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물려준 최고의 유산
2005.10.10 질풍노도의 시기?
생각보다...빨리 오는것 같습니다.
마냥 귀엽고, 사랑스럽고, 장난꾸러기로만 여기던 하원이도..
가정과 부모의 영역이 주는 영향력보다는 이제는 친구, 학교, 선생님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더 큰 자극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체감적으로 알게 됩니다.
많이 때렸습니다. 종아리를.
4살땐가...하원이를 처음 때리고 울어버렸던 기억을 더듬으며
이제는 마음으로 울면서 때리고 때리고 또 때렸습니다.
아비의 마음으로...
도저히 맞을 수 없는 듯 울부짖는 하원이 앞에...
이제는 내 종아리를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아픈 줄도 모르고 계속...
지금도 시퍼렇게 멍든 아빠의 다리를 보면서
겸연쩍은 미소를 갖는 하원이.....가 사랑스럽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침대위에서 잠자기 전에 아빠가 코팅해서 만들어 준
"하원이를 사랑하는 20가지 이유"를 읽고 또 읽는 모습이 또 애절하게 합니다.
모든 것을 용납하고, 믿고, 받아들이는 너그러운 아빠는 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바른것, 하나님이 주신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그런 아이로 자라나도록 훈계하는데는 게을러 지고 싶진 않습니다.
나는 한때, 가정과 부모의 영향력이
내게 그리 크지 않다고 믿었어.
엄마 아빠는 고지식하고,
지금 세대의 감각과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조금은 비웃었고, 조금은 밀어냈던 것 같아.
그런데 아빠, 그게 다 착각이었어.
심리학에서는 아이가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태도, 말투, 가치관을 내면화(internalization) 한다고 말한대. 그건 ‘배웠다’가 아니라 ‘흡수되었다’에 가까운 과정이야.
자주 보던 모습, 들었던 말투,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무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성인이 되어 어떤 선택을 내릴 때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거지.
돌아보니 내가 말하는 방식, 갈등 앞에서의 태도,
기분이 좋거나 힘들 때 무심코 드러나는 감정 습관들까지 모두 엄마 아빠에게서 온 것들이더라.
나는 내 삶을 ‘내 식대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그 ‘식’ 자체가 이미 아빠한테서 비롯된 거였어. 지금의 나는 결국 엄마 아빠라는 기반 위에 세워진 결과물이었던 거지.
어릴 때, 아빠한테 혼났던 날이 아직도 기억나.
울면서 맞았던 내 모습보다,
혼내고 돌아서서 스스로 종아리를 때리던
아빠의 멍든 다리가 더 선명해.
울고 있는 나를 안고 베란다에 나와,
나보다 더 속상한 얼굴로 나를 토닥여주던
그 장면을 떠올리면
그 모든 순간들이 결국 나를 키운 시간이었구나 싶어.
그땐 몰랐어.
아빠도 아빠로서 매 순간이 처음이었다는 걸.
나처럼 흔들렸을 테고,
나처럼 막막한 순간도 많았겠지.
그래도 아빠는 언제나 내 편이었어.
내가 잘못했을 땐 단호하게 잡아주고,
내가 울면 조용히 안아줬고,
내가 잘하면 누구보다 기뻐했잖아.
그런 모습들이 지금은 너무 선명하게 기억나.
이제야 아빠 마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것 같아.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했던 말도 떠올라.
“그래도 하원이는 어른 무서운 줄은 안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단순히 권위에 눌렸던 게 아니야.
누군가가 나를 혼낼 때,
그 안에 애정이 있는 화와
애정이 없는 화를 구분할 줄 알았던 거지.
그리고 그건 아빠가 가르쳐준 감정의 해석이야.
사랑은 항상 다정하지 않고,
때로는 고성으로, 침묵으로,
아빠의 울고 있는 다리로 표현된다는 걸.
혼내는 눈빛 속에서도 사랑이 있다는 걸 어릴 때부터 알아버린 내가,
그게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든 거야.
결국 우리의 삶은 완전히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타인, 특히 부모라는 존재가
만든 구조 위에 올려지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을 ‘나 혼자 만든 것’이라고
착각했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
‘다름’이 곧 ‘단절’은 아니라는 걸.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문득 아빠와 닮아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그 닮음이 내게 가장 큰 자산이었다는 걸
점점 더 깨닫게 돼.
아빠가 내게 물려준 최고의 유산은
돈도, 지식도 아니야.
삶을 대하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방식,
감정을 해석하는 시선이었어.
그 방식들이 내 몸 안에,
마음 안에, 관계 속에 조용히 드러나고 있어.
그래서 나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
다정하지만 단단한 사람.
소리치기보단 기다릴 줄 알고,
때로는 침묵 속에 따뜻함을 품을 줄 아는 사람.
언젠가 내가 부모가 된다면,
나도 내 아이에게 그렇게 사랑을 가르치고 싶어.
조금 서툴러도,
조금 무뚝뚝해도
사랑은 결국 전해질 거라는 걸
나는 아빠에게 배웠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