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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개 Dec 31. 2023

들고 가는, 두고 가는.

눈과 비와 바람까지 만난 여행



 출근하면서 서해대교를 건너자마자 펼쳐진 하얀 들판.
펄펄 내리는 눈 속에 도착한 안내 문자는 대설주의보라며 조심하란다.
 눈 치우기에 바쁜 직원들의 얼굴은 어린아이 같다.
 눈을 밀고 간 자리에 더 많이 쌓이는, 대설이 아니라 폭설이다.
 지게차 앞에 달린 밀개는 멈췄다.
 두고 간다.
 
 동지의 밤.
도착한 군산은 충남의 눈보다 10센티는 더 많다.
 3박 4일의 여행의 모든 곳에는 눈이 있었다.
고군산의 60cm의 눈  때문에 결국 돌아 나와서 통영으로 달렸다.
 낚시하러 자주 가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척포항 끝자락에 숙소를 정하고 각자의 취향대로 놀아보기로 했다.
 방파제로 나간 남편을 배웅하며 나는 글자들의 바다로 빠져들었다.
 고립된 자유.
 지난여름 명도(고군산군도의 섬 중에서 끝에서 두 번째 섬)에서 느꼈던 그 느낌 그대로를 만끽할 수 있었다.
 말도는 다음 주에 가기로 예약을 미뤄놓았으니
이 아니 좋을 수가.
 한산도 앞에 있는 카페에서 우리만의 크리스마스만찬을 하고 누가 준 적도 없는 축복을 만들며 살아온 우리는 서로에게 축복이었다는 토닥임을 나누었다.
 우리가 들고 온 것은 언제나 마음 맞춰 소리 내는 하이파이브!!!
 
그리고 오늘 (2023년 12 월 31일)
바람 속에 서 있다.
 우리는 어제 아침 배로 고군산군도의 끝섬, 말도라는 섬에서 아침을 맞았다.
 점심 먹고 숙소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진한 커피를 주문한 그때,
 비가 온다.
아니다 섬이 젖고 있었다.
 우와!!!
비 오는 섬이다. 푹 젖은 섬은 어지간해서는 만나기 어려웠었다.
카페의 젊은 주인은 의아해한다.
 낚시하시려고 오신 거 아니세요?
 아무려면 어떤가요. 비 그치면 하면 되지요.
젊은이는 갸우뚱한다.
아무렴 날씨도 안 보고 섬에 왔겠냐고......
우리가 가는 곳이 여행지이고 머무는 곳이 집인 것을.
 
 그러나 우리는 안다.
여행지와 집에서 하는 일상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많은 부분 정제되는 다른 시간을.
 
어제는 비에 젖었던 섬에 오늘은 바람이 분다.
엄청나게 분다.
 어제부터 읽던 책을 완독하고 바람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잠도 잠깐 즐기고 점심상에서 낮술도 꼴꼴 꼴 따르며 살짝 취기를 챙겨서 섬의 가장자리에 있는 하얀 등대까지 산책을 했다.
 잔뜩 성이 나있는 파도.
 파도는 거품을 뱉으며 우렁우렁 울어댄다.
 나의 2023년은 성난 파도 위로 가다가 돌아보고  가다가 돌아보기를 반복한다.
 함께한 시간만큼 우리는 수다스럽게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불편했던 각자의 먼지는 그렇게 바람에 털어냈다.
 내가 들고 간 것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였으나
두고 온 것은 내 이야기였다.
 끝섬 말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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