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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Jul 11. 2023

욕을, 울 엄마가?

모르는 척.

     


 “에이, 무슨 말씀,”

 간병인의 말은 전혀 공감할 수 없다.

 병원에 입원한 지가 일 년 반이 되어가는데,

 남편과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마주 보며 병실로 들어갔다. 아기처럼 잠들어있는 엄마의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다. 깨우기보다는 그냥 바라보고만 싶었다. 눈을 마주치면 알 수 없는 슬픈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눈빛이 늘 부담스러웠으므로.

 일단 간호사실로 가 보자며 옮기는데, 옆에 있는 임 할머니가 한마디 한다.

 “잠을 못 자. 내가 아주....... 얼마나 욕을 하는지….”

 “그러세요? 욕을 할 줄 모르시는데요….”

 “무슨 소릴? 여기 방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래. 뭔 놈의 욕을 그리도 가지가지하느냐고.”

 복도로 나오니 간병인이 옆 호실 요양사와 뭔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를 붙잡는다. 요양사들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간호사실에 가 보세요. 보호자 오시면 꼭 들르시라 했어요.”

 “그렇지 않아도 가는 참이에요. 엄만 주무시네요.”

 “점심 드시고 약 드셔서 좀 더 주무실 거예요.”

 나이 든 간호사는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할머니와 실랑이 중이다. 집에 간다고 엘리베이터 열리기만 기다리는 옆방 할머니다. 우리를 보고 용양사에게 할머니를 방으로 모시고 가라 손짓하며 안내를 한다.

 “엊그제 소동이 있었어요. 할머니가 휠체어에 앉아 계셨는데 아드님이 TV를 본다고 여기로 나오신 거예요. 그런데 알아보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여사님도 아들 아시냐 물었어요. 그런데 다짜고짜 마구 때리는 거예요.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너 때문에 네 누나가 날 여기다 가뒀다고 하시면서 엄청나게 욕을 하시는 거예요. 동생 분은 맞다가 같이 소리소리 지르고…. 그날부터 할머니가 욕을 하시는 거예요. 목소리도 크신데 아주 4층이 떠내려가는 것 같아요. 쩌렁쩌렁해요. 근데 평소에도 그렇게 많은 욕을 하셨어요?”

 “아뇨? 욕을 하신다고요? 전혀 그런 일 없었는데요.”

 욕이라고는 경상도 말인 문딩이 정도밖엔 들어본 적이 없다. 문디 지랄하네 가 가장 센 욕이었는데. 어떤 욕을 하신 건가? 어떤 욕을 아셨던 걸까?

 항상 말은 그 사람을 나타내는 기준이 되니 늘 고운 말을 쓰라고 우리를 키울 때 그러셨다.   엄마의 입에서 험한 말을 들은 기억이 없으므로 믿을 수가 없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아들을 때렸다는 것이다. 세상에 얼마나 화가 나셨던 걸까? 어떤 맘으로 가격을 했을까? 그 아들 때문에 살아오셨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닌데, 어떻게 그 아들에게 손을 댄 걸까? 어찌 키운 자식인데, 설마? 혼란스럽다. 나에 대한 화풀이 셨을까?


 백일 무렵 걸린 소아마비로 늘 안쓰럽고 귀한 아들을, 심장병 수술 두 번이나 시키면서도 신앙처럼 지킨 그 아들을. 그 아들 때문에 남은 두 딸은 늘 뒷전이었는데, 우리가 그리 느낀 거겠지만 그야말로 금이야 옥이야 길러온 그 아들을?

 그 아들이 반신불수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그 충격으로 놓친 당신의 기억 때문에 같은 병원에 계시면서. 모자 사이에 서로 의지가 될 거라는 생각에 같은 층에 있는 건데. 남자환자와 여자환자의 병실이 간호사실을 기점으로 동서로 나뉘어있는 이 층을 택한 거였는데.

 하나뿐인 아들을 때렸다고? 그것도 마구 욕까지 하며.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동생분이랑 어머니랑 잠시 떨어뜨려 놓는 것이 어떤가 해서요.”

 “그래요? 서로에게 이롭다면 그리 해야지요. 아래층으로요?”

 남편과 나는 동생 병실 쪽으로 옮기면서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장모가 욕을 한다는 것은 정말 금시초문이니.

 나보다 더 늙어버린 내 동생은 늘 그렇듯이 말없이 건너다보기만 한다. 내가 안부의 말을 건네도 귀찮다는 듯이 눈길은 허공만 헤집는다. 껍질 벗겨 주는 바나나만 한 손으로 우걱우걱 입으로 밀어 넣을 뿐. 조심스레 물어봤다.

 “엄마 봤어?”

 눈동자가 흔들린다.

 “아니. 안 봐. 안 본다고.”

 눈빛이 변한다. 억울해하는 동생의 눈빛에서 간호사의 말이 사실임을 알았다.

