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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_퀴어(2)

논바이너리 대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


    지금 여기, 그 누구보다 평범한 대학생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알바하느라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고, 가끔은 학점을 조지기도 하고, 또 동아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 그런 사람들이요! 유난히도 춥던 11월의 어느 날, 팀 유니버스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우리 함께 시럽, 블랑카, 그리고 피로의 삶을 들여다볼까요? (※ 글 중간 중간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 *표시 하에 편집자가 추가적으로 내용을 서술했음을 밝힙니다. 더불어 다양한 성정체성과 성지향성 용어 중 지난 에세이에 소개된 건 따로 추가 설명을 적지 않았음을 밝힙니다.)


Q1. 자기 소개 부탁 드립니다원하시는대로자유롭게요!


시럽

    스물 두 살 시럽입니다. 예전에 누군가 절 시럽이라고 불러줬는데 그 애칭이 마음에 들었어요. 시럽은 달고 부드럽잖아요? 꼭 저같아서 ㅎㅎ 저는 논바이너리 데미보이(*특정한 성정체성에 100% 해당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남성의 젠더라고 느끼는 것)로 정체화하고 있고 성적지향은 범성애자예요.

   

블랑카

    블랑카입니다. 일단 정체성은 에이젠더로 정체화하고 있어요. 지정성별 남성이지만 여성으로 *패싱되기를 바랄 때도 있는 에이젠더고요, 범성애자입니다. 저는 굉장히 성격이 물렁물렁하고, 친화력이 막 좋지는 않은데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passing, 외관상 특정 성별로 비춰지는 것. 혹은 해당 성별인 것처럼 외모를 가꾸고, 행동하는 것.)


피로

    피로라는 활동명으로 활동중이고요. 논바이너리로 정체화를 한지는 7년 가까이 되는데, 예전에는 *ftm 트랜스젠더라는 의심을 한 적도 있었어요. 그 당시 트랜스젠더 웹 커뮤니티에서 사용했던 이름이 피로였습니다. 지금은 스스로 ftm 트랜스젠더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논바이너리에는 속해요. 양성애자인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범성애자? 둘 중에 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사실 저는 한가지 성별의 특성만 가지고 살기에는 삶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요. 재밌게 살려면 다 섭렵하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언제는 남성적일 수도, 언제는 여성적일 수도, 언제는 중성적으로 사는 게 재밌을 거라고 생각해요. (*female to male)


Q2. 올해도 벌써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네요올해를 돌아본다면?


시럽

    한 것도 없는데 이미 11월이라는 것에 깜짝 놀랐어요. 올해 성장을 많이 했다고 느낍니다. 알바를 하면서 바빠졌는데, 사람을 대하는 방식, 그리고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도 변한 것 같아요. 조금 어른스러워졌다고 생각해요. 술집에서 바텐더 겸 쉐프 알바를 했는데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조금 변한 듯 합니다. 또 가끔씩 실수를 할 때도 있는데 그때 사장님한테 혼나면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하고요.     

    그리고 사실 제가 오랫동안 정신건강이 안 좋았는데 줄곧 치료가 싫어서 거부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고 있어요. 2021년에 한 일 중 가장 자랑스럽습니다.


블랑카

    저는 작년 2학기를 완전히 조졌어요. (웃음) 학점을 거하게 말아먹었는데, 방학 때 조금 쉬고 나서 올해 1학기에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러지 못했고, 지금은 휴학중입니다.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휴학 기간동안 공부를 이것저것 했고, 또 ‘아무 것도 안 하면서 하루 보내기’도 많이 했습니다. 연애나 데이트도 꽤 하고, 놀기도 많이 놀았네요. 사람도 많이 만났고요! 그런데 요즘은 할 게 없네요. 심심함에 지쳐있어요. 심심하다는 게, 휴학 때 할 일들을 많이 계획해놨는데 조금씩 하다보니 질리더라고요.      

