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개 Jul 26. 2024

이야기로 만들다. 6

 한 끼의 밥

6.

" 할머니는 왜 맨날 밥을 물에 말아 드세요."

 " 입맛이 없어서 그러지. 간신히 먹는 거지."

 " 입맛이 없는데 두 그릇이나 드셨잖아요."

 손녀가 갸우뚱거리면서 또박또박 묻는다.

 더 먹으려고 그런다. 하마터면 대답할 뻔했다.

 식탐이었다. 어려서는 없어서 못 먹었지만 천성이 게으른 나는 밥 하기가 정말 죽기보다 싫었다.

친정엄마나 올케는 도무지 이해를 못 한다고 지청구를 주었지만 이해를 바란 적도 없었다.

내 배가 고파야 쌀을 안쳤으니, 애들이 가끔 옛날이야기처럼 오밤중에 밥상 앞에서 밥 먹다가 벌렁 쓰러져 잤던 때를 꺼내 원망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난 항상 못 들은 척할 수밖에.


  오늘은 된장국인가보다 냄새가 구수하다.

 아침에 딸이 출근하면서 냉장고에 물김치 사다 놨으니 죽 데워서 먹으라고 했지만, 귀찮아서 건너뛰어서인지 오늘은 유난스레 허기진다.

 며칠 째 죽을 사다 놓고 데워 주는데 영 입맛에 맞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삼시 세끼를 제대로 차려 먹은 적이 없었다.

 그나마 영감이 있을 때는 성화에 못 이겨 차려주는 김에 챙겨 먹을 수는 있었지만, 틀니로 떡떡 거리며 씹는 맛은 늘 체기로 힘들었다.

 같이 살고는 있지만 딸년과는 너 따로 나 따로이니 내게는 늘 부드럽고 따뜻한 복지관의 점심 한 끼가 가장 맛있었다.

 나는 밥 하는 것이 싫다.

 아니, 살림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언젠가 딸년이 따지고 들면서 지금이야 나이 들어서 귀찮다고 하지만 우리 어렸을 때는 돈 벌러 다니는 것도 아니면서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녀서 항상 내가 동생을 업고 엄마를 기다려야 했느냐고, 업힌 동생은 배고파서 울고, 동생의 젖은 기저귀 때문에 난 땀띠가 가려워서 긁다가 아파서 울면서 엄마를 기다린 날이 매일매일이었다고.

 아무 말도 못 했다.

 집에 있으면 늘 불안했다. 그렇다고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뭐를 보든 누구를 만나든 그냥 집만 아니었으면 좋았다. 젖이 불어 흘러도 집으로 가기는 싫었다. 늘 벌에 쏘인 듯 밖으로 밖으로만 돌았다.

 세상이 궁금했던 것뿐이었는데, 오죽하면 엄마도 나를 발발이라고 했을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점심 한 끼는 복지관에 가서 먹는다. 항상 웃으며 반겨주는 봉사자들과 영양사의 친절함이 좋았고,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니 더 좋았다. 달달한 커피의 맛은 어찌나 좋은지.

친하지는 않아도 보이는 것만으로도 서로의 안부를 알게 되니.

지난달에는 며칠 보이지 않던 박 씨 노인이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소식에 모두들 남의 일 같지 않아 했었다.

 

전화기가 어디 있나?

고개를 돌릴 수가 없다.

손과 발이 묶여 있다.




 
 

 




 

작가의 이전글 이야기로 만들다.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