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따뜻한 계절
2007.01.20 전철타고 하원이랑 오랜만에 상경(上京)했습니다.
종로타워앞길을 걸어가며 광화문네거리에 이순신장군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주고,
교보문고가서 꼭꼭 지갑속에 숨겨두었던 도서상품권으로
하원이 성원이 책도 사 주었습니다.
하원이 5살땐가 한번 데리고 왔었는데..기억이 전혀 안난다네요..ㅠㅠ.
마침 밖에 기온도 그리 차지 않은 터라..하원이랑 경복궁에 갔습니다.
여기 저기 궁(宮)을 돌면서 사진도 찍고,
경회루 못가에서 역사적인(?)기념사진도 한컷찍었지요..^^
이제 하원이도 많이 커서 제법 데이트하는 기분이 좀 납니다.
연신 걸으면서 다리 아프다고 하면서도 잘도 따라옵니다.
무릎연골이 다 닳으면 어떡하냐고 협박(?)하면서 말이죠...ㅎㅎ
절대 안 업어줬죠...!
차갑게 시린 하원이 손을 내 옷 주머니에 함께 넣고,
북한산기슭에서 내려오는 따스한 햇살이 궁궐 흙을 가만히 만지게 합니다.
2008.08.04 하원이랑 신촌 라오상하이 중국인 카페에 갔습니다.
중국 전통 보이차를 그럴 듯 한 전통방식으로 시음을 하고,
카페내에서 파는 만두(包子) 한접시 비우면서,
마냥 재미있어하는 하원이.....
내친 걸음으로 인사동 골목길을 운치있게 걸으며 종로 탑골공원까지
갔습니다. 제법 많이 자란 하원이가 이제는 말도 잘 듣네요..ㅎㅎ
오후 7시경에야 다리가 아프다고 아빠한테 엎히는 하원이....
야단은 쳤지만 6살때 아빠 등에 엎혀 포근히 사진 찍힌 모습을 생각하며....
이제는 13살된 큰 딸을 등에 업고...운현궁 앞길로 종로 3가까지 걸었습니다.
내게 있어 고향과 같은 강북의 옛거리들....
내 딸과 함께 걷고 이야기하고,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고, 더 넓은 것을 보게하고 싶고, 더 높은 것을 꿈꾸게 하고싶은
아빠의 마음을 하원이가 알까....?
몰라 준다해도 좋습니다....단지 오늘의 시간이 내게 있음이 감사하기에...
광화문 네거리에 서 있던 이순신 장군이
그때는 참 거대해 보였어.
종로타워 앞을 걸으며 유리창에 비친 사람들,
바쁘게 움직이던 차들,
그리고 내 손을 꼭 잡고 건너던 아빠의 손까지.
겨울 공기는 손끝이 얼 만큼 차가웠는데,
이상하게도 그 차가움 속에 따뜻한 기운이 섞여 있었어.
아이는 세상을 기억할 때 풍경보다 먼저,
그 풍경을 함께 건너던 사람의 감각을 남긴다고 하잖아.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서울은
건물의 크기나 거리의 이름이 아니라,
그 공간을 함께 건너던 아빠의 손 감각이었을지도 몰라.
나는 아빠를 닮아 책을 좋아했고,
아빠와 함께 갔던 교보문고를
신나게 돌아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
그 큰 서점 안에서 아빠가 숨겨두었던
도서상품권으로 책 한 권씩을 손에 쥐고
돌아오던 그 기분을 잊을 수 없어.
경복궁에서 다리가 아프다고 칭얼거리던 기억도 나.
“무릎 연골이 다 닳아 없어질 것 같아”라는 말도.
내가 그렇게 말하면 아빠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도 결국 업어주니까.
아빠의 등에 업혀 바라보는 풍경이 참 좋았던 것 같아.
시간이 흘러 친구들과 종로를 걸을 때마다
익숙한 기시감이 밀려와서 잠시 멈추곤 했어.
그리고 깨달았지.
내가 이미 그 길을 아빠와 함께 걸었었다는 걸.
혼자 걷게 될 날을 미리 연습하듯,
누군가와 함께 걷던 기억이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거야.
그래서 낯설어야 할 거리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길을 잃지 않았고,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어.
그때 아빠가 나에게 보여주려 했던 건
‘서울의 풍경’만이 아닌 ‘세상 그 자체’였을 거야.
사람들이 오가고, 찬 바람이 불어도
그 속에서도 웃음과 온기가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야.
지금 나는 아빠가 데려가던
그 거리들을 이제 혼자 걷고 있어.
커다란 교보문고 간판을 올려다보면
그때 내 손을 잡아주던 감각이 여전히 남아 있어.
아빠의 가장 따뜻한 계절은
아마 나와 함께 걸었던 그 하루였을까.
보여주고 싶고, 알려주고 싶고,
하지만 결국은
함께 있는 것으로 충분했던 시간 말이야.
사랑은 무언의 동행에 가장 가까운 감정이래.
설명하지 않아도,
목적을 정하지 않아도,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
아빠와 함께했던 그 순간들이
내게는 하나의 계절이 되었고,
그 계절 덕분에 지나온 추운 날들을 견딜 수 있었어.
그러니까 이번 겨울엔 우리 다시 경복궁에 가자.
그때처럼 바람이 매섭게 불어도 좋아.
그날 아빠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아빠의 손을 잡아줄게.
이젠 내가, 아빠의 가장 따뜻한 계절이 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