    작년까지만 해도 꽤 우울했는데 뭔가를 많이 하다보니 회복됐고, 올해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래서 지금은 안정화가 된 느낌? 복학을 하고 나면 많은 것들을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피로

    올해는 저에게 회복기, 그러니까 우울증 극복기였던 것 같아요. 작년 2학기가 제 첫 학기였는데, 다니다 힘들어서 질병휴학을 했어요. 올해 첫 학기는 다닐 수 있을 것 같았으나 학점을 조졌고요. (웃음) 우울증이 있었는데 여름에 가족들, 그리고 좋은 인연들을 만나고 애인이 생기면서 많이 안정이 되어서 지금은 우울증은 없습니다. 대신 ADHD를 극복하려고 노력중이에요. 올해 뭔가 성과는 크게 없는 것 같지만, 좋은 일들이 막판에 많이 일어나고 있어서 좋습니다. 저는 저의 이런 성격을 사랑해요!     


Q3. 여가 시간에 주로 뭘 하고 보내시나요취미가 따로 있으신가요?     


시럽

    요즘 바빠서 여가 시간이 없어요. (웃음) 그래도 비는 시간에는 주로 운동을 해요. 고등학교 때 스트레스를 풀려고 운동을 했었는데 대학에 입학하고는 한동안 쉬었어요. 친구들이랑 놀고 술 마시는게 너무 즐거워서요. 다만 요새 바텐더 알바를 하다보니 친구랑 술 마시는 빈도가 줄었어요. 그리고 일이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친구들을 만났을 때 의도치 않게 기분을 다운시킬까봐 두렵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새는 친구들이랑 놀기보다는 혼자서 운동을 하는 편이에요.     

    아니면 영화를 보기도 해요. 영화관에 가지는 못하고 주로 넷플릭스로 영화를 봐요. 그것도 이동하는 시간에요. 휴 사실 수업도 너무 빡세고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요새는 전과를 진지하게 고민 중입니다.     


블랑카

    일단 오타쿠라서 가끔 애니를 보기도 하는데 요새는 볼 게 없네요. 게임도 좀 하다가 질렸고요. 게임 유튜브나 파충류 관련 유튜브를 보기도 합니다.     


피로

    여가 시간에는 그냥 유튜브를 보거나 그림 그리거나 노래를 만들기도 해요. 애인이랑 데이트도 하고요. 참 슬픈 게 제가 20학점을 듣고 있거든요. 친구들 만날 시간이 엄청 없어져서 요새는 일부러 짬을 내서 친구들을 만나려고 하는 중입니다.     


(피로에게혹시 MBTI가 파워 E신가요그리고 말씀해주신 취미들이 완전 예체능 쪽이네요!     


    아뇨 INFP라서, 기 센 사람 만나면 힘들기도 하고 그래요. 누구랑 만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블랑카 님은 파충류 관련 유튜브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저는 수달 유튜브를 좋아해요!     

원래 예체능 쪽으로 진로를 삼으려고 했는데 업으로 삼기에는 자신이 없더라고요. 음악 만드는 건 지금 음악 만드는 사람이랑 사귀고 있어서 애인한테 배우기도 하고, 또 그림 그리는 건 그림동아리에 가입할 정도로 원체 좋아합니다!     


Q4. 혹시 진로로 뭘 생각하고 계신지 여쭤봐도 될까요밝히고 싶지 않으시면 살짝 귀띔만이라도요!     


시럽

    대학원에 가서 연구자가 되고 싶어요. 취직을 하기 싫어서는 아니고. (웃음) 인문이나 문학, 인간에 관심이 많아서 깊게 공부해보고 싶어요. 일보다는 연구가 하고 싶은 거죠. 물론 연구도 일이지만!     


블랑카

    자연대생인데, 대학원에 가서 학위를 따고 연구를 하고 싶어요. 다른 길은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피로

    저는 자유전공학부인데, 전공 진입은 아직 안 했거든요. 인문대에 가고 싶어요! 교수가 된다면 참 좋겠죠. 안 된다면 그냥 쭉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고 싶네요.     


