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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섭섭 Oct 20. 2021

서울 사람들은 항상 화가 나있다.

이 글을왜 쓰게 되었는가


  나는 딱 태어나기만 강원도 속초에서 출생했고, 그 이후로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순간부터 25살까지 서울에서 자랐다. 유치원부터 학창 시절을 전부 서울에서 지냈으니 나는 서울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고향을 이야기하는 기준이 ‘출생지’ 보다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는 곳이라면, 내 고향도 서울이다. 


  한 발자국 떨어지면 더 잘 보인다고 했던가? 내가 서울에 살 때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것들을 서울을 벗어나서 살게 되면서 서울의 다른 모습들이 보였다. 특히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자고로 사람이란 복합적인 존재니까, 이렇다 저렇다 단언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서울 사람들은 대체로 화가 나있는 것 같다. 나도 서울에 살 때 화가 많은 사람이었는데, 지금 내 안의 화가 줄어든 것이 서울에 안 살아서인지 그냥 조금 사회화되어서 부드러워진 것인지는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서울을 벗어나서 살면서 서울에 살 때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대중교통이다. 거미줄처럼 이어진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목적지까지 가장 효과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지냈다. 너무나 일상이어서 잘 인지하지 못하는 부분인데, 기술의 발전으로 스마트 폰에서 실시간으로 도착지까지 가는 다양한 방법을 구체적인 시간과 방법까지 함께 제공하면서 '효과적인 대중교통 이용'을 생각하는 습관은 더욱 강화되었다. 


  출퇴근 시간 혹은 등하교 시간으로 1시간 전후의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어딜 가나 바글바글한 사람들, 그런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서 남양주쯤으로 가면, 나와 똑같은 생각으로 남양주에 온 서울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그런 삶, 동대문구에서 마포구까지, 수원에서 강남까지, 도봉에서 관악까지, 서울이라는 도시는 삶의 반경과 삶의 시간이 대한민국의 다른 곳들과는 조금 어긋나 있다. 


  서울에서는 시간을 분배하는 사이클과 기준도 다르다. 정기적인 활동은 일주일 단위로 자를 잰 듯이 돌아가고, 얼마나 자주 만나는가가 서로의 친밀도를 확인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서울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했던 기억을 생각해보면 1주 단위로 반복되는 모임을 했던 기억이 있다. 얼마나 바쁘게 사는 사람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무의식적으로 내 시간을 계획하고 분배하는 주기가 다른 지역에서 살 때보다 빠르고 타이트하게 짜였던 것 같다. 매주 반복되는 다양하고 복잡한 일정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게으른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2015년에 서울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가장 큰 이유는 직장 때문이었지만 내심 서울을 벗어나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도 꽤 큰 이유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전시나 공연처럼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문화 콘텐츠를 크게 소비하지 않고, 영화관을 가끔 가는 것이 정기적으로 소비하는 문화생활인 것도 한몫했다. 태어나기만 강원도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의 고향이 속초고, 아버지 고향이 양양이어서 명절 때나 연휴 때는 자주 강원도에 갔었기에 서울이 아닌 곳의 생활도 경험해봤고, 사람과 부대끼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엄청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 내 개인적인 특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3개월 정도 강릉에 출장을 갔다가 전주로 이주했고, 다시 직장 때문에 대전으로 이사를 왔다. 대전에 온 것이 2016년이니 2021년 현재 만 5년 정도 대전에 산 셈이다. 엄청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산 것은 아니지만 서울을 벗어나니 서울에서의 삶을 조금 떨어져서 돌이켜 보는 경험은 흥미로웠다. 대전에 이사 와서 살면서 주변 지인들에게 조금 부드러워졌다는 평가를 듣곤 했는데, 이게 나 스스로가 성장한 것인지 아니면 상황이 바뀌어서 그런 것인지 고민하던 와중에 “혹시 내가 서울을 벗어나서 그런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서울을 올라가서 마주하는 이방인으로 서울을 바라보면, 특히 서울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역의 에스컬레이터에 서면 “서울 사람들 참 바쁘게 움직인다”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른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서울 사람들은 항상 화가 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매우 섣부른 결론이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이건 일종의 비유다. 


  화가 나있는 개개인을 비난하거나 놀림거리로 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서울이라는 공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복잡하고 바쁘게 살아가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 사람들을 예민하게 만들고, 화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지 고민해보았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는 서울을 벗어나서 다른 동네에서 살아보는 것을 제안하는 추천글이기도 하고, 사회갈등을 고민하고 해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해결책을 제시해주길 바라는 요청서이기도 하고, 그냥 항상 화나 있는 서울 친구들을 둔 사람들에게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서울 사람 관찰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화가 나있는 서울 사람들에게는 스스로의 화나 있는 마음이, 힘든 심정이 개인의 탓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글이기도 하다.  이 글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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