거든.
그리고 그 사실을 자각하자마자
내가 어떻게 했는 줄 알아?
그 자리에서 멈춰버렸어.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면서.
그 기억은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부끄러운 기억 중 하나야.
아빠는 내가 “달리기도 1등, 인격도 1등,
믿음도 1등인 하원이”가 되길 기도했다고 했지만
그 때의 나는 아마 그 중 어느 하나도 닿지 못했던 것 같아.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의 기도는 “너는 이래야 한다”는 규범이 아니라
“나는 너를 이렇게 보고 싶다”는 마음의 형상이었을 거야.
철학자 마르틴 부버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누군가의 ‘기대의 시선’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잖아.
나는 그 시선이 너무 밝아서,
오히려 그 앞에서 더 부끄러웠던 건지도 몰라.
하지만 그 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 부끄러움을 알았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있어.
그 날을 떠올릴 때마다 “이번엔 멈추지 말자”는 마음으로 다시 한 발 내딛는 거야.
달리기에서 1등은 하지 못하더라도,
사람으로서 조금 더 나아지고 싶어서.
심리학자 보울비는
사랑을 ‘안전기지(safe base)’라고 설명했어.
누군가를 억지로 끌어당기거나
멀리 밀어내는 관계가 아니라,
머물고 싶을 땐 머물 수 있고,
다시 나가고 싶을 땐 용기를 줄 수 있는 자리.
아빠의 기도는 내게 그런 안전기지였던 것 같아.
내 발걸음을 대신 내딛어주진 않지만,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겠다는 믿음을
조용히 깔아주는 바닥처럼.
그래서인지 아빠가 운동장에서
자신의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던 것처럼
나는 지금도 문득 그 중학생 때의 나를 떠올리곤 해.
그 기억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 덕분에 지금의 내가 계속해서 움직인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
아마 사랑이란 게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걸지도 몰라.
그 사람 대신 뛰어주는 게 아니라,
끝까지 달릴 수 있도록 숨을 고르고
다시 호흡을 만들게 해주면서.
그렇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언젠가 그 끝에서 아빠는 또 말해주겠지.
“하원아! 정말 잘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