Q5. 본인의 성정체성이나 성지향성을 정체화한 게 언제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시럽

    사실 너무 여러 번 바뀌어서 꽤 복잡해요.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여자만 좋아했는데 3학년 때 남자인 절친을 좋아하게 됐어요. 그때 처음으로 내가 남자를 좋아하기도 하는구나 생각했죠. 하지만 계속 친구관계를 유지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후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내가 양성애자인지 생각하게 되었어요. 일단 그때 양성애자로 정체화를 했습니다. 친한 친구들한테는 커밍아웃도 했었죠. 그런데 2학년이 되어서는 또 여자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게이라고 생각했고, 부모님한테도 게이라고 커밍아웃을 했죠.      

    그러다가 퀴어 관련 NGO에서 일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LGBT 이외에도 다양한 성정체성과 성지향성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죠. 또 서울대 입학 이전에 다니던 대학에서 퀴어 동아리에 가입하면서 다양한 성적지향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게 된 데다가, 그때부터는 또 여자가 다시 좋더라고요. 곰곰이 다시 생각해봤죠. “나는 게이인가 바이인가...” 결국 범성애자로 정체화했어요.     

    이후 서울대 퀴어 동아리에 가입해서 논바이너리 친구 몇 명을 사귀고 이야기해보니 저는 여자이고 싶지도 않고 남자이고 싶지도 않은 사람 같더라고요. 그래서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했습니다. 또 최근에는 데미보이라고 해서, 내가 스스로 느끼기에는 남자같은데, 남자들 사이에서 주로 공유되는 경험이나 언어와 같은 것들에는 공감하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데미보이라고도 정체화했습니다. (*시럽의 성정체성은 논바이너리 데미보이, 성지향성은 양성애자라고 생각했다가 지금은 범성애자)     


블랑카

    일단 지향성은 일찍 안 편인 것 같아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인식을 했고, 중학교 졸업하기 전에 양성애자라고 정체화를 한 것 같아요. 이후 약간씩 변동이 있을지언정 지금까지 쭉 이어져오는 것 같네요.     

    정체성은 중학교때까지는 의문이 없었는데, ‘퀴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고 인터넷으로 찾아보니까 젠더퀴어라는 것도 있고 그렇더라고요. 고등학교 2학년때부터는 제가 완전한 시스젠더 남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출신 고등학교가 굉장히 무성적인 환경, 그러니까 남초였지만 흔히 우리가 ‘남성적’이라고 말하는 남성들이 많지 않은 환경이었거든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안드로진으로 정체화를 했고, 여성으로 패싱되고 싶다는 생각은 그때부터 한 것 같아요. 사실 공부하느라 바빠서 고민을 많이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이후 대학에 입학해서 고민을 꽤 했는데, 작년부터는 그냥 취향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저런 복장이나 패싱에 대한 취향은 있는데, 이걸 굳이 젠더정체성과 연관지으려 하지 않고 있는 거죠. 그래서 에이젠더로 정체성을 굳혔습니다.     


피로

    저는 논바이너리로 정체화한 게 중학교 2학년, 그러니까 6-7년 전쯤이네요. 동시기에 양성애자라고 정체화를 했어요. 당시 제가 정체화를 할 수 있었던 기반이 된 친구가 있는데요. 제가 살던 곳이 좀 보수적인 환경이었는데, 그 친구가 미국에서 왔었거든요. 아무래도 당시에 미국은 인권의식이 좀 더 퍼져있었고, 그 친구가 이것저것 알려줘서 정보들을 통해 정체화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지금은 아닌데, *젠더 디스포리아가 중학교 2학년 때 심했거든요. 2차 성징도 오고 그럴 때니까. 그래서 그때는 되게 중성적으로 하고 다녔어요. 그런데 또 지금은 너무 중성적으로 하는 건 재미가 없네요. (*gender dysphoria, 지정 성별과 성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것에서 오는 불쾌감)     


블랑카 

    저도 피로처럼 젠더 디스포리아를 겪었다가 안 겪었다가 해요. 지금은 여성적인 신체를 가지고픈 디스포리아를 겪고 있네요.     


