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과 비효율 사이에서 고민한다.
서울 사람은 양옆을 가림막으로 가려놓은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걸어간다는 이야기를 무더운 여름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했다. 서울에 20년 산사람, 서울에 5년 , 1년, 놀러 가기만 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울 사람들 이야기를 하면 재밌는 서울 살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서울 외 지역 사람들이라고 들판을 뛰어노는 야생마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서울 사람들이 가장 각박하게 살고 있다는 점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나는 “여유로움의 정도는 하루에 몇 번이나 하늘을 쳐다보는가로 측정할 수 있다”는 말을 참 좋아한다. 바쁜 하루를 살다가 의식적으로 하늘을 바라보곤 하는 것이 습관처럼 자리 잡은 것도 10년쯤 된 것 같다. 서울 사람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억하심정이 생기는지 꼭 한 마디를 한다.
“사무실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면 하늘이 보이는데?”
“나는 많이 보는 거 같은데?”
여유가 없는 사람들처럼 답변하지 말고, 숫자를 세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가 아닌 곳을 둘러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하늘을 볼 수 있다는 말 정도로 해석해줬으면 좋겠다. 서울 사람들은 이런 것에도 각박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해진 길을 가는 것은 쉽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이 알려준 최단거리를 따라 정해진 출구, 정해진 차량, 정해진 환승위치 여러 선택지 가운데서 효율적인 선택을 대신해주니 감사하다.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는 고민이다. 속 편한 소리 기는 하다. 가끔 여행 에세이를 보다 보면 일부러 길을 잃어버리는 여행을 한다던지, 골목길이 좋아서 일부러 골목길에 들어간다던지 하는 것을 보다 보면 다른 세상 사람 같기도 하다.
나 역시 효율적인 방법론을 추구해온 사람으로서 서울 사람들을 마냥 뭐라고 하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글을 쓰다가 문득 나는 어떤가 자문해본다. 창밖을 바라보니 건너편 건물, 빼곡히 창문이 있는 18층 정도 되려나, 그런 건물의 한 창문이 열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수백 개의 창문들 중에 열려있는 다른 창문이 보인다. 사무실마다 다른 모양으로 처진 블라인드와 그 안에서 모니터를 보고 있을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일을 멈추니 다른 생각이 든다. 멈추니 보이는 것들이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우리는 조금 더 쓸데없는 생각을 해야 한다.
심지어 과학적으로도 유용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글에 다시 과학적 유용함을 끌고 올려니 자가당착에 빠진 느낌이다. 그러니 궁금하신 분들은 그냥 검색을 해보는 것으로 하자. 명상의 효능, 멍 때리기의 효능 등으로 검색하면 많이 나온다. 아무튼 사무직이면 사무실 천장에 갈매기 문양이라도 가끔 보자. 육체노동이라면 천장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도 좀 보고, 공사현장이라면 시멘트가 어디서 왔을지도 고민해보고, 경주마라면 트랙을 벗어나 앉아서 쉬기라도 하자.
학창 시절에 지우개 똥으로 점토놀이를 하고, 껌 종이 박피해서 반짝반짝 은박 코팅을 하던 것, 기물파손이기는 하지만 책상에 구멍도 뚫고 교과서에 낙서도 하고 다 그러고 사는 것 아니겠는가. 참고로 나는 손에 땀이 많아서 은박지를 박피하는 걸 정말 못 했다.
2021년 여름이었다.
올해는 여름 날씨 같지 않다고 말한 것이 지난주인데, 입이 방정인지 습식 사우나처럼 습하고 더운 날씨가 찾아왔다. 양꼬치 집에서 고기를 굽기 위한 숯불도 거부한 채 오이무침을 시켜서 맥주를 마신 다음 날, 나쁘지 않은 컨디션으로 집을 나섰다.
