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제 내가 당신의 시절을 보내고 있어요

by 개미는룰룰


언젠가부터 아빠가 쓴 글을 하나씩 꺼내 읽는 시간이 많아졌다. 일기장을 넘기다 보면 내 이름을 부르던 아빠의 목소리를 눈으로 읽게 된다. 짧은 문장들 속에는 세상 어떤 말보다 따뜻한 온기가 담겨 있다.


”사랑해 “라는 단어 없이도,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의 표현들이 조용히 스며있다. 어쩌면 사랑은 그렇게 말 대신 일상으로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문장들 속에는 아빠의 청춘과 고민, 그리고 ‘아빠’라는 이름의 무게가 있었다.

그 문장들을 읽다 보면 나를 키우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감정을 조금씩 덜어내던 사람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렇게 그 마음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는 어린 시절의 나를 안고 있는 아빠의 모습 앞에 서 있다.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던, 말없이 곁을 지켜주던 그 시간들이 너무 따뜻해서 아무 이유도 없이 눈물이 고이고는 한다.


이제 내가 아빠의 시절을 걷고 있다.

이 글은 서른 살의 내가 서른 살의 아빠를 마주하며 써 내려가는 기록. 내가 다 기억하지 못하는 날들에 대한 아빠의 기록이자, 그 앞에서 비로소 꺼내는 나의 답장이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달라져도 사랑의 언어는 닮아있다는 것을, 그 조용한 문장들이 나에게 다시 알려준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은 말보다 오래 남는 감정이고, 이해보다 깊이 닿는 약속이며, 때로는 침묵으로 이어지는 믿음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마음이 가장 투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설명할 때가 아니라, 그저 곁에 머무를 때라는 것을. 아빠는 이미 오래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글들을 읽으며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시간 속에 이렇게 다정한 흔적으로 남을 수 있을까. 사랑을 말로 남기지 않아도, 나의 존재만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할 수 있을까.



아빠, 나 이제 아빠의 시절을 살고 있어

그리고 그 시간들을 아빠처럼 —

사랑으로 남기고 싶어.

글로, 마음으로, 기억으로,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을 흔적으로.

아빠가 그러했듯이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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