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화쟁이가 보내는 편지...
2021년, 강원도 양양의 부모님 집에서 창고처럼 쓰던 방을 정리하는 여름이었다. 은퇴 후 서재를 갖는 것이 꿈이라던 아버지의 희망사항을 도와주기 위해 세로로 쌓여있는 책들을 가로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다른 집들도 그러겠지만 책장정리를 하다 보면 숨겨진 보물처럼 오래된 앨범이나 초등학생 때 일기 같은 것들이 발굴되곤 한다. 그럼 잠시 청소를 멈추고 앨범을 넘겨보거나 일기장을 넘기느라 청소 감독자의 지적을 받기도 한다. 서른 살이 되어서 다시 돌아본 나의 어린 시절은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초등학교 2학년 일기장에는 2학년 때의 화가 보인다.
“선생님은 매일 일기를 써오라고 한다. 매일 똑같은 일상인데 무슨 일기를 매일 다르게 써오라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써오라니 쓴다.”
“나는 숙제를 해왔는데 최00이 숙제를 안 해와서 모두 같이 혼났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다. 최00이 죽었으면 좋겠다.”
악필로 휘갈겨져 있었다. 선생님이 검사하는 일기장에 선생님 보라고 써 놓은 것도 그렇고 화는 나겠지만 일기장에 죽었으면 좋겠다고 쓴 걸 보면 참 고약한 성격이 아닐 수 없다. 일기장 아래에는 아마도 수학여행 때로 추정되는 롤링페이퍼도 있다. 꼬깃꼬깃 구겨져 있는 15년 정도 지난 도화지에는 남들이 바라본 나의 화도 확인할 수 있다.
“재섭아 화 좀 그만 내…”
“말을 너무 무섭게 한다.”
“화쟁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중학교 때의 일상을 되돌아보며 부끄러움이 많은 삶을 산 것을 반성한다.
시간이 지나 20대가 된다고 해서 화가 줄어들지는 않았다. 정제되지 않은 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있었지만 세상이 내 옳음과는 무관하게 굴러갔고, 불평불만은 부적응자의 소리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대학에서 사회운동과 만난 것은 결과적으로 나의 화를 다스리는데 도움이 되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이 들지만 집회에 나가서 소리를 지르고 이것저것 반대하고 이것저것 중단하라고 외치면서 20년간 소리 지른 것보다 많이 질렀으니 아마도 효과가 있었을 거다.
20년간의 서울살이에서 나는 고도로 잘 적응한 서울 사람이었다. 환승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해서 지하철 안에 타서도 최단 환승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칸으로 움직이고, 매주 약속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자동차 신호등의 변화도 계산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화가 많이 났다. 나에게 하는 지적은 공격 같았고, 비교대상이 너무 많고, 하는 일이 잘 안될 때마다 화가 났다. 말투는 공격적이고 남을 지적하는 것이 그 사람보다 우위에 설 수 있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내용이 아닌 말투에 대한 지적이 부당하다고 화를 내기도 했다. 술에 취하면 괜히 누군가에게 사과를 받고 싶어지기도 했다.
“야 네가 하는 말이 다 맞는데, 네 말대로 하기는 싫어”
20대에 서울 살면서 자주 들었던 말이다. 그때는 잘 몰랐다. 나는 화나 있는 게 아닌데, 나보고 공격적이라고 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열심히 살았지만 화가 줄지는 않았다. 화가 많은 사람이기에 화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아직 갈길이 멀다.
서울살이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뜻은 아니다. 화내고 성질내는 것이 다 환경 탓이라는 뜻도 아니다. 다만 나에게는 약간의 여유와 조금의 여백이 가져다준 지금의 환경이 서울보다 화를 덜 낼 수 있는 환경일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화가 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서는 화를 잘 다스리는 편이다. 만약 내가 계속 서울에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내 성질상 아마 화병이 났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화병 나기 전에 여유를 찾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