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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섭섭 Oct 24. 2021

서울의 에스컬레이터

말 잘 듣는 한국사람들도 못한 두 줄 서기


  2019년 말, 대한민국 카페에서는 앞으로 매장 내에서 1회용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노력으로 1회용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려는 정부의 노력이었다. 최근에야 코로나 19 감염증으로 인해서 다시 매장에서 1회용 컵을 제공하는 것을 어느 정도 허용해주고 있기는 하지만, 맨 처음 카페 매장 내에서는 1회용 컵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취지에 동감하면서도 “이거 쉽지 않겠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대도시에는 어딜 가나 카페를 찾을 수 있고, 서울 같은 경우는 번화가는 스타벅스가 마주 보고 있어도 자리가 없을 지경이니, 전국의 수 없이 많은 카페들과 그 이용자들이 저 정책을 잘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먼저 든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대한민국은 편의점보다 교회가 많다는 소리가 있는데(실제로 통계청의 2014년 전국 사업체 조사 발표 결과를 보면, 한국의 기독교 단체수는 5만 5,767개로 편의점보다 많다.) 카페는 그런 교회보다 많으니(2020년 기준 8만 3692개) 대한민국은 카페 공화국이라고 부를 만하다. 


  하지만 실제로 정책이 시행되고 나자 대도시의 프랜차이즈 카페들을 비롯하여 많은 카페들이 매장 내에서는 다회용 컵에 음료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이용자들도 불만은 많았겠지만 마지못해 따르는 분위기였다. 그 시절 어느 날 서울 신도림역에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를 지나다가 앉아있는 사람들 앞에 모두 유리컵이 놓인 것을 보았을 때 놀라움과 신기함에 충격을 받았다. 물론 범칙금 등 강제조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긴 하겠지만 일회용 컵 사용 금지 상황을 보면서 정부가 조금만 의지를 더 가지면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 생각보다 시키는 대로 잘 따르는구나…


  기억을 돌이켜보니 비슷한 경험이 한번 더 있었다. 나는 91년생인데, 그 시절에는 ‘좌측통행’이 기본이었다. 초등, 중등, 고등학교까지도 학교 계단과 복도에는 좌측통행 안내 문구와 화살표가 있었고, 소풍이나 견학을 가면 선생님이 좌측통행을 줄기차게 외쳤던 기억도 있다. 그러더니 어느 날, 2010년 10월부터는 우측통행을 해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은 좌측통행이 일본의 잔재였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우측통행을 하면 교통사고가 감소한다는 통계와 이런저런 이유들이 뉴스에 나오고, 국토해양부에서는 ‘우측통행’ 온라인 홈페이지까지 운영했다.(지금은 운영되지 않는다) 당시 기사를 찾아보니 초등학교 교과서 내용을 수정하느라 힘들었다는 기사가 있기도 했다. 사람이 걷는 인도 좌측통행이 1961년부터 시행되었다고 한다. 나야 20년이지만 60년생인 나의 어머니는 평생을 좌측통행으로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좌측통행을 하면 통행을 방해하는 몰상식한 사람이 되게 생긴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한국사람들은 시키는 데로 잘 따랐다. 이건 누가 범칙금을 매기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지금이야 뭐 모두가 익숙하게 우측통행으로 배우고 번잡한 곳에서는 우측통행 안내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런 사례들은 생각보다 많이 있다. 벌칙이 있는 제도야 구시렁대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른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잘 따르는 편이다. 특히 자동차 속도제한이나 이런저런 제도 변경들이 그렇다. 생활 속에서도 그럭저럭 바뀌는 제도들에 대해서 잘 따르는 편이고 금방 적응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대한민국에서도 실패한 생활 정책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에스컬레이터 두줄서기다. 


  어린 시절이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를 탈 때는 바쁜 사람들을 위해서 한 줄을 비워두자는 소리가 있었다. 꽤나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서울에 살 때는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번에도 갑자기 2007년 에스컬레이터에서 보행 시 사고위험이 높아지고, 한 줄 서기를 했을 때 한쪽으로만 하중이 쏠려서 고장 위험이 증가한다면서 두 줄 서기가 제안되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서울메트로를 중심으로 제기된 주장이었는데,  정책의 적정성을 떠나서 서울 사람들의 일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정책이다. 일단 서울의 에스컬레이터는 조금 빠른 계단이다. 무빙워크는 일종의 축지법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서울 지하철에서 안전을 이유로 비키지 않는다면, 화가 난 서울 사람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워낙 바쁘게 사는 서울 사람들, 특히 지하철에 나있는 서울 사람들은 실시간으로 다음 환승 열차의 도착시간과 내리는 위치, 그것을 계산한 이동시간을 아주 자연스럽게 계산하는 사람들이고, 빼곡히 가득 찬 지하철 칸을 나와서 이동하는 서울 사람들에게 에스컬레이터는 그냥 계단이다. 


  계단에서 길을 막고 멈춰있다니, 만약 당신이 서울에 놀러 갔거나 이제 막살려고 도착했다면 이제 서울의 법을 익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안 그래도 화가 난 서울 사람들의 짜증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런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은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역인데, 버스시간에 맞춰서 급한 사람들부터 환승을 노리는 사람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결국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는 2018년, 8년 만에 폐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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