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얼굴을 가진 날

조금만 늦게 알았으면 했던 것

by 개미는룰룰
2002.03.16 우리 아빠는 내가 사달라는 거 다 사준다! 하원이는...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 아빠가 있으면 너무나도 자랑스러워합니다. 연신 우리 아빠는~... 우리 아빠는~... 하면서 손을 잡기도 하고 애교도 부려봅니다. 어느날...이었슴다... 하원이가 아빠에 대해 또 자랑을 하는 것이었슴다.

"우리 아빠는 내가 사달라는 것 다 사준다~!
아빠! 아빠는 내가 사달라는 거 다 사주지이이~~잉? "

"그으럼! 아빠는 하원이가 사달라는 거 다 사주지...하원이가 예쁘니까!" 저도 자랑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아빠!"
"왜?"
"아빠! 나~ 햄스터 사 주세요...!"
"어..? 어어 그 그 그래...8살되면 사 줄께....$*@^#*^#"


저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앞에서 파는 햄스터를 사왔다가

아빠한테 손바닥 다섯 대 맞고

결국은 키우게 되었던 그 사건이 떠오르네.


혼나서 눈물은 났지만,

내가 그렇게 키우고 싶어하던 햄스터를

결국 허락해준 아빠 마음이 이제 조금 이해가 돼.

그 작은 생명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시도때도 없이 케이지를 들여다보며

자기 전까지 숨소리를 듣고 있었던 그 시간이

어릴 적 나에게는 아주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었어.


햄스터가 죽었을 때는

처음으로 ‘이별’이라는 감정을 배웠어.

아빠가 처음부터 반대했던 이유는

내가 떠나보냄의 슬픔을

조금 더 늦게 알기를 바랬던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아빠의 비염, 성원이의 천식, 내 아토피...?

아무래도 후자에 가까운 것 같긴 해. ㅎㅎ


아마 아빠는 이미 알고 있었을 거야.

아이에게는 ‘사랑한다’는 감정이

기쁨이자 상실의 가능성이라는 걸.

무언가를 좋아하면 언젠가는 잃는다는 사실을.

부모는 그걸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아마 아빠는,

내가 슬픔을 조금 더 늦게 배우기를 바랐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동시에

아이가 뭔가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을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겠지.

부모라는 건 결국,

막고 싶어도 끝내 막지 못하는

사랑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니까.


강아지를 키우겠다고 했을 때도

아빠는 반대했었잖아.

하나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게

얼마나 복잡하고 무거운 일인지

아빠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국은 딸의 고집을 꺾지 못해

강아지를 분양받아주고 말았어.


나는 또 친구들한테 자랑했겠지.

“우리 아빠는 내가 사달라는 거 다 사준다~!”하고.


어릴 땐 사랑을 설명할 말이 없어서

가장 쉬운 방식으로 표현했던 것 같아.

근데 이제 와서 돌아보면

내가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아빠는

“내가 사달라는 거 다 사주는”

능력있는 아빠가 아니라

그만큼 나를 사랑하는 아빠라는 걸

자랑하고 싶었던 것 같아.


그 문장은 어린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순진하고 정확한 사랑의 정의였으며,

내가 쓰지 못하는 ‘사랑해’라는 말을 대신해준,

내 어린 시절의 언어였던 거지.


“우리 아빠는 내가 사달라는 거 다 사준다~!”

= “우리 아빠는 나를 정말 많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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