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안 차네. 겉만 시퍼렇지 속이 안 차.
뒷 짐 지고 배추 밭을 내려다보는 윗집 할배의 끌끌 혀 차는 소리가 입 안에서 뱅뱅 돌아 나온다.
더운 날 땡볕에 앉아 포기포기 꼭꼭 심은 배추인데.....
옆에서 이장님은 양념 갓을 심었는데 키워 보니 여수 돌갓이라고 킬킬 거린다.
내 집 남의 집 할 것 없이 올 김장 배추는 속이 차지 않았다.
이장님이 국 끓여 먹으라며 배추 한 포기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갓 한 다발을 안겨 준다.
무게는 알 배추와 다름없었지만 시퍼런 겉잎은 삶아서 된장국 끓이고, 그 아래 잎 6장은 데쳐서 배추 전 부치고, 나머지는 겉절이를 하고, 덜 찬 배추 속에서 만난 단풍잎 만한 잎을 따로 모아 쌈으로.
덜 찬 배추 한 통으로 4 가지 반찬 만들어 저녁상을 차렸다.
갓이 야리야리해서 배추 전 위에 고명처럼 얹어 부치니 얇은 매운맛이 희한하다.
마침 남겨둔 막걸리까지 한 잔씩 하며
풍성한 밥상에 웃음으로 가득 채운다.
덜 찼으면 어떠랴.
11월이 헐렁해서 좋아하듯이.
이 새벽 어제의 덜 찬 배추처럼 이런저런 생각으로 다가오는 하루를 조금은 헐겁게 그려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