집에서 사무실까지의 거리는 직선거리로 4km 정도 거리인데, 묘하게 교통이 불편해서 대중교통으로는 45분 정도 걸리고, 걸어서는 1시간,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하면 2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다. 어제 사무실에 차도 놓고 왔으니 도보, 버스, 버스 +지하철, 택시 중에 선택을 해야 하는데, 컨디션이 좋으니 대중교통을 선택하기로 했다. 사실 여기까지 선택한 것들은 어차피 정해진 선택지여서 크게 감흥이 없었다.
한 시간 정도 여유를 두고 나와서, 개찰구 들어가는데 보이는 안내전광판에서 열차 도착 표시를 보고도 느긋하게 걸어가서 지하철도 하나 놓치고, 사무실 근처 역에 도착했다. 사무실이 있는 곳은 서대전네거리역이라는 지하철 역인데, 사무실은 2번 출구에서 5분 정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다. 역 바로 앞에는 작은 공원이 하나 있는데, 이름은 서대전 공원이다.
맨 처음 서대전 공원을 봤을 때는 도심 한가운데 역세권에 이런 공원이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가운데 사각형의 잔디밭이 있고, 그 외곽을 따라 걷는 사람들을 위한 우레탄 코스가 있다. 그리고 그 외곽에 듬성듬성 나무가 있고,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가 있는 작은 공원이다. 주말이나 평일 저녁에는 하염없이 트랙을 도는 주민들도 있고, 반려동물들과 함께 나와서 산책을 즐기는 반려인들도 있다. 묘하게 잔디밭 한가운데는 항상 강아지들의 자리인데, 원래 알던 사람들인지 초면인지는 모르겠지만 개들은 반갑고 즐겁게 놀고 있고 그 주위를 반려인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습은 약간의 부러움과 흐뭇함을 동시에 제공한다. 거창하지 않아서, 그리고 구석에 있지 않아서 좋은 공원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출근길로 돌아와서 약간의 숙취를 가지고 지하철 출구를 나오면 바로 정면에는 차도와 나란히 있는 전형적인 인도가 있다. 그리고 10m 간격 정도로 공원 입구가 있고, 인도와 같은 방향으로 나있는 공원의 트랙이 있다. 공원 외곽의 나무와 벤치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가는 길이다. 10미터 차이로 다른 출근길이 펼쳐진다. 묘하게 소음도 덜한 느낌이다. 인도는 걸어가면 사무실까지 일직선이다. 가다가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도 직선상에 있다. 공원길보다는 그늘도 조금 더 있는 편이다. 공원길은 체감상 조금 더 걸린다. 공원 끝에서 횡단보도 까지도 있고, 지하철 역에서 공원 트랙까지도 인도보다는 걸어야 한다. 그래도 30초에서 1분 사이일 것이다. 오늘은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아침도 그렇게 뜨겁지는 않았다. 1분 정도의 여유도 충분했고, 짧은 산책을 하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공원길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1분 정도, 짧은 시간이니 쉽게 공원길을 선택했는데, 그걸 선택하면서도 효율성을 순간적으로 고려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지금 효율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내비게이션은 언제나 최고 효율의 길을 알려준다는 마케팅을 한다. 우리는 계속 삶의 내비게이션을 찾는다. 최단거리와 최소 시간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처럼, 삶에서도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삶을 효율화한다. 효율성만을 추구하는 삶은 얼마나 삭막한가.
정해진 답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공통으로 가진 유일한 목적지는 죽음뿐이다. 죽음까지 가기 전에 들르는 곳들은 모두 경유지다. 우리가 죽음으로 가는 효율적인 삶을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면 인생에서 효율적인 최단거리와 최소거리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아니다. 우리는 인생의 경유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그 선택은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다. 일상 속에서 사소한 것까지 효율성의 기준 아래 선택하며 살아가는 삶 속에서는 행복할 수 없다.
서울 사람은 한국사람의 표상이다. 화난 사람은 내 자화상이기도 하다. 공원을 걸으면서 생각한다. 오늘 조금 비효율적이지만 만족스러운 작은 선택을 했다. 다른 사람들의 출근길에도 다른 선택지들이 있기를 바란다. 1,2분 돌아가더라도 좋아하는 길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