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인 대중교통 이용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서울 사람들의 일상을 돌이켜 보면, 무의식적으로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서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할 수 있다.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서 어떤 루트를 선택해야 하는지, 서울 사람들은 매 순간 선택해야 한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대다수의 지역에서는 그 목적지까지 가는 선택지라고 하는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대전역에서 서대전역까지 가는 길은 지하철 1호선(대전은 지하철 1호선 밖에 없다. )이 제일 빠르다. 다른 선택지는 동일한 경로의 버스를 타는 것 정도다. 많아봐야 2~3가지의 선택지가 있기에 큰 고민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서울에서는 다르다. 예를 들어 청량리역에서 출발해서 어딘가로 가고자 할 때 서울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적게는 3개에서 많게는 7~8개까지 많아진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던지, 지하철끼리 환승을 하던지, 선택지는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에 따라서 달라지고, 환승역을 기준으로 한다면 더 다양해진다. 목적지까지의 거리가 길면 오래 걸리더라도 앉아서 갈 수 있는 선택지를 고르는 선택지도 추가 가능하다. 이동거리가 짧다면 짧은대로 고민의 깊이는 더욱 깊어진다.
단순히 방법만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다. 지하철을 탄다면, 열차가 언제 오는지에 따라서 버스와 지하철을 선택하는 것이 정해진다. 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의 선택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스마트폰의 지도 어플은 당신이 어디서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다음 차는 언제 오는지를 고민하고 선택할 수 있게 만든다. 그것뿐 아니라 당신이 만약 지하철을 탄다면 환승을 위해서 어느 칸에 타야 하는지, 어디가 출구랑 가까운 지도 선택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이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서울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쉴 새 없이 판단을 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렇고 선택한 방법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다른 선택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하지 않아도 될 후회의 연속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게 선택한 방법이 당연하게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한 것은 덤이다. 그런 삶 속에서는 화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서울 사람들은 항상 화나 있다.
대전에서 살게 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서울에 갈 때면 서울역에 내리는 순간부터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켜서 목적지까지의 방법을 검색한다. 3~4 정거장 거리더라도 몇 분 차이로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핸드폰에 수두룩하다. 지하철 도착시간을 계산하고, 출구로 나가 버스정류장의 위치를 고려한다. 목적지 근처에 내려서 실제 목적지까지 걸어서는 얼마나 걸리는지도 실시간으로 같이 계산한다. 그런 계산 과정을 거쳐서 한 가지를 선택하고, 그 선택지를 선택하는 순간부터 그 선택 지상에서 조금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다. 에스컬레이터는 당연히 걸어서 올라간다.
사소한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매일, 매 순간 이런 선택들을 하는 삶이라는 것은 매 순간 선택과 후회를 반복하는 생활이다. 뇌는 계속 작동하고 있다. 복잡하고 잘 깔린 대중교통 망은 서울 사람에게 더 많은 효율적인 선택지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사소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 일 수 있다.
버스도착 안내판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요즘은 일상화된 버스정류장에 있는 여러 형태의 안내판은 그 정류장에 정차하는 버스의 도착시간을 안내하는 전자판이다. 버스도착정보안내기는 2001년도에 부천시에서 시작하여 서울시는 2007년부터 적극 도입하였다고 한다. 과거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그때쯤부터였던 것 같다.
맨 처음 버스 도착시간이 정류장에 표시되었을 때는 무척 유용한 정보라고 생각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다음에 오는 버스가 어디까지 가는지, 내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인지 버스정류장의 노선표를 보고 찾고는 했다. 버스가 적은 곳은 노선표만으로 원하는 버스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지만 환승센터나 번화가에서는 버스정류장에서 노선표를 찾다가 버스를 놓치는 일도 있었다.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가 여러 개인 경우에는 숫자를 외워서 버스가 들어올 때마다 고개를 돌려 버스노선표를 다시 확인하느라 바빴던 기억도 있다. 버스도착정보안내기가 생긴 그 이후에는 버스가 들어오기 직전에서야 버스의 번호를 확인하느라 바쁘지 않아도 되었고, 여러 개의 버스 중에 어떤 버스가 먼저 오는지 알 수 있어서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버스도착정보안내기는 자연스럽게 익숙해져 갔다. 그러다가 2010년 전 후로 해서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서울의 지하철역에서도 버스도착정보 시스템을 활용한 지하철 도착정보 안내판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지하철에서도 열차 도착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버스도착정보 안내기가 이미 보급된 시점이기 때문에 서울에서는 지하철 도착정보 안내기도 빠르고 복잡한 서울의 대중교통에서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보로 활용되었다. 나 역시 이러한 정보를 아주 잘 활용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내려가는 와중에 개찰구 위에 있는 지하철 도착정보를 확인하게 되었는데, 당역 접근이라고 써져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이 역의 구조를 회상해보고 몇 개의 개단을 내려가야 하는지 계산한 다음에 당역 접근이면 어차피 못 탄다고 판단해서 여유롭게 걷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걸어가는 와중에 저 정보가 꼭 필요한 정보일까? 하는 고민을 시작했다. 물론 살다 보면 1분 1초가 급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지만 보통은 지하철 하나 정도를 놓치는 시간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중앙선처럼 서울의 다른 지하철에 비해서 배차간격이 너무 긴 예외적인 것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일반적인 서울의 지하철의 배차간격이 짧은 것은 3분, 긴 것은 5분 정도라는 것을 고려해봤을 때, 방금 놓치더라도 5분 뒤면 열차에 탑승 가능하다고 가정해볼 수 있다. 자 그렇다면 아슬아슬하게 차를 놓치는 경우를 제외하고 그 외 다른 경우의 수에서 지하철 도착정보가 우리에게 주는 이로움은 무엇일까?
두정거장 전에 있다는 열차의 정보가 나에게 주는 효과는 무엇일까! 아직 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화장실을 다녀올 수 있다는 정보? 심리적인 안정감을 위해 나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정거장의 플랫폼 승차위치, 계단과 에스컬레이터의 유무, 화장실을 가느냐 마느냐, 뛰느냐 마느냐의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차라리 저 정보가 없는 것이 더 편한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바쁜 현대의 서울 사람에게 5분은 무척 중요한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조급함을 증가시키는 5분 정보보다는 그래도 5분이라는 여유로움의 무지가 더 좋은 삶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