Q6. 가장 최근에 본인의 성정체성이나 성지향성의 존재감을 실감하셨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시럽

    술자리에서 후배가 저한테 오빠라고 불러도 돼?”라고 했을 때그냥 아무렇게나 불러도 된다고 했거든요. 그런 순간에 제 성정체성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아무래도 논바이너리 범주 하에서도 정체성이 유동적으로 변하다보니까요.     


블랑카 

    부정적인 방향으로 실감했던 순간이 참 많아요. 친구들이랑 이야기할 때에도, 동성애인이나 논바이너리 애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말하지 못하죠. 다른 사람들은 쉽게 남친, 여친이라는 말을 쓰는데 성별을 감추고 ‘애인’이라는 표현을 굳이 할 때 친구들과 괴리가 느껴져서 “나는 시스젠더 이성애자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또 남성성이나 여성성에 대한 강요가 담긴 표현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시스젠더들이 하는 “그러고도 남자냐? 그러고도 여자냐?” 하는 말들. 그런 것들을 들을 때 저런 말을 왜 할까 싶어요. 저는 트위터를 많이 하는데 거기서는 퀴어정체성을 드러내도 문제가 없고, 또 논바이너리나 에이젠더 정체성, 젠더적 패싱에 관한 취향같은 것들 하나하나가 다 제 개성으로 작용하거든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퀴어가 많이 없는 곳에서는 개성으로 드러낼 수 없죠. 어떠한 공격을 받을지 모르니까요. 그래서 굉장히 불편합니다.     

'저의 존재를 저 마음대로 드러낼 수 없다는 게 불편한 그 순간'에 제 존재를 인식하는 것 같아요.     


피로

    일단 바이너리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과 있을 때 제 정체성이 확고해지는 느낌을 받아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친구들이 저를 ’여성스러운 사람‘이라고 보는 건 딱히 짜증나거나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이제 세상을 상대로 봤을 때, 예를 들어 설문조사에서 성별을 체크할 때 선택지가 남자와 여자밖에 없으면 정말 짜증나요. “나는 남자도 여자도 되기 싫은데 왜 굳이 이분법적으로 나눠야하지?”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또 ’여성연대‘라던가 그런 모임에 가입하고자 할 때에도요. 어떤 곳은 젠더퀴어를 받지 않고 시스젠더 여성만 받는다는 곳도 있거든요. 뭐 아무튼 제가 여성과 유사하다보니 어찌어찌 모임에 들어가더라도 제가 하나의 ’여성‘으로 정의가 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순간들, 그러니까 제 젠더를 활성화해야하는 순간들에 느껴지는 압박 자체가 참 버거운 것 같아요. 그냥 이대로 살고싶은데 왜 모든 걸 확실하게 정의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Q7. 성정체성 또는 성지향성 때문에 겪어야 했던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으시다면? (긍정적인 일이든부정적인 일이든!)     


시럽

    저는 저를 저대로 받아들여줄 것 같지 않은 사람들하고는 애초에 친구를 하지 않아요. 성정체화한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이후에 만난 사람들은 다 동아리 사람들이거나 친한 사람들뿐이라서 별 일 없었어요. 물론 혐오 발언을 들으면 맞서서 대응하기는 합니다. 그래도 참을 수 있는 정도면 그냥 참는 편이에요.     

    저는 제가 촉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초면에 나랑 맞을지 안 맞을지 판단할 수 있어요. 한번은 대학에서 철학 수업을 듣고는 “그래. 나랑 안 맞아도 한번 관계를 맺어보자”하고 생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진짜 안 맞더라고요. (웃음)     


피로 

    저는 엄마한테 커밍아웃을 했을 때 엄마가 화를 내시면서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듯이 행동하셨을 때가 강렬한 경험이에요. 그 와중에 커밍아웃을 할 때에도 논바이너리라고는 못했어요. 어떻게 설명할지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냥 여자를 좋아한다고만 얘기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안 좋은 경험을 겪었네요.     


