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지 않는 나의 첫 기억
1996.10.30 오전 8시 23분 —
박현철 산부인과에서 3.4kg으로,
하원이가 우리의 품 안으로.
사랑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사랑이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잖아.
나츠메소세키가 “I love you”를
“오늘 달이 참 예쁘네요“라고 번역했다는
일화처럼 말이야.
사랑이라는 단어는 참 신기해.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그걸 읽어내고, 느끼고, 기억해.
어쩌면, 이 일기를 시작하는 아빠의 첫 문장이
나한테는 그런 사랑이라고 읽혔던 거야.
날짜, 장소, 시간, 몸무게,
그리고 마지막 문장. “우리의 품 안으로.”
저 짧은 문장 속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을지
나는 상상조차 되지 않아.
그날 아빠는 무슨 얼굴로 나를 봤을까.
기뻤을까?
실감이 났을까?
아니면 그냥 조용히, 눈물을 삼켰을까.
나는 그 순간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품 안으로” 왔다는 아빠의 문장을 보며
그 장면을 천천히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세상에 처음 나와 엉엉 우는 나를
품에 꼭 안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겠지.
그리고 아빠는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사람이 되기로
스스로에게 약속했을 거야.
그냥 그렇게, 조용히. 당연한 듯이.
지금 나는 그날의 아빠와 비슷한 나이가 되었고,
그날 아빠가 봤던 세상을 조금씩 걷고 있어.
가끔은 감당이 안 될 만큼 버겁고,
가끔은 아무 이유 없이 눈물이 나.
그런데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짧은 한 줄을 떠올려.
"하원이가 우리의 품 안으로."
그 문장은 마치 아무리 멀리 가도
돌아갈 수 있는 가장 처음의 장소처럼 느껴져.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당연히 안겨도 된다고 말해주는 품.
아빠는 그날,
나를 처음 안으면서 그 품을 내게 만들어줬던 거겠지.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언어보다 감각으로 사랑을 배운다고 하잖아.
그래서일까
사랑은 설명보다 기억으로 남고,
말보다 몸으로 이해되나 봐.
그러니까 나는 태어나자마자
엄마 아빠의 품 안에서 사랑을 배웠던 거지.
어쩌면 사랑을 이해한다는 건
누군가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일인 것 같기도 해.
그리고 생각하고는 하지.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품이 되어줄 수 있을까,
말하지 않아도 사랑이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빠가 먼저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걷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