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으로 내보내는 마음
2007.06.04 천안 독립기념관에 다녀왔습니다. 칙칙폭폭 기차타고...
수원에서 비록30분 기차여행 이었지만 처음 타보는 기차라서 그런지
아이들은 신기한가 봅니다...
독립기념관내 전시장에 있는 일제시대때 끔찍한 고문장면을 본 하원이는
한동안 무서운 꿈에 시달려 '한여름의 잠못 이룬 밤...'을 겪었으니...
후유증(?)도 만만찮네요...~
하원이, 성원이가 계속 초등학생으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옥같은 중고등학교와 정처없이 방황하며
목적도 없이, 비젼도 없이, 하루 하루 삶을 연명(?)하는
주변의 청소년을 보면서 아탑깝기도 하고, 더럭 겁이 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예수님이 우리 가정에 주인되시니 감사하고, 고맙고, 힘이 됩니다.
아빠의 역활을 잘 해야 할 텐데 말이죠...
엄마의 역활을 잘 감당해야 할 텐데 말이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올바른 방향을 바라 보는 눈을 열어줘야 할 텐데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속에 그 분의 자녀됨을 느끼게 해 줘야 할 텐데요.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무수한 진리의 샘을 맛보게 해 줘야 할 텐데요.
아빠가 말한 ‘지옥 같은 중고등학교’라는 표현이
단순한 비관이나 과장이 아니라
세상에 나를 내보내야 하는 사람의
두려움이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만 같아.
나는 그저 세상이 궁금했고, 친구들이 좋았고,
새로운 걸 배우는 일이 즐거웠어.
그 시기의 나는 위험을 인식하기보다는
가능성에 먼저 끌리는 나이였고,
밖에서 맛보는 낯선 자극들에 자연스럽게 취해 있었어
아빠는 아마도 그 반대편에 서 있었겠지.
세상이 나를 아프게 하지 않을지,
믿음이 흔들리지는 않을지,
혼자서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고 있었을 거야.
심리학에서는 보호자의 불안을
‘예측 가능한 고통을 미리 감당하려는 마음’이라고
설명한다는데, 그 말을 읽으며 문득 아빠가 떠올랐어.
아빠에게 나는 성장하는 딸이기 전에
세상으로부터 지켜야 할 존재였을 테니까.
그래서 아빠의 걱정은 나를 믿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세상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생긴 감정이었을지도 몰라.
그렇게 보면 사랑은 언제나 손을 놓은 연습과 동시에,
마음을 더 단단히 붙잡는 일인지도 모르겠어.
요즘 나는 합류적 사랑이라는 표현을 자주 떠올려.
김형경 작가님의 『사람풍경』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표현인데, 이 표현을 곱씹다 보니
아빠의 사랑 방식과 자연스럽게 겹쳐 보였어.
“합류적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사로잡히는 대신 자아발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즉각적인 희열을 욕망하기보다는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관계를 지향한다. 헌신을 요구하며 상대방을 압박하기보다는 상호성을 이루는 방식이다. 무엇보다도 상대방과 하나가 되려는 융합의 욕망을 벗고 상대방의 안녕과 성장에 관심을 쏟으며 상대방을 그냥 내버려 두는 초연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빠의 사랑이 그랬어.
통제하거나, 붙잡으려는 사랑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도록 조금 뒤에서 지켜봐주는 방식.
때로는 침묵으로, 때로는 기도로,
내 삶의 경로가 엇나가지 않기를 바라며
멀리서 믿어주는 사랑말이야.
아빠, 나는 아빠가 그토록 걱정하고 두려워했던
그 세상 속에서 꽤 잘 살아남고 있는 것 같아.
여전히 넘어지고 울기도 하지만,
아빠가 내게 심어준 기준과 질문 덕분에
완전히 길을 잃지는 않았어.
아빠가 내게 남겨준 건 정답이 아니라 방향이었고,
그 방향은 지금도 내가 선택 앞에서 흔들릴 때마다
조용히 나를 불러.
그래서 나는 아빠가 나를 위해 기도했던
그 방향을 향해 조금은 느릴지언정 올바로 걸어가고 있어.
그건 아빠가 내게 남겨준 가장 큰 나침반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