 “왜? 왜 안 봐?”

 “몰라. 그냥 막 때려. 나만 욕하고….”

 더듬대면서 흥분한다. 구겨진 환자복처럼 표정이 구겨진다.

 “그랬어? 알았어. 내가 엄마한테 그러지 말라고 할게.”

 간식 넣어놓고 간병인의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날 엄마에게 맞은 날, 동생도 진정제를 맞았다고 한다. 그렇겠지. 충격이 컸겠지. 아직도 배 안에 품고 있는 신생아와 같은 삶이었으니. 절대적인 엄마인데 욕을 하며 때렸다니.

 간호사실을 지날 때 나이 든 간호사는 보호자 사인할 것이 있다며 우리를 불러 세운다. 생명 연장치료에 관해 설명하고 사인을 부탁한다. 잠시 후에 하겠다 하고 남편을 건너다봤다. 또 엄마의 삶과 생이 내 앞에 놓인다.

 “엄마 만나고 나오면서 할게요.”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에 내가 가장 힘든 것은 엄마를 분리해서 대해야 하는 것이었다. 정신이 돌아오면 엄마여야 하고, 정신을 잃어버리면 환자로 대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 박자를 놓치면 뒤죽박죽 되고 나는 답답하다 못해 꽥하고 소리를 지른 적이 많았다. 고집스러운 것을 참아야 하고, 특히 당신 아들 방을, 냉장고를 못 열어보게 하는 통에 여러 번 다퉜다. 반찬 해드리면 아들 병원에 가져다준다고 곰팡이가 필 때까지 뚜껑도 열지 않고, 아들 방은 아들 오면 준다고 오만가지 짐을 채워 넣는 것이다. 나중에 집 정리할 때 나온 물건들은 아이들 장난감이 가장 많았다. 비닐도 벗겨지지 않은 것과 주워온 것들….

 몇 걸음 되지도 않는 엄마 병실로 가는 길이 왜 이리 무거운 건지 마침 병실 문을 나서던 간병인이 물병을 들고 나온다.

 “동생 분은 알아보시던가요?”

 “알아보는지, 모르는 건지…. 영 그러하네요.”

 엄마보다 3년 먼저 입원한 동생은 가끔 집에 간다고 고집부리는 것 외에는 그런대로 병원에 익숙하다. 하긴 어려서부터 병원과 집을 늘 일상처럼 살아온 아이이니. 아이? 오십이 넘은 아이. 수많은 병마에도 늘 퇴원할 수 있었던 것은 수없이 바뀐 종교로 가지가지 기도를 한 엄마 덕이라고 내가 놀리기도 했었으니. 동생마저도 혈관성 치매가 진행되고 있다.

 “어르신 깨셨어요. 들어가 보세요.”

 백발의 단발로 단정하게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엄마는 전혀 환자 같아 보이지 않는다. 창으로 들어오는 석양에 오히려 얼굴색이 밝아 보인다.

 “엄마, 일어나셨네. 잘 주무셨어?”

 얼굴은 나를 향하고 눈은 나를 넘어 병실 문으로 나가고 있다. 훨훨 날아가는 듯하다. 물병을 들고 들어오던 간병인에게 멈춘 눈동자는 이미 나를 알아보지 못함을 확인시켜 주는 것만 같았다. 바나나 껍질을 까는 나를 내려다보던 엄마의 손에 멍이 든 게 보였다. 간병인은 얼른 알아차린다.

 “식탁이고, 난간이고, 무조건 소리 나게 두드리세요. 할 수 없이 밤에 주무실 때는 난간에 묶을 수밖에 없어요. 주무실 때 빼고는 계속 소리를 내시고, 욕하시고…. 그것도 아주 무서운 욕을 하세요. 목소리도 끓는 소리를 내시고요.”

 참 희한한 일이다. 내가 면회를 간 날은 정확하게 내 앞에서는 욕을 하지 않았다. 엄마의 육성으로 하는 욕을 들어볼 수가 없었다. 식탁을 두드리고 베개를 두드리는 것은 자주 봤는데 정말 욕은 한 번도 하지 않으신 거다. 들어봤던 욕이었을까? 아니면 하고 싶었던 욕이었을까? 정신을 잃어가면서 생긴 엄마의 욕 하는 버릇은 몇 개월 계속되었고 욕이 잦아들면서 육체도 거의 무너져갔다. 신생아처럼 두 손에 장갑을 끼고 몇 주를 잠든 모습밖엔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입을 닫으신 엄마의 욕을 남편과 나는 들어볼 수 없었다.


 얼마나 억울했을까.

 내뱉지 못한 말이 욕이 되어 나올 때까지 곪아온 당신의 삶이.

 “진즉 좀 뱉고 사시지….”

 남편의 말이 나를 이해시켜 줬다.

 당신의 삶을, 살아있음을 가늠하고 계시다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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