블랑카

    아무래도 역시 커밍아웃이겠죠. 그런데 커밍아웃때문에 부정적인 일을 겪어보지는 않았어요. 제가 커밍아웃한 사람들은 다 제가 미리 검증한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래서 별일은 없었네요.     

    한번은 학교 선배들한테 커밍아웃을 한 적이 있어요. 제가 그때 장발이었는데, "내가 나타내는 표현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이 눈치채고 날 공격적으로 대하면 어쩌지?" 하는 고민들을 했었거든요. 장발도 그 표현의 일부였고요. 선배들한테 커밍아웃하면서 내가 하는 이런 젠더적 표현들이 나를 퀴어로 보이게 하지는 않았냐고 물었는데, 당연히 시스젠더 남성인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애초에 사람들한테 주변에 퀴어가 있을 거라는 인식이 없다는 걸 깨닫는 경험이었어요. 또 가끔 sns에 퀴어 관련 내용들을 업로드하는데, 딱히 알아채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올릴 때마다 "날 퀴어가 아니라 *앨라이라고 여길 거야"라는 생각과 "내가 퀴어인 걸 들키면 어쩌지"하는 생각을 동시에 하는 것 같아요. (*ally, 성소수자 차별에 대해 차별 당하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그 차별을 반대한다는 뜻에서 연대를 표현하는 단어)      


Q8. 에세이를 읽을 퀴어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은?     


시럽

    성소수자들 중에도 논바이너리는 더욱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듯해요. 퀴어 커뮤니티 내에서도 논바이너리가 차별당하기도 한다는 거죠. 이를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사실 논바이너리뿐만 아니라 범성애나 무성애도 많이 차별받고 있다고 느껴요. 어떻게 태어났든누굴 좋아하든 동등하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말하고 보니 퀴어, 비퀴어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하고 싶은 말이네요.     

    그리고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바이섹슈얼에 대한 편견 중 하나가, 가벼운 관계를 원할 때는 퀴어 관계를 찾다가 결국 long term relationship을 원할 때는 상대적으로 쉬운 길, 그러니까 이성과의 관계를 찾는다는 거예요. 이런 선입견에서 비롯되어서 퀴어 커뮤니티 내에서는 "아 차라리 내가 양성애자였으면 좋겠다"는 식의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그런 말들도 결국 바이섹슈얼에 대한 혐오표현이거든요.  

    또 동성혼이 합법화되면, 동성애자 이외의 다른 성소수자들도 합법화되고 가시화될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요? 그냥 사람을 평등하게 봐줬으면 좋겠어요.     


피로

    더 밝은 미래가 온다는 것을 믿고 죽지는 맙시다.     


Q9. 에세이를 읽을 비퀴어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은?     


시럽

    저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 싫은 사람이에요.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냥 최대한 마주치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냥 저랑 안 맞는 거지, 죄를 지은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듯 그들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그리고 'Gender is a social construct.' 젠더 없는 세상에서 살고싶고, 젠더를 해체하고 싶습니다. 제 삶의 모토예요.     


블랑카

    이 세상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에 해당하는 요소들이 정말 많잖아요. 그 요소들 하나하나에 성별을 부여하고 모두가 그것을 자신에게 부여된 성별에 맞게 실천하도록 하는 것이 너무 이상하고 재미없고 몰개성하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 없으신가요. 없으셨다면 이제 한번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피로

    퀴어들이 희망하는 밝은 미래를 건축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당신이기에, 의무감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시럽과 블랑카, 피로의 이야기. 어떠셨나요? 시럽은 퀴어 NGO에서 일하면서, 블랑카는 인터넷으로, 그리고 피로는 미국에서 온 친구 덕분에 다양한 성정체성과 성지향성의 종류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에세이가, 자신을 설명할 용어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는 그대들에게 닿았으면 좋겠는 마음이에요. 그리고 느껴주세요. 시럽과 블랑카, 피로는 결코 가상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당신과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동아리를 하며, 지금 옆에서 웃고 떠들고 있는 그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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